[스페인] 바르셀로나 - Day 3

하몽, 츄러스 & 까사 바트요

by 미르

스페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이베리코 돼지고기와 하몽이다. 특히 스페인 여행 계획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대학교 시절 친구가 오랜만에 DM으로 꼭 가봐야 할 맛집들을 추천해 주었다. 전날 실망한 'V모' 식당도 이 친구의 평으로는 별로 추천하지 않는 곳이라길래 신뢰가 갔다. 그래서 스페인 여행 3일 차에는 하몽 맛집을 들리고서 전날 가보지 못했던 바르셀로나의 거리들을 여유롭게 돌아다니기로 했다.





이번 바르셀로나 숙소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건물 뒷마당 풍경이었다. 벤치에 편히 앉아서 바로 앞 건물들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르셀로나의 아침 공기를 마시니, '아 내가 스페인에서 편히 휴식을 취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건물마다 저마다의 개성을 담아 뒷마당을 꾸미고, 각양각색의 빨래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을 보니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이 살아 숨 쉬는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날 아침에 나는 숙소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 한잔을 들고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서 여유로운 아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시내 관광은 해가 중천에 뜬 오전 11시에 나서기로 했다. 숙소 앞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늦은 출근을 하는 현지 사람들과 이제 막 관광을 시작하는 여행자들이 뒤섞여 있었다. 도시 전체가 서서히 활력을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섞여서 카탈루나 광장을 지나 바르셀로나 대성당으로 향했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 광장은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과 그들과 사진을 찍으며 팁을 받으려는 길거리 분장 예술가들로 조금 소란스러운 분위기였지만 고딕 양식 특유의 웅장한 외관과 대성당이 주는 존재감이 자신을 바라보라고 하는 것 갔았다. 맑게 갠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첨탑을 바라보니 사르리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등장하기 전에 이 대성당이 바르셀로나의 중심이란 사실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성당 앞을 가로막은 몇몇 건물들 때문에 광장이 조금 답답한 점은 아쉬웠다.


이번 여행에서 아버지께서 선글라스를 쓰지 않으셔서 가족사진을 올리기는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대성당 앞에서 많은 사진을 남겼다. 카메라 앞에서 어색해하시던 아버지에게 "앞에 하윤이(조카)가 있다고 생각하고 웃어보세요"라는 내 말에 활짝 웃으시는 모습을 보며, 어느새 '아버지'가 아닌 '할아버지'로 변한 세월이 느껴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미소 속에서 빠르게 지난 시간을 실감하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세월이 벌써 이렇게 지나버렸구나...'





유럽 여행을 갈 때마다 꼭 방문하는 곳이 있다면 바로 그 도시의 시장이다. 현지 사람들은 어떤 재료로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는지, 그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침 바르셀로나 대성당 인근에 '산타 카테리나 시장'이 있어서 간단한 음료와 간식을 사 먹을 겸 시장으로 향했다.

관광업이 바르셀로나의 주요 산업이라 이 시장도 서울의 광장시장처럼 관광지화가 많이 되었을 줄 았았다. 그런데 막상 시장에 들어가 보니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기념품 가게보다는 현지 주민들의 일상적인 식재료를 파는 상점들이 더 많았다. 신선하고 깔끔한 해산물과 여러 육가공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 동네 사람들의 식재료들을 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간단한 간식을 사 먹고 싶은 가게가 보이지 않아서 금세 밖으로 나와서 친구가 추천해 준 하몽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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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카테리나 시장에서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서 친구가 추천해 준 하몽 맛집 '카사 알폰소'에 도착했다. 추천에 따라 하몽 한 접시와 판 콘 토마테, 감바스를 주문했다. 스페인에 왔으니 현지 감성에 맞춰 레몬 맥주인 클라라도 함께 주문했다. 다른 집에 비해 카사 알폰소의 하몽은 짠맛이 덜하고 부드러워서 내 입맛에는 딱 맞았다. 짭조름하고 고소한 풍미가 입안에서 느껴지면서 한 접시를 더 시키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응은 달랐다. 어머니는 '이건 돼지고기 육회를 얇게 썰어낸 느낌이다.'라고 하시고, 아버지도 그동안 드셔보신 하몽과 조금 다른 것 같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40년 경력의 주부이신 어머니와 농림부에서 오랫동안 아버지의 기대치가 워낙 높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내겐 이 집은 바르셀로나의 하몽 맛집으로 기억될 만큼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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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맛을 즐긴 뒤에는 달달한 디저트를 즐길 차례였다. 이번에는 츄러스 맛집이라는 '추레리아 라이에타나'를 찾아갔다. 마침 손님들이 한 차례 몰렸다가 빠진 직후라서 갓 튀겨낸 따끈따끈한 츄러스를 맛볼 수 있는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스페인이 츄러스의 본고장이라고 해서 한국에서 먹어본 것보다 훨씬 맛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한 입을 먹어보니... 솔직히 토핑이 전혀 없는 긴 도넛에 불과했다. 겉은 바삭했지만 속은 너무 기름져서 기대했던 감동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같이 주문한 핫초코가 진하고 매우 달콤해서 츄러스를 찍어 먹기에 정말 좋았다. 한국에서 마시던 묽은 핫초코가 아니라 초콜릿을 녹인 것 같은 매우 꾸덕한 진짜 핫초코였다.

그리고 날씨가 제법 더워져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싶었지만, 아이스 음료를 전혀 팔지 않아서 카페 라떼를 주문해서 뜨거운 츄러스와 따끈한 커피, 핫초코를 즐기면서 오후의 단 맛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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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무더워진 날씨 속을 견디며 이날의 마지막 관광 코스인 '까사 바트요'로 향했다. 시내 관광을 여유롭게 즐긴 뒤에 방문하고 싶어서 일부러 오후 4시 입장으로 예약했다. 가우디가 설계한 명소답게 입구 주변은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줄 서서 기다리던 중, 바로 앞에 있는 사람들의 예약 명세서가 눈에 보였다. 이들의 입장 시간은 오후 3시 45분, 바로 앞 타임이었고, 순간 '내가 줄을 잘못 섰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알고 보니 관람을 마친 사람들과 입장하는 사람들이 겹칠 것을 우려하여 직원이 그 가족을 임시로 4시 줄에 세워둔 것이었다.

약 20분 동안 부모님과 입장을 기다리면서 지금 이 순간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최대한 많은 셀카를 찍었다. 찍고 보니 내 어색한 표정관리는 아버지를 닮은 게 분명하다.


건축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아도 까사 바트요에 들어가니, 왜 가우디가 '위대한 건축가'로 불리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건물 자체가 직선보다는 곡선으로 이루어진 공간이었고 그 곡선들이 만들어낸 신비로움은 이상하게도 편안한 느낌을 제공했다. 특히 인테리어 곳곳에서 보였던 목재의 곡선 가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가우디의 설계에 따라 마치 자연적인 인테리어를 그대로 구현해 낸 당시 장인들의 기술력이 정말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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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저택의 중정은 아래층에서는 밝은 하늘색 타일이 있다가 위로 올라갈수록 짙은 남색 타일이 사용되면서 바닷속을 지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천장을 통해 햇살이 비치자 가우디가 이 공간을 설계하면서 이 건물의 일부로 빛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화려한 내부 장식보다는 각 층에 남아있는 나무 창틀이었다. 100년이 넘은 세월 동안 원형이 거의 훼손되지 않고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웠다. 요즘 아파트들의 샷시는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틀어지는데 이곳의 창틀은 세월의 흔적을 품은 채 오히려 더 단단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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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올라가니 작은 루프탑 바가 있었고 잠시 쉬어갈 겸 클라라와 생수를 주문하고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쉬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클라라를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서 바텐더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바텐더가 미소를 지으면서 바로 눈앞에서 클라라를 만들어 주었다. 처음에는 기성제품을 잔에 따라주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에스트렐라 담(Estrella Damm)' 맥주와 '슈웹스 (Schweppes) 레몬에이드'를 2:1 비율로 섞는 매우 간단한 레시피였다. 한 모금 마셔보니 하몽 집에서 마셨던 클라라와 똑같은 맛이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한번 시도해 볼 것 같다. 어머니께서 '나중에 세월이 흘러서 네가 네 가족이나 형네 가족들과 함께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우리가 생각날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여행의 즐거움 속에서도 세월을 느껴지면서 잠시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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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는 까사 바트요 투어를 마치고 부모님께서 첫날 'V모' 식당의 빠에야에 대한 실망을 지우기 위해 오늘 저녁엔 제대로 된 빠에야 맛집을 가자고 하셨다. 그래서 카탈루냐 광장 근처에 있는 '엘 글롭(El Glop)'의 후기가 유럽 사람들과 한국인 모두에게 좋은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빠에야는 최소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한 곳이 많지만 여기는 1인분도 주문 가능하고 맛도 좋다고 하여 기대를 안고 찾아갔다.

한국에서는 저녁을 먹을 시간이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아직 이른 시간인지 식당은 한산해서 주문한 요리가 유럽 식당치고는 빠르게 나왔다. 돼지고기 스테이크는 스페인산 돼지고기의 명성에 생각하면 매우 평범했지만 해물 빠에야는 훌륭했다. 쌀의 익힘과 식감이 입맛에 딱 맞았고 해산물의 풍미가 밥알에 제대로 배어 있었다. 첫날의 실망을 완벽하게 잊게 해 준 한 끼이자 여행 셋째 날을 만족스럽게 마무리하기 좋은 저녁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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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사 알폰소 (Casa Alfonso)
주소 : Carrer de Roger de Llúria, 6, L'Eixample, 08010 Barcelona, Spain
평점 : ★★★★
후기 : 촉촉한 하몽, 감바스와 클라라의 조합은 너무나 좋다


추레이나 라이에타나 (Xurreria Laietana)
주소 : Via Laietana, 46, Ciutat Vella, 08003 Barcelona, Spain
평점 : ★★
후기 : 핫초코를 무조건 주문해서 찍어 먹어야 한다.


엘 글롭 - 카탈루나 광장점 (El Glop Placa Catalunya)
주소 : Carrer de Casp, 21, L'Eixample, 08010 Barcelona, Spain
평점 : ★★★
후기 : 분명히 맛있는 집이지만 어떤 날에는 별로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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