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시내 구경 & 바르셀로나타 해변
보통 유럽 여행이라면 짧은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곳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강행군을 하는 스케줄이지만, 이번 여행은 최대한 여유롭고 느긋한 여행을 목표했다. 그래서 다음 날에도 서두르지 않고 오전 10시쯤 천천히 숙소를 나서서 근처 동내를 산책하듯 불러도 고 '까사 바트요'와 카탈루냐 광장으로 이어지는 '파세이그 데 그라시아 (Pg. de Gracia)' 거리를 걷기로 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싶었던 장면은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으시는 모습이었다. 예전에는 늘 앞서 가시거나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시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어머니의 옆에서 오붓하게 걷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그런 내 생각을 들으신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이제 네가 결혼할 때가 되어서 그런 생각을 한다'라고 하시는데 약간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파세이그 데 그라시아' 거리를 걸으면서 여러 명품 매장들과 FC 바르셀로나의 유니폼 샵들을 구경하다 보니, 예전에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가 떠올랐다. 부모님께 "이 거리가 파리로 비유하면 샹젤리제 거리이고 서울의 압구정로데오 거리 같은 곳이에요'라고 설명드리니 바로 어떤 곳인지 이해가 되신다면서 웃으셨다.
한참을 그렇게 걷다가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느끼기 위해 울창한 가로수 아래의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스페인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어서 좋구나 하시면서 여유를 만끽하셨다. 그 모습을 보니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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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12시를 훨씬 지나 1시 반이 가까워졌고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리 근처에 있는 네이버 블로그 후기가 많은 식당을 찾아서 부모님을 안내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곳이 관광객들을 타깃으로 한 음식점이라서 우리의 기대를 산산이 무너뜨릴 예정이란 사실과 앞으로 '관광화된 음식'을 마주할 것이라는 사실은 알 수 없었다.
'파세이그 데 그라시아' 거리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있던 'V 모'식당에 들어가서 블로그 후기를 참고해 랍스터 빠에야와 한치구이, 꿀대구 그리고 뽈보(문어 요리)를 주문했다. 스페인에서 처음 맛보는 현지 음식이라 모두의 기대는 한껏 부풀어 있었다.
먼저 한치구이와 뽈보(문어 요리)는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맛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랍스터 빠에야였다. 지금까지 먹어 본 요리 중에서 가장 비린내가 심했고 미리 만들어두고 서빙한 탓에 밥이 눅눅하게 퍼져있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꿀대구에 작은 기대를 걸었지만, 꿀이 아닌 설탕시럽이 잔뜩 뿌려진 달콤한 맛에 실망했다. '여기까지 와서 이런 음식을 이 가격에 먹어야 한다니...'라는 생각이 들며 비싼 유로화 환율이 그날따라 유독 원망스러웠다. 미국처럼 팁을 의무적으로 줄 필요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에서의 첫 식사에 큰 실망을 한 우리는 숙소 근처를 잠시 산책하다가 뜨거운 햇볕을 피해 숙소에서 낮잠을 즐기기로 했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한국에서 미리 가져온 라면을 끓이고 마트에서 구입한 돼지고기 목살을 구워 저녁을 준비했다. 어머니는 한국에서 챙겨 온 간장과 참기름으로 간단히 양파 샐러드를 만들어주시고 '일단 든든히 배부터 채우고 돌아다니자'라고 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앞으로 여행 내내 현지 음식에 매번 실망하고 숙소에서 만들어 먹을 것이란 사실은 전혀 몰랐다.
한숨 푹 쉬고서 부모님과 '바르셀로나타 해변'으로 Uber를 타고 이동했다. 숙소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충분히 갈 수 있었지만, 예전에 로마 여행 중 소매치기를 당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이번엔 가급적 대중교통을 피하기로 했다. 석양이 물드는 바르셀로나타 해변의 첫인상은 솔직히 '스페인어 안내판이 없으면 경포대나 해운대와 크게 다르지 않는데?'였다. 아무래도 강릉 출신인 부모님과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은 나로서는 전 세계 어느 해변가를 가더라도 자연스럽게 경포대와 해운대를 비교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그래도 한국과 스페인의 바닷가 풍경 중 가장 크게 다른 것은 선탠을 즐기며 누워있는 사람들과 비치 발리볼을 즐기는 현지인들의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매우 보수적인 부모님 입장에선 '끈 쪼가리(?)'를 입고 운동하는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셨겠지만, 선글라스를 낀 내 입장에서는 솔직히 눈호강이었다. 그런데 유럽에서 LGBTQ+ 문화에 매우 개방적이란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검은 스타킹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며 무지개 깃발을 흔드는 수염 가득한 아저씨를 마주친 순간, 본능적으로 "내 눈!"이란 비명이 튀어나왔다. 여행기를 쓰는 지금도 그 장면만큼은 제발 기억 속에서 잊어버리고 싶다.
바르셀로나타 해변
평점 : ★★★
후기 : 같이 가는 일행에 따라 눈치를 챙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