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관소]
사서 전제군입니다.
여러분은 오래된 물건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보통 쓰임새가 다했다고 여겨진 물건들은 버려지고 새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죠. 오래된 건물 또한 도시 미관을 해친다며 등의 여러 가지 이유들로 새 건물로 대체됩니다. 건물은 다른 어떠한 것보다 새것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고 느껴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레트로, 빈티지 등 과거의 향수를 간직한 문화들이 다시 떠오르고 있고, 과거를 품으며 문화와 사람을 받아들이는 공간도 생겨났죠. 오늘은 오래된 건물 속에서 보지 못했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곳, Vol.9 ‘탕 없는 목욕탕’에서 만나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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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복합문화예술 공간 “행화탕”은 1958년 목욕탕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주변에 대형 찜질방과 사우나가 들어섰고, 점점 입지가 좁아져 2008년 폐업에 이르렀다. 그 후 수년간 고물상, 창고, 사무실 등으로 쓰이다 2016년 5월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렇게 다시 태어난 행화탕은 유휴공간이 환골탈태한 대표적 사례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부에서 진행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은 아니다. 사회적 부가가치 창출이 아닌 오직 개인 작업 공간을 찾기 위한 노력의 여정에서 발견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행화탕은 “예술로 목욕합니다.”를 모토로 하여 마음의 때를 미는 예술 공간으로서 목욕과 관련된 문화를 복합적으로 구축 중이다.
행화탕에 입장하면 행화카페를 처음으로 마주할 수 있다. 탕과 사우나가 있던 공간 위에 들어선 곳이라 그런지 목욕탕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때를 민 듯 살짝 벗겨진 붉은 벽돌과 복도에 깔린 흰 자갈에는 빈티지 감성이 담겨 있다. 그리고 행화카페는 커피와 스낵뿐만 아니라 맥주도 판매한다. 목욕탕을 카페로 쓸 수 있는 것도 모자라서 대낮부터 맥주를 마실 수 있다니! 이곳이 원래 목욕탕 탈의실이었다는 사실은 쉽게 믿기지 않는다.
라떼 속에서 하는 반신욕은 어떤 느낌일까? 신메뉴 “반신욕 라때”는 행화커피의 첫 번째 시그니처 메뉴이다. 목욕탕에서 마시는 커피답게 메뉴 이름도 라떼가 아니라 라”때”다. 이 커피는 행화인이 라떼 탕에서 반신욕을 즐기는 콘셉트로, 멋도 맛도 일품이다. 연유가 천천히 녹으면서 라떼가 달콤해 지는 것이 여유로운 행화탕의 모습과 닮았다. 수건에 새겨진 메뉴와 대야에 담겨 나오는 메뉴 덕분에 대중목욕탕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이밖에도 맥주, 와인, 과일 주스 등 다양한 음료가 마련되어 있다.
행화탕에선 복합문화예술 공간답게 전시와 공연이 열린다. 전시나 공연은 보통 행화탕 외부에서 진행되지만, 내부 전시도 있다. 카페 내부 전시는 3개월마다 한 작가의 한 작품만 선보인다. 물론 작품이 한 개뿐이라 다양한 감상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작품이 오래도록 전시되니 방문할 때마다 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더 크다. 현재 진행 중인 송광찬 작가의 사진 작품 “왕후의 시선_궁의자리”는 7월까지 행화탕의 벽면을 장식할 예정이다.
행화탕엔 여러 가지 빛깔의 전시, 눈과 귀가 호강하는 공연이 있다. 지금 우린 목욕하던 곳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이번에는 재즈 공연을 볼 수 있다. 목욕탕에서 하는 디너쇼, 분명한 목욕탕의 반란이다. 이처럼 우리도 일상에 변화가 필요할 때가 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장소는 일상에 대한 해방과 치유의 예술 약수가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누구든 일상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되고 싶다면 가볼 만한 곳, 그곳이 바로 “행화탕”이다.
Vol.9 <탕 없는 목욕탕>中
Editor 조현성
Photographer 신형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