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관소]
사서 한수진입니다.
여느 겨울방학의 느즈막한 아침.
뒹굴거리며 유튜브를 보다가, 스쳐가는 검은 화면 속에 나태한 내가 비칠 때. 그 순간, 열심히 살고 있지 않는 것만 같은 불안이 엄습하기도 하죠. 이 잠깐의 불안이 때론 눈덩이처럼 불어나 일명 '열심히 살자' 강박이 되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 없이도 일단 일을 벌이거나, 괜히 자격증 시험에 눈을 돌리게 만드는 강박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왜' 열심히 사는 걸까요? 늘 열심히 사는 인생만이 가치있는 걸까요? 이에 대해 "우리는 열심히 살지 않을 권리도 있다."라고 답한 한 작가님의 이야기를 Vol.10 <열>의 <난 열심히 살지 않겠다>에서 들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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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발을 쉼 없이 저었다. 잠겨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한시라도 발을 멈출 수가 없었다. 힘들어도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들을 보며 스스로 위안했다. 열심히 사니까 이 정도라도 사는 거지. 내뱉은 한숨은 안도보다 자조의 성격이 더 깊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발을 멈추고 싶어졌다. 이렇게 살려고 내가 이리도 발버둥쳐야 하나 싶었다. 조심스레 발을 멈췄다. 그리고 몸을 뒤로 눕혔다. 놀랍게도 몸은 가라앉지 않고 차분히 물 위에 떠 올랐다. 옆으로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대열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불안하다. 하지만, 지금은 가만히 이렇게 떠다니고 싶다. 애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한 번쯤은 이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애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둥둥!”
본 책의 저자 하완은 직장에 다니며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병행 해오다, 회사를 그만두고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그가 퇴직을 결심하게 된 데는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더는 두 가지 일을 같이 하지 못할 정도로 지쳤기 때문이다. 일을 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고, 계속 이대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인생의 반인 마흔 살이 된 시점에서, 그는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열심히 살지 않을 기회를 말이다.
“원래 인생은 공평하지 않아. 노력으로 다 된다는 말도 거짓말이지. 알겠어?
네 노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는 이야기야.”
서두에서 그는 노력과 보상이 정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의 현장에서 우린 쉽게 노력의 배신을 목격하곤 한다. 들인 노력에 비해 과분한 성과를 받아가는 이가 있는 한편, 아무리 열심히 해도 현재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도 있다. 노력했다고 반드시 보상받는 것도 아니고, 노력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는 운일 수도, 환경의 문제일 수도 있다. (더 이상 노력이 통하지 않는 양극화 사회를 꼬집기도 한다.) 명확한 점은 노력한 만큼 꼭 보상이 따라와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이러한 사실은 묵인한 채, 우리에게 여전히 ‘열심’만을 강요한다. 그리고 실패를 단순히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치부하며, 나약한, 의지박약의 낙오자로 추락시킨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실패를 두렵게 하고, 자책하게 만든다. 그는 노력을 강요하는 사회 속 모순을 지적하며 노력에 대한 맹신이 우리를 괴롭게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정의 태도를 강조한다. 노력해도 실패할 수 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으니까. 그러니 실패가 꼭 내 탓만은 아니라고. 그래야 덜 억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노력보다 용기가 더 필요한 것 같다.
무모하지만 도전하는 용기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포기할 줄 아는 용기 말이다.”
그는 더 나아가 ‘포기’할 줄 아는 ‘용기’에 대해 역설한다.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라 적절한 시기에 포기하는 것도 용기다. 우린 종종 용기라는 미명 아래 오기를 부릴 때가 있다. 오기와 용기는 다르다. 안 되는 일을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는 것은 용기가 아닌 오기이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알고,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우리에겐 멈춰야 할 때에 적절히 멈추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좀 더 우리의 삶을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다.
“내가 이 나이에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내 나이에 걸맞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만의 가치나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것이 나에게도 좋은 것일까? 대학, 직장, 집, 결혼, 연봉. 이러한 것들이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것일까? 저자는 우리 사회에는 ‘인생 매뉴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정해진 나이 때에는 이루어야하는 하나의 기준선과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기준에 맞추어 사는 일은 힘들다. 이는 기본적으로 ‘타인과의 비교’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남에게는 있는 것이 나에게 없다고 불행한 일일까? 기준 미달, 실격이란 말은 우리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길은 분명 하나가 아닌데, ‘열심히 사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다’라는 생각이 우리를 괴롭힌다. 그는 느려도 달라도 뒤처져도 괜찮다고 우리를 다독인다. 사는 데 조금만 힘을 덜어보자. 멈추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고도 하지 않는가. 조금 덜 열심히, 쉬엄쉬엄 살다 보면 새로이 보이는 것도 있을 것이다.
‘열심히 살아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산다’처럼 바보 같은 말이 어디 있을까.
노력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결국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열심히 사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 아닐 수 있다. 우리에겐 열심히 살지 않을 권리도 있다.
한 번쯤 애쓰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Vol.10 <난 열심히 살지 않겠다> 中
Editor 김상미
Photographer 이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