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관소]
사서 최예림입니다.
작지만 시선이 오래 머무르는 곳들이 있습니다.
우연히 들어간 골목에서 작은 책방을 발견하거나 아담한 카페의 분위기에 이끌려 친구를 데려가듯 장소의 크기가 그 공간의 매력이 되기도 합니다. 아늑함과 나지막한 소음에 한결 편안해지면, 복잡하고 시끄럽던 생각을 정리할 여유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의미있는 공간에서 나에게 집중하거나, 소중한 사람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요. 바쁜 일상 속 작은 여행이 담긴 ‘있는 그대로, 관악구 여행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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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속 정의를 따르자면, ‘작음’은 일의 규모, 범위, 정도, 중요성 따위가 비교 대상이나 보통 수준에 미치지 못함을 일컫는다. 마치 ‘작은 것’이 부족한 존재로 느껴질 수 있는 정의이지만, 아름다움과 가치는 크기로 재단할 수 없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에디터는 작음의 미학을 찾아 관악구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구식 건물과 신식 건물, 젊은이와 노인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관악구야말로 작음의 미학,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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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작은 쉼터, 자체휴강 시네마
가는 방법
서울대입구역 정류장에서 5515번 버스를 타고 고시촌 입구 정류장에서 내린다.
안경원에서 내려가 편의점에서 오른쪽 직진 후, L사 햄버거 가게에서 꺾어 올라가면 도착이다.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여행 준비를 마치고 관악구에 도착하니 오후 한 시. 관악구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독립영화관, <자체휴강 시네마>였다.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고, 독립영화 포스터들이 줄지어 있는 벽을 짚으며 지하로 내려가면 어둡지만 아늑한 분위기의 영화관이 나온다. 콜라와 팝콘을 가지고 들어선 상영관의 방 한 칸 남짓한 크기에서 내 집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에디터가 관람한 <12월 4일>은, 차갑고 거대하기만 한 사회 앞에 작아지는 우리 존재를 위로해주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던 20분 동안의 시간은 작은 공간에서 타인들로 가득한 일상을 잠시 ‘자체휴강’ 하고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에디터의 독립영화에 대한 편견을 부숴주는 계기가 됐다. ‘저예산 영화이니 질이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투자 규모를 두고 저울질한 행위였음을 깨달았다. 다시 한번 나 자신 혹은 누군가가 정한 기준이 아닌 존재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했다. 작음의 미 학 첫 번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보이지 않던 가치가 비로소 다가온다.
방문 TIP
자체휴강 시네마에는 상시 상영작과 현재 상영작이 있다. 사장님의 재치있는 영화 추천이 있기도 하지만, 미리 홈페이지에서 예고편과 간단한 영화 설명을 보고 가면 영화 선택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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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을 오래도록 기념할 수 있는 아날로그 살롱
가는 방법
대학동 고시촌 입구 정류장에서 6515번 버스를 탄 후 낙성대 입구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여러 가게를 지나 S오피스텔 옆 골목으로 들어가, 쭉 직진하여 빨간 글씨의 가게 간판이 보이면 도착이다.
영화를 보며 팝콘과 음료를 실컷 먹어서 배가 어느 정도 찼지만, 에디터에게 하루 중 가장 배고픈 시간인 오후 두 시를 견디기엔 무리였다. 따라서 두 번째로 향한 곳이 <아날로그 살롱>이었다. 아날로그 살롱은 카페 겸 빈티지 소품샵이다. 가게 곳곳 슬롯머신, 선풍기, 타자기, 재봉틀 등 빈티지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카페도 함께 운영하기 때문에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음료들과 디저트가 놓여 있었다. 주문한 음식이 눈앞에 보인 순간 심장을 부여잡았다. 얼그레이티와 함께 나온 호빵맨 푸딩은 귀여움에 약한 에디터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먹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무색하게도 비워진 잔과 접시를 뒤로한 채, 소품들이 진열된 공간으로 향했다. 스누피, 호빵맨, 도라에몽 등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소품, 고풍스러운 식기, 반짝반짝 빛나는 장신구. 소품들 하나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소품이 뭐가 그렇게 좋을까 싶지만, 크기가 작기에 귀여움이 배가 됐고 오밀조밀 예뻤으며 잔재미가 넘쳤다. 작음의 미학 두 번째, 작으니까 돋보이는 매력들이 많다. 이곳에서 산 책갈피를 볼 때마다 이번 여행이 오래도록 떠오를 것 같다.
방문 TIP
모두가 탐내는 소품들인 만큼 제품 소진도 순식간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원하는 소품을 건지고 싶다면, 인스타 공식 계정을 통해 입고 소식을 확인하자. 컵은 온라인 예약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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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편히 읽다 가세요, 나의 빈 폴더를 채워주는 엠프티 폴더스
가는 방법
'S' 오피스텔로 돌아와 쭉 직진하면 신호등이 나온다. 직진 끝에 두 번째 신호등까지 건너면 두 갈림길이 나온다.
그중 왼쪽 골목으로 가서 행운동 주민센터를 지나 여러 벽돌 주택을 거친 후, 회색 천막의 책방을 찾았다면 도착이다.
지금까지는 눈이 즐거웠으니, 이제 마음을 신나게 할 차례이다. 몇 시간 전 보았던 영화 속 주인공에게 위로의 공간이 되어준 책방이 눈에 밟혀, 인터넷에 관악구 책방을 검색했다. 검색해보니 관악구에는 다섯 개의 독립서점이 있다. 그중 내가 방문한 곳은 관악구 독립서점 중 막내, 취향 서점 <엠프티 폴더스>이다. 서점의 테마가 ‘취향’이라니. 대체 어떤 곳일까, 호기심을 갖고 서점 앞에 도착했다. 유리에 붙어있는 “책 편히 읽다 가세요”라는 팻말은 부담 없이 문을 열게 했다. 5평 남짓한 작은 공간의 서점에는 따뜻한 햇볕과 함께 친절하게 반겨 주시는 사장님이 계셨다. 사장님의 취향과 지식이 가득한 공간에서, 빈 폴더에 무수한 것들을 담듯이 책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둘 찾아가는 이곳. 도감, 매뉴얼, 아카이브, 잡지, 그림책 등 종류도 다양하다. 책을 읽다 보니 서점에 평생 눌러앉고 싶었지만, 해가 지기 전 벽화를 보기 위해 서점을 나섰다. 작음의 미학 세 번째, 작음 안에는 무수한 의미가 내재해 있다.
방문 TIP
엠프티 폴더스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월간서가’이다. 매월 한 가지 주제로 다양하게 꾸려지는 월간서가. ‘이번 달은 어떤 주제일까?’ 추측과 기대하는 것 역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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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재미에 찾는 재미까지 넘친다, 행운동 고백길
가는 방법
다시 행운동 주민센터로 돌아가 바로 앞에 있는 경사 높은 계단을 열심히 오르면,
고백이라는 테마를 재미있게 표현한 벽화 “GO BACK TO SCHOOL”이 행운동 고백길의 시작을 알려준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행운동 주민센터 앞 돌 계단을 올랐다. 고백길이라는 이름처럼, 이어지는 벽화들에서 ‘고백’이라는 테마가 두드러진다. 감추어 두었던 수줍은 마음을 숨김없이 말하는 고백과 지은 잘못을 솔직히 말하는 고백, 告(옛 고) 白(흰 백)을 표현한 벽화 등 벽화를 그린 자원봉사자들의 참신함이 돋보인다.
동네 구경 중 하나씩 나타나는 벽화는 마치 보물찾기 같았다. 숨어있던 작은 벽화들을 찾을 때마다 느낀 희열은 여전히 생생하다. 작음의 미학 마지막, 작아서 숨겨져 있던 존재가 비로소 보일 때, 그 의미는 더욱 빛이 난다. 고백길을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해는 졌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짧지만 작은 것들이 지니는 의미와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 여행이었다.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비교에 지친 당신, 오늘 당장 작음의 미학을 찾는 여행을 떠나보자.
방문 TIP
고백길 지도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벽화를 찾기에 급급하면 지도와 벽화 보기를 반복하게 된다. 이럴 땐 과감하게 본능에 맡기며 동네를 탐방하는 느낌으로 구경해보자. 골목 사이로 보이는 노을 진 하늘이 당신의 선택이 옳다고 이야기해줄 것이다.
Vol.11 <있는 그대로, 관악구 여행기> 中
Editor 이도형
Illustrator 고영선
Photographer 이하은, 홍동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