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관소]
사서 조효진입니다.
사는 게 마냥 지루해질 때가 있죠.
가끔은 마법으로 세상을 지키는 허무맹랑한 영웅이 되어보고 싶기도 하고, 오지랖의 세상에서 머리 아픈 일은 신경 쓰지 않는 ‘명랑 소녀’로 살아보고 싶기도 합니다.
짝사랑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고민이었던 시절이 그리울 때, 답답한 세상에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외치고 싶을 때 당신에게 힘이 되는 7호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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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싸우는 여자아이
극세사 이불에 포옥 싸인 채 침대 위에서 녹아내리는 내가 간신히 노트북을 붙잡는 동안, 세일러문과 꼬마 세라와 친구들은 부지런히, 별의별 악의 세력에 맞서 싸웠다. 악당들은 여덟 시 뉴스에서나 보던 사기 수법으로 꿈 많은 아이에게 접근한다. 강제로 그들의 꿈을 들여다보고 본인들이 찾는 꿈이 없으면 제거한다. 그래, 어딘가 익숙한 행태였다. 저녁 뉴스에서, 혹은 동기들과의 대화 속에서, 전화 너머 부모님의 걱정 섞인 잔소리에서도 듣던 이야기다. 한 손에 군만두를 들고 세일러문을 보는 어린아이는 술자리 테이블 아래로 무릎을 더듬는 선배나, 밀린 월급에 한 맺힌 친구의 넋두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 어린 시절, 마법과 초능력이 가득한 화면 속 나쁜 사람과 무릎이 까지도록 싸우는 세일러문은 흉흉한 요즘을 사는 여자아이였다. 세일러문은 세상을 구하라가 아닌, 나쁜 사람에게서 너의 꿈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었다.
# 정의의 이름
세일러문을 보면 나도 그녀처럼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악에 맞서 싸울 줄 아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에선 애초에 정의의 수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선과 악이 분명하지 않은 현실의 정의는 상대적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선이자, 악이다. 온기 없이 적의만 남은 정의는 불의의 모습이다. 힘이 정의로 규정되는 사회에서 정의의 수호자는 다른 한쪽에서 불의의 파괴자가 된다. 현실에서 절대적으로 옳은 정의는 없다. 정의에 겸손과 숙고가 필요한 이유다. 세일러문을 관통하는 정의는 악에 맞서 이루는 세계 평화가 아니다. ‘당당하게 나서는 용기’다. 리의 인생에서 정의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거울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정의란 애초에 이루기 어려운 가치다. 용기는 고사하고, 낄 데 안 낄 데 숙고하여 나서야 한다. 딱히 실현할 상황이 자주 있지도 않고 내 마음속에 불의를 못 참는 뜨거운 마음이 항상 용솟음치는 것도 아니다. 힘들다, 역시. 달의 요정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용기내 나서 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 아는, 발끝에서 올라오는 짜릿함. 오늘 저녁은 자신에게 치킨을 사먹여도 될 것 같은 기특함. 꽤 중독적이다.
# 서로의 외계인
세일러문 4기의 내용은 외계인의 침공으로 시작한다. 도심 한복판에 떨어진 괴상한 UFO에도 사람들은 침착하다. 아니, 무관심하다. 그 덕에 외계인 악당은 낮이고 밤이고 부지런히 사람들을 괴롭힌다. 늦은 밤,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 나 차가 부딪히는 것 같은 큰 소리가 날 때가 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창밖을 내다보시곤 하셨다. 나는 그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떡하냐고 말렸지만, 어머니는 빌라의 4층 높이에 깊은 신뢰가 있으셨다. 사실 나는 택배 기사님을 마주하는 일을 두려워한다. 옆집의 사람과 마주치는 일은 일 년에 3번이 될까 말까 하다. 어쩌다 마주쳐도 눈을 피한다. 벽을 공유하는 그가 외계인도 아닌데, 서로가 낯설다. 나 또한 이 세상 어딘가 온정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지만, 현대 사회에선 온정의 영역보단 무관심의 영역이 더 넓다. 무관심의 힘이 세면 의심조차 싹트지 않는다. 오지랖, 참견이라는 말 뒤로 숨기는 참 간편하다. 귀찮을 정도의 관심들도 겹겹이 입어, 사랑하기로 했다.
# 꿈, 사랑, 명랑 그중 제일은 명랑
세일러문은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중학생 소녀다. 게다가 대학생 오빠와 연애 중이다. 세일러문에게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다면 #럽스타로 도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연애에 열정적이다.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라 면 늦은 밤 창가에 기대어 와인을 홀짝이곤 하지만, 세일러 문은 카페에서 멜론 소다를 마시고, 엄마가 요리한 따뜻한 저녁을 먹는다. 돌아서면 배고픈 자취생은 부러울 따름이다. 아니, 정신을 차리자. 상대는 2D다. 백 번 양보해도 부러운 게 있다면 세일러문의 명랑함을 꼽겠다. 언젠가부터 ‘명랑’은 노란색 크레파스 냄새가 나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쉼 없이 자기반성을 요구하는 바깥세상에서 세일러문처럼 명랑하게 살기란 어려운 일이다. 내가 현재 명랑함이 충만한 상태라 해도 마음껏 표출하기에는 눈치 보인다. 일정 나이가 넘어가면서부터 명랑함을 구속하는 제약은 더 늘어난다. 그런 경우 ‘내적 명랑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정신 건강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 유사 상태로 내적 댄스가 있다. 덩실덩실. 기분이 저기압이면 고기 앞으로 가는 것도 비슷한 논리다. 이상한 소리는 접고, 진심으로 명랑하게 살고 싶다. 다들 명랑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지금 나는 명랑하다. 요시!
Vol.7 <당신의 문파워를 위하여> 中
Editor 김정미
Illustrator 김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