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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거진 미러 Oct 27. 2021

생명의 기원

[MIRROR둔 이야기]


자주 점멸하는 삶을 산다. 여름 해가 기울고 빛이 허물어지는 산세 속에 내 생에 첫 일별이 흩어진다. 그건 기척도 없이. 외려 빤히 쳐다볼수록 소멸하네. 양껏 부푼 눈두덩이 자못 뻐근하다. 열패감에 무자맥질하며 골머리를 앓는 일이 수없다. 돌이킬 수 없다. 열풍이 머리칼 틈새를 훑고 지난다. 그 위력에 빼앗기듯 오래도록 말라 있던 눈물이 어룽더룽 고였다. 가고 싶지 않다.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떠내려가고 싶지 않다. 사해에 콧잔등을 담금질하듯 수시로 짠물을 머금고 뱉어냈다. 첨엔 숨도 쉴 수 없는 여름이었는데. 까무룩 감고 뜨기를 여러 번 거치자 그도 예삿일이 되었다.


고동치는 천둥이 손가락 끝마디에 갉작인다. 나직이 비식대는 얼굴이 분에 넘치게 그리웁다. 새우등을 하고 엎어져 있던 몸을 뒤채며 개헤엄을 쳤다. 뭍에 도착해 땅을 딛자 바지춤에서 온갖 게 흘러나왔다. 옹송그려 뚫어져라 노려보니, 미련스레 욱여 삼켰던 것들이 결정이 되고 각을 지어 이윽고 흰 모래알로 거듭난다. 남에게 핑계 대고 내 안위를 변명하듯 살아왔음에 회한이 괴어들었지. 혀에 매달렸다가 허공을 부유할 말들에 내 모든 걸 마뜩잖아할 필욘 없지. 이 햇빛에 기화해 바스러질 터이니. 더는 그만두고 싶지. 그렇담 그렇게 해. 넌 가끔만 뒤돌아보며 계속 사랑을 향해 걸어라, 그리 중얼댔다.


오늘 아침 수업은 참 재밌었고 정오, 지금은 여우비가 내리고 있다. 어차피 못살게 굴었던 것들은 금세 증발하곤 이렇게 낭만적인 소낙비가 될 뿐이고. 누구도 메마르게 할 수 없다네. 잠시 시대착오적 생각을 한다. 물에서 태어나 용감히 육지를 밟았던 최초의 누군가. 수면 아래 어둑했던 눈동자를 아릿하게 길들였던 수억 년 전의 빛. 비슬비슬 지상을 향해 작은 손자국을 덧그렸을 무언가가 품에 폭 안겼다. 난 그걸 진실로 믿고 내 생에 첫 태양을 보듯 하늘로 고개를 치켰다. 눈자위가 찡 시리더니 눈물이 배어 나왔다. 으레 그리워했던 것처럼. 이런 기념비적인 날엔 보고 싶던 사람을 만나야 한다. 어, 그래 난데. 별다른 건 아니고.


<생명의 기원>


Editor 함유진

Photographer 장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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