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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거진 미러 Oct 27. 2021

아무튼 러닝

[MIRROR둔 이야기]


무릎을 최대한 높게 올려. 팔은 몸통에 가까이 두고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는 거야. 우린 키가 작으니까 보폭이 넓지 않아. 대신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 남들       가는 거야. 알겠지?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후 두 세시. 붉은 우레탄 트랙 위, ‘잘 달리는 법’에 대한 아빠의 강의가 한창이었다. 아빠가 설명하면서 취한 자세. 그러니까 팔의 각도와 다리의 높이를 다시 떠올리곤 이내 모두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 응 알았어.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매일 집 근처에서 러닝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이다. 원래는 혼자 운동을 했는데, 동생과 내가 조금 크고 나서는 우리도 함께 데려갔다. 트랙 위에서 항상 하는 건 달리기 시합이었다. 대체로 나와 동생의 시합이었지만, 마지막엔 다 같이 뛰었다. 아빤 50m 정도 뒤에 서서 우리를 먼저 출발시키고 미친 듯이 쫓아왔다. “야, 무서운 개가 쫓아온다고 생각하고 뛰어!” 죽기 살기로 전력 질주를 해도 결국 마지막엔 아빠한테 따라 잡혔다. 경주가 끝난 후엔 심장이 그렇게 마구 뛸 수가 없었다.


주말마다 운동장을 뛰어다닌 덕분인지 나는 학교에서 달리기를 잘하는 애가 되어 있었다. 체육대회 때 심심찮게 계주로 나가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키 크고 정말 잘 달리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 최선을 다해 달리는 나를 쉽게 앞질러 가는 뒷모습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난 안 되나 봐. 간발의 차이로 라인을 먼저 밟는 짜릿한 기분. 바람을 가르는 상쾌한 움직임. 그런 것들을 어쩌면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것 같다고. 왜냐면 나는 지기만 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던 내가 최근에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좋아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뛰다 보면 뜨겁던 우레탄 트랙이 자꾸 생각난다. 그리고 많은 길을 홀로 뛰어왔을 아빠 생각이 난다. 무릎을 올리고, 팔을 빠르게 움직이고, 호흡을 뱉고. 아빠, 아빠는 이런 걸 다 어디서 배웠어? 달리다가 지는 날은 없었어? 뛰는 게 싫었던 날은 없었어? 떠오르는 물음표를 뒤로하고 다리를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30분이 지나 있다. 땀이 나고 숨이 찬다. 내일도 와야지. 또 뛰어야지. 꼭 그래야지. 매일 뛰는 아빠의 마음을 나는 이제야 조금은 알 수도, 아니면 여전히 모르는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러닝>


Editor 김지윤

Photographer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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