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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거진 미러 Jul 27. 2022

Vol.18 <Dear. my blue>

[기록보관소]

사서 안지유입니다.

사랑을 입 안 가득 담고 읊조리다, 한순간 그 사랑에 날카로이 베이는 순간이 있죠. 우울이 나를 짙게 지배해도, SNS엔 형형색색의 밝은 이모티콘을 두드리는 순간도 있고요. 신기하게도 Lauv의 노래를 듣다보면 그 불편한 순간들도 쉬이 나아지곤 합니다. 진금미의 <Dear. my blue>에서 그 이야기를 만나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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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우울로 파낸 우물에 들어가 나를 고립시킨 적이 있었다.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웅크리고 있던 그때, 나의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그대로 꾹꾹 눌러 담은 것 같은 앨범을 만났다. 바로 Lauv의 「~how i’m feeling~」이었다. 먼 나라의 아티스트일지라도 누군가 내 마음에 공감해준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 나는 우물에서 한 발짝 벗어날 수 있었다.


네가 더 망가지기 전에 널 떠났어야 했는데


Lauv의 음악세계에서 사랑은 중요한 소재이다. 너만 있으면 어디든 파리의 비 오는 거리가 된다는 ‘Paris in the Rain’과 너와 함께 있을 때면 내 모습이 더 좋아진다고 고백하는 ‘I Like Me Better’. 살아가는 동안, 사랑하는 동안 널 떠올리지 않는 순간은 없을 거라고 읊조리는 ‘Never Not’ 등 Lauv의 지난 음악들에서 사랑이란 감정은 아름답고 찬란하다.


그랬던 그가 「~how i’m feeling~」에서 만큼은 사랑 노래에 질려버렸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i’m so tired… 中) 이 앨범에서 사랑은 이전 노래들처럼 마냥 아름답지 않다. 어제까지만 해도 확신했던 너의 진심은 한순간에 수수께끼가 되어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Mean It 中) 그토록 뜨거웠던 사랑도 이별 뒤엔 미칠듯한 외로움으로 변해 버린다. (fuck, i’m lonely 中) 이번 앨범에서 그의 사랑 이야기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노래는 ‘Julia’이다.


I led you into the garden of my loneliness. Wished that you left before it all burned down. Oh, Julia. I’m sorry what I do to you.

너를 내 정원 속 외로움에 내버려 두었어.

네가 더 망가지기 전에 널 떠났어야 했는데.

오, 줄리아. 너에게 저지른 행동 모두 미안해.


여기서 Julia는 Lauv의 연인이었던 가수이자 작곡가 줄리아 마이클스를 말한다. 노래에는 그녀를 향한 후회와 미안함이 담겨있다.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더 잘해줄 것이라고 말하는 흔한 이별 노래와 달리 이 곡은 다시 돌아가면 네가 상처받지 않도록 너를 놓아줄 것이라고 말한다.


왕자와 결혼하자마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버린 공주들의 이야기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어렸을 때 세상이 내게 가르쳐준 사랑은 행복을 보장해주는 도구였다.그러나 막상 어른이 되어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보니 행복보다는 불안과 아픔이 더 자주 찾아왔다. 잠자코 사랑을 곱씹어보다 문득 공주도 왕자와 결혼한 이후 눈물 젖은 밤을 보내는 날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명의 ‘누군가’를 향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하던 그는 이제 실제로 존재하는 한 사람을 지목하여 당연하지만 곧잘 망각하고 마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어떤 사랑은 영원하지도 않고 외로움을 안겨주기도 한다고.




죽을 만큼 사랑해도 절대 연락하지 않아


요즘 세상은 연락이 참 쉽다. SNS에 접속해 클릭 몇 번만 하면 바로 닿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사이가 더 친밀해졌느냐 하면 할 말이 없다. 연락할 수 있는 가능성만 확인할 뿐 절대 먼저 안부를 묻지 않는다. 온종일 분신처럼 핸드폰과 붙어있지만 전화 한 통 거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내 상태가 우울하다는 것을 느낀 후 본능적으로 친한 사람들과의 연락을 피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두운 얘기가 나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모두 힘든 시기에 나까지 스트레스를 더하고 싶지 않았다. 혹여 나의 어둠에 상대가 질릴까 봐 진심을 쏟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연락에만 답장했다. 메신저에는 캄캄한 속내와 달리 웃음과 이모티콘만 가득했다.


이 앨범에도 단절되면서도 이어지고 싶은 복잡한 심리를 담은 노래들이 있다. 약과 인터넷에 우정을 바꿔버렸다는 ‘Drugs & The Internet’과 뮤직비디오 내내 하트로 가득한 인스타그램과 Lauv의 슬픈 얼굴만 나오는 ‘Modern Loneliness’가 그러하다.


I sold my soul. And all I got is likes from strangers, Love on the internet

난 영혼을 팔았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은 전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좋아요’와 인터넷상의 사랑뿐이야.


전화 걸 자신은 없어도 누군가에게 내 상태를 알리고 싶어서 SNS에 적당히 포장된 진심을 올렸다. 순식간에 몇십 개의 ‘좋아요’가 달려도 외로움은 해소되지 않았다. 곧바로 유튜브를 통해 비슷한 슬픔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헤맸다. 소통은 두려워도 공감은 받고 싶었다.


Modern Loneliness, We’re never alone but always depressed, yeah. Love my friends to death, But I never call and I never text’ em.

현대의 외로움, 우린 절대 혼자가 아니지만 항상 우울하지. 친구들을 죽을 만큼 사랑해도 전화 한 통, 문자 한 통 하지 않아.


‘Modern Loneliness’에 대해 Lauv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바쁘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연락하기도 어색할 만큼 멀어져 버리지만, 결국 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하다고. 지금 바로 당신이 연락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노래를 들려주고 관계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보라고.


클릭 몇 번으로 전 세계 사람들과 이어지는 세상이어도 아직 우린 얼굴을 맞대고 얘기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는 다 좋아질 거야


연인과 친구마저도 외로움을 해소해줄 수 없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평생 이 외로움을 껴안고 살아야 하는 걸까. 행복과 안정은 정녕 꿈 같은 소리일 뿐인 걸까. 아무렇지 않게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우리는 너무나 연약하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라고 어른인 척 말해보아도 여전히 아이였던 그때처럼 이해받고, 의지하고 싶다. 이젠 그만 슬퍼하고 싶다.


I don’t wanna be sad forever, I don’t wanna be sad no more. I don’t wanna wake up and wonder. What the hell am I doing this for?

영원히 슬퍼하고 싶지 않아, 더는 슬퍼하기 싫어. 일어나서 고민하고 싶지 않아. 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지?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힘든 일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분명 괴로운데 뚜렷한 원인을 모르니 내가 이상한 것 같았다. 이전에는 모든 감정이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붙잡고 고향으로 향했을 때 아름다운 풍경과 가족들만 있으면 바로 다시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슬픔은 밝은 햇살 아래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순간에도 그림자처럼 내 곁에 머물렀다. 더는 슬퍼하거나 약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Sad Forever’의 후렴구가 마치 내가 세상에 내뱉는 말처럼 들렸다.


처절하게 슬픔을 거부하던 그는 ‘Changes’에서 안 입는 옷들을 정리하고 머리도 짧게 자를까 고민하며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남들 눈엔 지극히 사소한 행동이지만, 슬픔에 빠진 자에겐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발버둥이다.


Changes, they might drive you half insane. But it’s killing you to stay the same. But it’s all gonna work out, it’s all gonna work out someday.

변화, 그건 널 반쯤 미치게 할 수 있지만 머물러 있는 것보단 그게 덜 괴로울 거야. 결국 모든 게 다 잘 풀릴 거야, 언젠가는 다 좋아질 거야.


힘든 시기에는 이 우울과 슬픔이 평생 나를 짓누를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 믿음은 곧바로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무기력으로 변해버린다. 그러니까 우리는 더 움직여야 한다. 무기력한 상황이 슬프다는 건 우리가 변화를 갈망한다는 걸 나타내니까.




나도 그 외로운 눈을 갖고 있어서 알아


「~how i’m feeling~」은 앨범명 그대로 Lauv의 감정과 생각들이 솔직하게 담겨있다. 이 앨범에서 그는 전 연인의 이름을 부르며 후회와 그리움에 사무쳐보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어도 연락하지 못하는 속내를 털어놓으며, 남들 눈엔 사소하지만 그에게는 중요한 변화를 다짐해본다.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한구석에 숨겼던 감정을 그는 음악으로 완성하고 전 세계에 발표했다.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표현하는 게 괜찮아지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Sad Forever’의 공식 영상에서 Lauv는 신기하다는 듯 촬영만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외롭게 노래한다. ‘Mod ern Loneliness’ 라이브 영상에선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만 보는 사람들 무리에서 공허하게 정면만을 바라본다. 두 영상의 공통점은 한 공간에 있지만 단절되어 있던 사람들이 영상 말미에는 눈을 마주 보고 함께 노래한다는 것이다.


이 앨범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은 ‘나’라는 화자가 자신의이야기를 털어놓는 방식이다. 그런데 ‘Lonely Eyes’의 ‘나’ 는 오랫동안 상처를 간직했던 ‘그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전해준다.


Lonely eyes, She had those lonely eyes.

I only know cause I have them too.

외로운 눈, 그녀는 외로운 눈을 가지고 있었어.

나도 그 외로운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알아.


만약 ‘나’가 자신의 외로움을 인지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그녀의 외로움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을 이해하는 시발점은 나 자신이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타인의 상처받은 감정도 보이게 된다. 우리의 외로움은 모두 같은 본질을 공유하고 있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 이런 대사가 있다. “인간은 섬이다. 그 섬은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내가 우울의 파도에 잠겨 있던 시간은 당신과 나라는 섬 사이에 이어진 다리를 확인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핸드폰이 아닌 서로를 바라보자.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상대에게서 내가 보일지도 모른다.



Vol.18 <Dear. my blue> 中

Editor 진금미

Illustrator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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