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와 팬덤’ 트레바리 1회차 독후감 기록
일하면서 본질과 멀어지는 순간이 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사로잡히거나 뭔가 달라 보여야 한다는 강박을 가졌을 때 그렇다. 애써 본질로 돌아가 보려 하지만 유혹을 이기긴 쉽지 않다. 그럴 땐 내가 본질을 제대로 통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질에 자신이 없으니, 시선이라도 사로잡거나 다르게라도 보이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본질의 단어는 'BEAT'이다. 업의 본질을 고민하는 컨셉션 모델인 BEAT를 통해 어떻게 본질과 맞닿은 컨셉을 도출할 수 있는지 책에 다양한 사례와 함께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읽는 내내 내가 담당했던 브랜드가 절로 생각이 나서 계속 대입해 가며 읽어보았다. 덕분에 브랜드의 존재 목적과 컨셉을 스스로 다시금 상기시킬 수 있었다. 당장 실무에 써먹어 보고 싶은 보물 같은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직무와 관련된 책을 읽는 가장 큰 재미 요소 같다.
책을 읽으며 또 한 가지 통쾌했던 부분은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명확한 제품 및 서비스의 혁신이나 본질적인 차별화가 없는데, 그저 '다른 것으로 보이게 해달라'는 요청들이 적지 않다고 저자가 꼬집은 것이었다. 기업과 일을 하다 보면, 제품과 서비스 경험 자체를 혁신하기보다 컨셉이나 마케팅 차원의 톡톡 튀는 표현에 집중한 논의가 많다는 것이다.
PR 에이전시에서 AE로 일하면서, 나 역시 광고주로부터 '뭔가 다른 것'을 요청받은 적이 많다. 차별점을 찾기 어렵지 않은 날도 있었고, 어려운 날도 있었다. 도저히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일을 받았을 때는 내 역량이 부족한 것인지, 광고주의 요구사항이 무리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항상 들었다. 그 고민에 대한 답은 매번 다를 것이고 늘 어려운 문제지만, 비즈니스를 기획하고 혁신하는 역할이 아닌 마케터의 심정이 이해 간다는 저자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 <노자 마케팅>에서도 조만간 차별화 같은 전략 개념은 틀림없이 낡은 말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차별화를 위한 노력을 하기보다는 존재의 이유를 찾아서 스스로 존재하라는 것이다. 차별화를 넘어서 나다움을 이루는 것이 '브랜딩'이라면 이 브랜드다움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올바른 브랜딩 방향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기록 1
단어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신경 써서 사용하려는 편이다. 책 덕분에 ‘Consumer(소비자)’와 ‘Customer(고객)’, ‘Needs(1차 욕구)’와 ‘Wants(2차 욕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됐다. 비즈니스를 할 때는 소비자와 고객을 동시에 봐야 하지만 고객, 즉 '사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봐서 고객들의 불안 요소 및 불편 요소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과 마케팅에서 욕구는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되며, 니즈가 없다면 원츠는 결코 생기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현재 니즈와 원츠 중 어떤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배웠다.
[Consumer와 Customer]
- Consumer: 소비자, 사용하는 사람 ex. 기저귀의 소비자는 아기
- Customer: 고객, 사는 사람 ex. 기저귀의 고객은 주로 엄마들
[Needs와 Wants]
- Needs: 1차 욕구 ex. 냉장고가 필요하다
- Wants: 2차 욕구 ex. 냉장고 디자인이 예뻤으면 좋겠다
기록 2
P.21 브랜드들의 정신 없는 포장주의를 비판하면서 2000년 중반에 등장한 브랜딩의 트렌드가 'RAW Branding'이다. 제품, 서비스 자체의 혁신만 있을 뿐, 그것을 감싸는 불필요한 모든 것을 벗어 던지겠다는 것이다. 포장을 발가벗긴 '날것'에 가까운 제품과 서비스 자체만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미다. 일본의 '무인양품(브랜드가 없는 좋은 제품)'이 그런 트렌드의 선두에 서있었다.
하지만 브랜드를 포기하겠다는 '무인 선언'이 무색할 정도로 '무인양품'이라는 말 자체가 '브랜드'가 돼 버렸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무비판적으로 모방하는 브랜드들도 많아졌다. 마케팅의 수사는 덜 화려하게, 본질로 승부를 보는 듯한 느낌의 담백한 문장들이 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실체 혁신이 없는 상태에서 그러한 '비포장의 포장'은 여전히 포장일 뿐이다. '비포장의 포장'은 '날것의 브랜딩'이 담고 있는 정신을 읽지 못하고 표면만 담아내는 모습이다. 아직 우리 시장은 차별화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본질의 혁신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일하는 브랜더, 마케터, 디자이너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역할이 비즈니스를 기획하고 혁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24 본질을 고민하지 않은 채 튀기 위한 차별화 컨셉만을 갖고서는 더 이상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다. 현상의 차별화가 아니라, 본질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할 화두는 '달라야 한다'가 아니라 '왜, 누구를 위해 달라야 하는가'이다.
P.56 '업'은 언제나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것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집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식당'이 생겼고, 충치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어 '치과'가 생겼다. 사람들이 지닌 저마다의 욕망을 해소해주는 창구로서 업이 생긴 것이다.
업을 정의하는 데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떠한 욕망을 가진,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 하는 문제다. 고객을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업은 그들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고, 그래야 업을 실천하는 우리가 누구인지 명확히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97 나는 잘 모르는 영역의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남들보다 더 많은 관찰, 정성적 인터뷰, 문헌 조사를 하는 편이다. 그들이 가진 일상의 경험을 좇아가지 못하니까. 그것이 일을 맡긴 클라이언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P.200 멤버십은 단골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구축된다. 보통 단골 고객을 만들려면, 스스로 남아 있게 만들거나, 떠날 수 없게 해야 한다. 후자는 고객 주변에 약정 제도 등의 요새를 구축해 고객이 성벽을 넘어서기 어렵게 만들거나, 귀찮아서 성벽 안에 남아 있게 만드는 방식이다. 위약금을 내고 떠나려면 본전이 생각나서 계속 그 브랜드를 사용하게 되는 식이다. 보조금을 받고 핸드폰을 약정으로 구매한 경우, 쉽게 통신사를 바꾸지 못하는 것과 같다. 고객의 브랜드 이탈에 대한 전환비용을 높이게 되면, 높은 '이혼 위자료' 때문에 감히 '이혼'을 생각지도 못하게 된다.
문제는 전자다. 떠날 수 없게 만드는 건 강압적이고 수준 낮은 방식이지만, 고객의 마음을 움직여 스스로 남아 있게 만드는 것은 고수들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연애로 치자면 '밀당'을 통해 상대방이 내가 좋아서 헤어지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연애 고수다. 연인을 내 옆에 붙들어 놓기 위해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줄 수도 있겠지만, 반지 때문에 남아있던 연인은 누군가가 더 비싼 반지를 준다면 미련 없이 떠날지도 모른다. 가난해도 서로 사랑하고 결혼까지 하려면 상대가 겪고 있는 심적 어려움과 지금 필요로 하는 것, 좋아하는 것 등을 낱낱이 파악하고 속 깊은 '마음씀'으로 닫힌 마음을 어루만져줘야 하는 법이다.
P.219 인간은 언어기계다. 혼자서 아무리 고민해도 무언가 답이 안 나올 때는 동료들과 말을 섞으며 생각을 주고받아야 한다. 언어는 언어를 낳고, 새롭게 태어난 언어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다. 같이 토론할 동료가 없다면, 어쩔 수 없이 혼자 해야만 한다면, 정보 습득 후 혼자 글이라도 써봐야 한다. 글을 쓰는 과정은 대화의 과정과 비슷하니까.
P.266 컨셉션 모델 BEAT는 무조건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차별화, 차별화만을 위한 차별화를 배격한다. BEAT는 업에 대한 본질적 탐구와 사람에 대한 깊은 인문학적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인문학은 인문 고전에 나오는 어려운 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문은 그저 '사람의 무늬'일 뿐이다. 나이테의 수와 간격, 결을 보고 나무가 살아온 환경과 역사를 짐작할 수 있듯 이 컨셉을 기획하는 사람은 소비 시장 내 위치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무늬를 읽고 진짜 '문제'가 무엇이고, 최적의 '해법'이 무엇인지 연구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기회를 만드는 기획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