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대화 기술
자녀, 부부, 연인, 회사 동료 간에 말다툼과 같은 싸움은 누구나 겪었을 것이다. 그 싸움들의 결말에 대해 혹시 기억이 나는가? 혹자는 너무 많이 싸워서 기억이 안 날 수도 있고, 혹자는 자신의 승리를 추억하는 미소를 지을 것이다. 이 흔하디 흔한 이 자녀, 부부, 연인, 직장에서의 싸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철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되었던 질문이다. 닭은 알에서 태어나고, 알은 닭에서 태어난다. 이런 순환상태에서 어떤 것이 원인이고, 결론인지 구분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돌고 도는 순환의 상태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없다. 예를 들어 지하철 2호선은 계속 돌고 돌기 때문에 시작(원인)과 끝(결과)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순환의 상태에 놓인 것들은 서로가 상대적이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철학적 논쟁의 결론 비슷한 것이 되었다. 우주의 끝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논쟁도 비슷하였다. 도대체 닭이 먼저이든, 달걀이 먼저이든, 우주의 끝이 있던, 없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리하여 이 논쟁은 원인과 결과, 존재 유무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의 이유와 가치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로 급 마무리가 된다.
세상에는 이와 같이 어쩔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연인과 부부 사이의 갈등,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 팀장과 팀원의 갈등들이다. 이런 사안들은 누가 싸움의 원인인지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자녀의 반항은 이미 오래전 부모와 틀어진 감정에 기반하고, 연인과 부부의 다툼은 남녀라는 생물학적 차이에서 오는 사고방식의 다름에 기반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기싸움은 세대 간의 다름에 기반하고, 팀장과 팀원의 갈등은 지시하는 자와 실제 행하는 자의 차이에 기반한다. 이것들은 어느 한쪽에서 잘잘못의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순환의 상태에 놓인 상대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이것들은 잘잘못을 따지는 논쟁은 아무리 치열하게 해도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수준의 논쟁을 벗어날 수 없다. 이렇게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냥 놔두어야 한다. 논쟁과 잘잘못 따지기가 아무 의미 없기 때문이다.
의미 없는 논쟁은 그만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철학적 논쟁이 갑자기 초점을 바꿨듯이,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바라보는 것으로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자식이 나에게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내가 아이를 위해 어떤 것들을 포기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다. 연인과 부부는 배우자가 없을 경우를 상상함으로써 상대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나도 한때는 며느리였고, 나도 언젠가는 시어머니가 된다는 역지사지의 생각을 가져야 하고, 고부갈등으로 인해 숨죽이고 있는 남편을 토닥여 주어야 한다. 팀장은 내가 태어나면서 팀장은 아니었기에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 하고 부단히 리더십 함향을 해야 할 것이며, 팀원은 나는 앞으로 저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타산지석의 깨달음으로 간직해야 할 것이다.
따지기를 좋아하는 사람
잘잘못 따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흔히 말하는 언변이 좋아서, 미사여구를 통해 상대방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다. 이런 뛰어난 능력이 있다니, 이들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다. 이들에게 오기 장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역사서의 기록으로만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전쟁을 잘한 사람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오기 장군이 될 것이다. 오기* 장군은 부하의 엉덩이에 난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군사의 충성심을 얻었다는 일화로 유명한데, 역사서를 종합하면 76번의 대규모 전투에서 64번을 승리하고 12번을 무승부 한 무패의 장수였다. 이런 전쟁의 신이 그의 병법서에 남긴 글은 다음과 같다.
"천하가 싸움에 휩쓸렸을 때, 5번 이긴 자는 화를 면치 못하고, 4번 이긴 자는 그 폐단으로 약해지고, 3번 이긴 자는 패권을 잡고, 2번 이긴 자는 왕이 되며, 단 1번 이긴 자가 황제가 된다."
싸움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자원의 소모를 의미한다. 역사 속의 강력한 제국들은 전쟁에 져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국력이 약해져 스스로 무너진 경우가 더 많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싸움을 하는 것은 자신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잘잘못을 잘 따지는 사람들은 흔히 꼬투리를 발견하면 이것을 잡고 늘어지게 된다. 그래서 통쾌하게 상대를 넘어 뜨리게 된다. 넘어진 상대는 어떤 마음일까. 비록 이번에는 상대에게 눌렸으나, 마음속에는 다음에 큰 복수를 위한 칼날을 갈으면서, 보이지 않는 소심한 복수들을 자행해 나갈 것이다. 병법서의 기본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싸움을 지속하는 자는 결국 스스로 망하게 된다. 똥은 무섭다고 피하는 것도, 더럽다고 피하는 것도 아니다. 내 시간과 에너지가 아까워서 피하는 것이다.
본사의 높은 직위에 있는 부사장(VP)이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회사는 부서(Function)를 중심으로 조직된 글로벌 회사라, 아무리 본사에서 직위가 높다 하더라도 부서가 다르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나 역시 그를 복도에서 보았을 때, 간단하게 hi라고 하며 지나친다. 하지만, 해당 부서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 부서의 글로벌 최고 수장인지라 모두들 일주일 전부터 방문 준비를 해왔던 터였다. 그리고 부서 팀장급 이상과 소수의 핵심인재들은 그 부사장과 각 30분씩 일대일 면담이 배치되어 있었다.
특히 이번 방문은 다른 두 조직의 통합 직후에 이루어진 것이라, 모두들 이번 조직 통합에 대한 본인들의 관점을 정리하고, 이를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한 걱정으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처음 보는 부사장에게 다들 자기소개를 하고, 자신의 업무 핵심 내용, 이번 조직 통합에 따른 영향, 기타 도움이 필요한 사항 (글로벌 회사의 VP들은 자회사들을 방문하면서 항상 '내가 무엇을 도와주면 될까?'를 물어봐 왔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준비는 본능적으로 되어 있었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준비해 두었다.
하지만 실제 일대일 면담에서 그 부사장의 첫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Are you O.K.?"
"...................." 모두들 꿀 벙어리가 되었다고 한다.. 일부는 흔들린 멘탈을 붙잡고 준비한 대로 자기소개를 줄줄이 읊었으나.. 그 부사장은 다시 "Are you O.K.?"를 물어봐서 더 큰 동공 지진을 겼었다고 한다.
그 30분의 면담은 20분 동안 현재의 감정과 개인적인 소소한 이야기들로 진행되었고, 나머지 10분만 간략한 업무 이야기와 자세한 건 메일로 보내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이후 면담을 했던 구성원들은 뭔가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신선한 면담이었다고 하며, 이후 그 부사장에 대한 열렬한 팬이 되었다. (한 명은 그 부사장이 자신의 롤모델이자 경력목표가 되었다고 한다)
그 부사장은 벌어진 사건을 먼저 보지 않고, 사람을 먼저 보았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를 할 때,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먼저 사람에 대해 물어본다. 상대가 어떤 기분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싸우지 않으려고는 하나, 직장에서 수도 없이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그 싸움과 다툼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가?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빛바랜 사진처럼 미화되고 흐려지고, 그 싸움에는 승자도 패자도 남지 않게 된다. 남아 있는 것은 당시 누가 옳았고, 틀렸는지가 아니라, 그때 나를 다독여 주고 위로해 주었는 던 따뜻한 한마디와 손길일 것이다. 직장에서 무엇이 맞고 틀리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먼저 사람을 보기 바란다.
그 옛날 누군가 나에게 올바름과 친절함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올바름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변곡점을 지나게 되다 보니 이제는 올바름보다는 친철함을 선택할 것 같다.
* 오기(吳起, ~ 기원전 381년)는 중국 전국시대의 병법가이며, 장군이자 정치가이다. 본래 위나라 출신으로, 증자의 문하에 들어가서 유학을 공부하였으나 그와 의절한 후에는 병법을 공부하여 장군이 되었다. 이후 노나라 · 위나라 · 초나라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관직에 올라 전공을 거두어 명성을 떨쳤고, 최후에는 초나라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장군으로서 사졸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언제나 고생을 함께 함으로써 그들의 충성심을 얻었으며 이 일화에서 "연저지인(吮疽之仁)"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하였다. 그와 관련된 저작으로 《오자병법》(吳子兵法)이 전해지며, 동양의 고전 중에서는 《손자병법》과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병법서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