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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 Sep 28. 2020

혼자 큰 아이는 없다

I. 생각의 정돈

수능 천재

인사조직설계 프로젝트로 지방에서 몇 개월 근무 중이었을 때다. 하루는 저녁 술자리에서 고객사 팀장님이 점잔 하신 한 분을 소개해 주셨다. 이분이 OO 년도에 수능으로 이름을 날린 분이라며, 뉴스로 대서특필되어 같은 학번인 사람들은 대부분 다 안다고 한다. 들어보니 수능 외에도 이분은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완벽한 스펙을 가지고 계셨다. 이런 비범함으로 이 분은 신입사원 때부터 빛이 났고, 그리하여 임원에게 직접 보고하는 1인 부서로 근무해 왔다. 이분은 분명 일을 잘하시고 좋은 평편을 가진 분이었으나,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내가 보아왔던 최고의 인재 대열에는 들지 못한다고 생각되었다. 이 분은 너무 오랫동안 혼자 일하여, 같이 일하는 것에 서투름이 있었고, 다른 사람을 다루는 것에 미숙함도 보였다. 만약, 이 분이 신입사원 시절에 일반 부서에 배치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분은 앞으로 리더십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사장님의 독수리 타법

한 고객사의 사장님은 회사의 경영자로서 뿐만이 아니라, 그 업계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분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존경받는 분과 같이 일하면서 한 가지 놀랐던 사실은 그분이 독수리 타법으로 메일을 쓴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 분과는 집무실 또는 회의실에서 미팅으로 만났기 때문에 직접 컴퓨터를 하는 모습을 뵌 적이 없어, 독수리 타법으로 워드를 치시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훌륭하신 분이 독수리 타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메일을 쓰고 계시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임원분들의 타자법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독수리 타법과 일반 타자 타법에는 엄청난 업무 효율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분은 독수리 타법을 버리지 못했을까? 회사 중역들은 보통 55세 이상이 되신 분들로 처음 일을 시작하셨을 때는 컴퓨터가 보편화되지 않아서 직접 타자를 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뒤늦게 부장 즈음되었을 때 컴퓨터로 직접 타이핑을 하기 시작하였을 것이고, 그때는 누구도 부장급 이상에게 타자 치는 법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주 유능한 분이라도 처음에 어떻게 배우느냐에 따라 매우 비효율적인 독수리 타법도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의 첫 번째 선생님

유대계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벤자민 블룸은 '선택 분야 내에서 최고 수준의 성취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약 50여 년을 시카고 대학교에서 연구하며 보냈다. 그의 연구 중에는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지에 오른 성공한 사람들을 가르친 맨 처음 지도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조사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이들은 모두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통해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아이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 처음 자신의 일에 흥미를 가지고 자신감을 갖게 해 준 선생님의 존재가 성공의 첫 번째 비밀열쇠였던 것이다. 이를 직장 생활에 적용한다면, 새로 온 신입직원에게는 비록 처음이라 서툴지 모르지만 의도적으로 칭찬과 격려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신입직원에게는 올바름과 친절함 중에서 친절함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기에 신입직원에게 자주 호통을 치는 직원들이 있는데, 이들은 조직 차원에서 제재를 취해주어야 한다. 


인생의 스승

모든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이 발휘되도록 성장을 도와준 인생의 스승들이 반드시 있었다. 에디슨과 아인슈타인의 뒤에는 아이의 특별함을 믿어준 어머니가 있었고,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에게는 당시 피란체를 통치하고 있던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가 있었으며,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에게는 모나코 왕립발레학교장 마리카 베소브라소바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인생의 스승으로부터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지원과 기회를 받았다. 첫 스승은 아이에게 칭찬과 격려를 주나, 인생의 스승은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회사에서도 직원의 성장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때론 단호하고, 때론 따듯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 인생의 스승들이 있다. 이런 인생 스승을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성공을 결정하는 두 번째 비밀열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좋은 인생 스승도 사람인지라 항상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무서운 현상은 멘토/선배/사수/상사의 좋은 점은 배우기 쉽지 않으나, 나쁜 점은 너무 쉽게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상사의 나쁜 모습/습관에 대해 불평과 비난을 쏟아내지만, 몇 년 후에 그들이 그 상사의 나쁜 모습을 거의 비슷하게 하는 현상을 너무나 많이 보아 왔다. 이것은 상사의 나쁜 모습/습관에 장시간 노출되면, 그 나쁜 행동들에 대한 민감성/감수성이 무뎌져서, 이 정도 해서는 아무 문제 되지 않는다는 머릿속의 행동의 준거점이 더 나쁜 쪽으로 편향되게 움직여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생의 스승에 좋은 면을 취하고, 나쁜 면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성공으로 가는 세 번째 열쇠  

벤자민 블룸은 그의 저서 Stability and Change in Human Characteristics에서 인간은 성장할수록 인간의 특성이 안정화되기 때문에, 인간의 특성에 환경적 요인이 미칠 수 있는 정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든다고 하였다. 즉, 사람이 성장할수록 스승으로부터 영향받는 것은 적어지고, 이제 스스로 깨우치고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성공한 인재들의 공통점을 보면, 이들은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할 때 좋은 사수, 멘토 밑에서 일을 착실 또는 혹독하게 배웠는 것이다. 그들이 처음 입사할 때 얼마나 유능하였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역량개발과 관련하여 미국의 유명 리더십 교육기관 CCL에서는 70/20/10의 법칙 이야기한다. 역량개발에 있어서 70%는 일을 통해 배우고, 20%는 남을 통해 배우고, 10%는 교육장을 통해 배운다는 것이다. 즉, 90%의 역량개발은 직접 일을 하고 남을 통해 배운다는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많은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의식적인 훈련을 1만 시간 동안 해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타고난 재능과 주변 환경이 받쳐주고, 그리고 개인의 고독한 훈련의 시간을 통해, 한 분야의 경지에 오르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성공의 비밀열쇠는 자신 스스로 각 분야에서 어느 수준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직접 일을 하고 남을 통해 배우며 의식적인 훈련의 1만 시간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 큰 아이는 없다. 

철없는 아이들은 나 혼자 컸다고 한다. 하지만, 성숙한 아이는 자신이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안다. 마찬가지로, 지금 성공한 직장인이 그 자리에까지 온 것은 혼자의 힘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 사수들과 팀장들, 지금의 동료와 상사가 있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렇기에 최고 인재들은 자신이 특출 나서 성공했다고 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선배와 동료, 그리고 내 팀원 덕분에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더 배울 것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신입직원들은 혼자 크지 않는다. 그리고 회사에서 다 큰 어른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 다 큰 어른들은 고독하지만 혼자 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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