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안(event)은 객관적 실체와 주관적 반응으로 구성된다. 이런 생각의 틀을 바탕으로 현재가 충만하고, 행복감 높은 삶을 위해 객관적 실체를 중심으로 생활하고, 기대치를 낮추어야 한다고 했다. 왜 우리에는 이렇게 생활해야 하는가?
46억년의 지구 역사에서 인류가 다른 동물에 잡혀 먹는 걱정에서 벗어난 것은 불과 수천 년 전이고, 배고픔 걱정에서 벗어난 것은 불과 몇백 년 전이다. 하지만, 우리의 몸은 이렇게 빨리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과학자들은 우리 신체의 유전자가 아직 신석기 수렵채집 시절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배불리 먹어서 발생하는 비만, 당뇨병은 현대인들만 가지게 된 질병이다. 역설적이지만, 현대인들은 너무 풍족하기에 병에 걸리게 되었다. 이런 현대인들의 질병은 육체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존재한다.
현대 시대는 인류가 처리할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기능에 비해 모든 것이 풍족하고 넘쳐난다. 50년 전 아이를 기를 때 필요했던 지식과 지금 육아를 위해 필요한 지식은 마치 반도체의 처리 능력이 향상되는 것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왔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먹고, 생각하고, 처리해야 한다.
오히려 풍족한 것이 문제가 되는 이 시대에, 정신적인 측면에서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비만, 당뇨병처럼 현대인은 정신 질환에 쉽게 빠질 수 있다. 그 한 예는 자살이 될 것이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연간 1만 3천 명이(하루 평균 37.5명) 넘게 자살하였다. 이는 OECD 36개 회원국중 불명예스럽게도 1위이다.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는 다른 큰 동물에게 잡아 먹히는 것을 걱정을 하지 않지만, 스스로를 죽이는 (자살) 것을 걱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궁지에 몰아넣었는가? 현대인이 쉽게 빠지는 덫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으로 이어진 이 시대에 인간이 접하는 정보의 양은 과거 인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제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의 정보를 실시간 접할 수 있다. Social media에서는 너무 많은 행복한 표정들이 있기 때문에 나의 무표정은 마치 낙오자가 된 것 같은 불안감을 만들어 준다.
경영학 인사관리 분야에 '호손의 두 가지 동기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에게는 동기 요인과 위생 요인이라는 것이 있는데, 동기 요인은 칭찬, 격려, 믿음과 같이 사람을 만족시키는 요소이고, 위생 요인은 작업장의 청소 상태, 급여 보상과 같이 불만족을 없애는 요소이다. 이 이론에서 고찰할 부분은 위생 요인은 아무리 좋아져도 사람의 만족도를 높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작업장의 청소가 아무리 깨끗하고, 급여가 아무리 높아도, 불만족은 없어질 수 있으나, 만족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마치 누구나 내 월급이 항상 100만 원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인류의 과학기술 발전은 이런 위생 요인을 기약적으로 발전시켰다. 한국사회에서 이제 어느 화장실에 가도 기본적인 청결함이 갖추어져 있고, 길거리에 쓰레기 버리는 일도 적어졌고, 최저임금도 상대적으로 향상이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위생 요인은 사람의 마음을 만족스럽고 풍요롭게 만들지 못한다. 사회는 발전되어도,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허전하고 공허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로 인해, 과학기술이 발전되고 풍요로운 이 시대에, 현대인들은 마음의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주관적 반응을 낮추고, 객관적 실체 초점을 두는 행복 공식과 같은 자기 계발과 수양 활동이 필요한 것이다.
가난은 가진 것이 너무 적다는 말이 아니다, 원하는 것이 더 많다는 말이다. - 세네카 격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