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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류 Oct 23. 2023

날마다 여행 중입니다.

눈에 단풍이 들다.

오늘 캐나다는 바람이 참 예쁘다.

바람에도 결이 있는 듯

노랗게 물든 자작나무에도,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에도,

길섶의 키 작은 풀나무에도

바람은 허둥대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떨어지는 잎들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기며 위로하듯 조심스럽게 분다.

나로 인하여 너의 잎이 떨어지더라도 너에 대한 미움은 없으니 이해해 달라는 듯 그렇게....


그런데 내게로 다가서는 바람은

표정을 바꿔 길가의 먼지를 품어다 내 눈에 훅 던지고 달아난다.

눈동자에 가시처럼 박힌 먼지를 털어내느라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들어 나무들을 보니 그네들은 여전히 평온하다

내 눈은 먼지로 인해 벌겋게 충혈되었건만.

바람은 행여 내 눈에도 빨간 단풍을 들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바람이 불면 나는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옷자락을 단단히 여미고 그 바람을 피하려 애쓰지만,

나무들은 빼앗길 것이 많음에도 움켜쥐지 않고 고스란히 바람 앞에 내놓기 때문일까.

바람은 내게는 거칠지만 식물들에게는 더없이 너그럽다.


내가 가을 나무들을 질투하는 것일까...

내가 가을바람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일까....




바람을 대하는 나의 생각은 대체로 셋으로 구분이 되는 것 같다.

내가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곳에서의 바람에게는 나의 간섭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선은 일상에서의 바람은 온전하게 현실과 맞물려 내게 오게 될 실과 득을 따지며 이기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반면 나의 일상을 벗어난 이런 여행지에서의 바람에게는 나는 다만 불편하다 또는 불편하지 않다로만 판단한다.

그 바람으로 인해 다소의 불편은 있을지언정 내 삶이 크게 영향을 받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바람은 예를 들자면 화가의 작품 속에서 만나는 바람 같은 것이다.

아주 오래전 나는 미술관에서 한 그림을 봤다.

바람이 거칠게 불고, 파도가 바다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넘실거리는 것을 모녀가 조용히 지켜보는 그림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림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아름답다 생각했다.

바람도,

하얀 파도도...

그리고 모녀도...

그림에서 눈길을 거두며 그제야 그림의 제목을 봤다.

'근심'이었다.

순간 부끄러움에 얼굴을 손에 묻고 말았다..

나의 무례에 무릎을 꿇고 싶었다.


다시 그림을 봤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모녀의 얼굴에서 공포와 불안을 봤다.

어쩌면 고깃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남편이며 아버지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저 거친 파도가 배와 아버지를 삼켜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가득 찬 모녀의 근심을 보며 나는 아름답다고 했으니..

때로는 그런 바람이 있다.

타인의 시선으로는 결코 읽어낼 수 없는 그런...




비가 온다.

물기를 흠뻑 둘러쓴 나무들의 모습들이 처연하도록 곱다.

물기는 나무 본연의 색깔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가장 솔직한 모습.

그래서인지 한 점의 빛의 투영도 허락하지 않는 비에 젖은 나무들은 더없이 아름답다.

회색의 공기와 이렇듯 완벽하게 어울릴 수 있음이 신비롭기마저 하다.

바람도, 나무도, 풀도 잠에서 쉬 깨려 하지 않는 날이다.

그래서 마냥 고요하다.

다소의 불편함이 따르겠지만,

비가 와서 내게는 너무 아름다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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