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가 정말 추워졌어
인천에서 H 가 10
ㅇㅇ오빠
오늘 날씨가 정말 추워졌어
이젠 HJ는 너무너무 기뻐할 거야. HJ가 제일루 좋아하는 겨울이 왔거든
HJ는 비록 이불속에서 책 보는 ( 만화책) 시간이 더 많지만
창밖에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모서리 치게 좋아해.
거리에서 흐르는 군밤 냄새가 나의 입가에 미소를 지어내고
또 집안엔 찐 고구마가 한 소쿠리에 식구들의 다정한 이야기 꽃이
나를 즐겁게만 하는 겨울 그리고 나를 아늑하게 하는 겨울
아이구 참! 고마워, 편지, 테이프, 그림, 책, 편지는 재미있게
어렵지만 잘 읽었어. 테이프는 나의 잠자리를 부드럽게 꿈나라로 바꾸어줘.
그 나이키 신발 그림은 나의 일기장의 한 페이지가 되었어. 책은
어려운 책 같아서 시험 끝나고 여유 잡고 읽을까 하는데 모르겠어
사진을 보고 난 말이지 지금에 모습이 낫다고 느꼈어
으음 참 난 왜 이렇게 할 말이 없는지 모르겠어
이렇게 별이 이쁘게 반짝이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으면서
재미있는 말, 이쁜 말을 할 수가 없어. 아니할 수는 있는데 너무 고차원적인 말들이라서
오빠가 알아듣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못해 히히. 이럴 때 어울리는 속담 ‘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이색해 죽겠어. 존댓말을 쓰면 꿀밤이 먹기 싫어도 한아름 들어올 것 같아서 열심히 ‘요’ 자를 빼고 있는데 참 난생처음으로 편지해 보는 격이니 원참 힘들어서...( 아이 찝찝해)
E. T두 말이야. 겨울에는 두터운 겉 옷에 장갑을 끼고 달달 떨면서
이 대한민국 하늘 아래를 돌아다닐 거야. 그러고 보면 오빠의 선경지명도 훌륭하지.
나에게 겉옷을 과감히 벗어줄 수 있다니. 되도록 화폐의 가치성을 띄고 있는 직사각형의 종이가 많을수록 더욱 오빠의 선경지명은 훌륭할 거야.
이렇게 훌륭한 오빠의 정신을 이어받아 과감히 겉옷쯤 하고 벗어 줄 수 있어야겠지만 오빠의 사랑스러운(?) 동생 E.T는 그리 살 용기가 없어요.
난 또 오빠가 동생 E.T를 위하는 (?) 맘을 보고 심심하지 않은 보답을 하고자 한다. 21일 날 오빠에게 미역을 물에 잘 불려서 줄까 하다가 차마 22일의 중요한 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넘기기로 했음( 생각해 봐서 엿이라도 아! 아니지 오빠 엿도 못 먹고 시험 보겠지 너무 많아서 )아이구 야마야 오빠 여유 잡고 신혼여행이나 즐기고 HJ는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만 하고 (바늘로 가슴을 찌르는 듯함)...... 하기사 재미있게 놀다 와서 열심히 공부하면 더 좋지. 오빤 이제부터 총마무리를 잘할 거야 왜 그렇게 믿는가 하면 나의 오빠이기 때문이야.
하~앙 졸려 HJ 도 이젠 내일을 위해 자야겠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잠 올 땐 하늘 좀 보고 또 심심할 땐 데이트도 하고 해서 저녁에 이 HJ 얼굴을 볼 때 ‘ 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라는 인상을 주어봐
정말 잘 거야. 공부를 하든지 자든지 오빠의 뜻대로
오늘 밤 이 시간에
이 사람이
PS 일부러 뺀 부분 있음. 이유 오빠에게 무의식적으로 말해버렸기 때문에
인천에서 동생이라고 보내는 여학생 이름을 알아버렸다.
이리하여 지난번 여학생과 동일인이 아닌 다른 여학생
도대체 몇 명? 인지도 모를 여학생들의 편지를 읽는다
필체도 보낸 지역도 나이 때도 비슷하다.
어렴풋이 자신은 여동생이 없어서 여동생 삼은 동생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때도 속으로 “ 꼴값 떨고 있네” 했었는데
진짜 꼴값을 많이 떨었구나. 얼어 죽을 여동생들이 한둘이 아니다.
미술부였고 그림을 잘 그렸던 남편은
이 여학생에게 나이키 운동화를 그려주고 음악녹음테이프도 해서 주고
그랬나 보다. (이 유전자를 작은 녀석이 물려받았다.)
남편이 정말 잘하는 것이 있다.
선물을 진짜 잘 고른다.
해외 출장 가거나 아니, 평소에도 애들 선물도 잘 산다.
선물이 맘에 안 들거나 실패한 적이 없다. 별명이 선물왕이다.
일본 출장 때 사 온 로봇 강아지
영국 출장 때 사 온 펭귄 카메라
시애틀에서 산 아기신발... 은 지금도 내가 잘 보관하고 있다.
출장 갈 때마다 함께 간 동료들은 선물 살 때
남편이 사는 것을 따라서 사면 실패가 없다고 했단다.
아, 그 시절 메이크업 박스도 사 와서 딸들이 정말 좋아했었다.
목걸이, 귀걸이, 시계, 나에게 준 선물들도 내 맘에 쏙 들었다.
다만 자신이 사준 것도 잊고 내가 차고 있는 목걸이 시계들을 보고는
“ 그거 어디서 났어?” 했다
“ 당신이 사주 거잖아?” 내가 말하면 자신은 기억 안 난다고
“어느 놈이 사준 거냐” 이러다 몇 번 진짜 싸우기도 했었다.
내가 귀금속이나 그런 걸 사는 성격이 아닌 걸 알고 더욱 그랬다.
( 지금 생각하니 정말 어이없고 기막히다)
남편이 내게 처음 준 선물은
종로 지나가다 리어카에서 사준 하얀 플라스틱 반지
그리고 체크무늬 스카프와 수첩이었다.
그 처음 사준 체크 무늬 작은 스카프는 지금도 예뻐서
겨울이면 니트 입을 때 목에 두르고 있다.
남편의 선물사는 센스는
이렇게 뭇 여학생들에게부터 갈고닦은 실력이었다.
무슨 일이든 실력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게 아니다
무수한 연습의 결과다. 물론 타고난 센스도 있다.
이 센스는 큰 녀석이 물려받았다.
(자식은 부모의 참 많은 것을 닮는다. 진짜 결혼 잘해야 함)
남편은 자상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여자들에게 옷도 잘 벗어준다. (이런 남자 정말 극혐인데 ㅠㅠ)
남편은 남녀노소 사람을 정말 좋아한다. 전형적인 E (라고 해야 할까?)
정작 집에 있는 마눌에게 할애할 시간이 늘 없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어디 너무 멀리 달아나진 않고
두 딸들에게 뿌리박고 지원을 다 쏟아부었으니
자신을 벗어나 정말 위대한 일을 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래, 훌륭하다.
이렇게라도 날 위로해야지 어쩌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