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리고 너의 안부를 전하며
81.6. 5. H K ! 11
너에게
지금 아주 조용한 새벽이걸랑
어제 모의고사 보구 그저께 너의 편지 받구 그그저께 소풍 갔었고 그그그저께 중간고사 삼일동안 보구 그렇게 지냈어
피곤했어 모든 게 다
계획엔 어제 편지하기로 했는데 시험 때문에 화가 나서 일찍 자 버렸어. 그게 있지
너 편지 보구 얼마나 비웃었는 줄 아니. 아무렴 이십~삼십개라니 참 모의고사
범위 내에서 중간고사포함되는 건데 중간고사 공부가 곧 모의고사 공부아냐
했걸랑. 그랬는데.......
어처구니없게 내가 바로 너 꼴이지 뭐야 정확히 25개 미달이야. 지난번 점수에서
사실 오월엔 삼 학년이란 걸 망각(?) 했었는지도 몰라
영화도 봤구 연극도 보고 그리고 국풍 81도 갔드랬어. 그러니까 오월엔 주일마다 돌아다녔으니까
도서실엔 한 번도 가지 못했지 뭐 아니 안 간 건가?
하여튼 그래. 어제는 슬펐어. 괴로웠구 막 죽상(죽을상)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아있는데
(삶의 회의를 느끼면서) 라디오에서 뭐라는 줄 아니 “ 먹어야 살죠” 이말이 아주 하이톤으로
울려 나오더라 어땠겠니 내 기분.
휴 진짜 동(똥) 물에 빠졌다 나온 뭐 그런 거 비슷한 기분이드라
그치만 오해하지 마 동물에 빠져 본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참 지난번 편지받구 궁금했어 무척 막 기분이 안 좋드라-
잘은 모르겠지만 이번 너의 글로 보다 네 주변이 조금은 호전적인 것 같아 얼마만큼은
안심이 되어 편지보고 웃을 수 있었다... 어떠니?
내 예감이라는 것 99%는 믿을게 못 되지만 1%의 신빙성이 없는 건 아니걸랑.
후훗 갑자기 생각난 건데 있지 너 내가 보구싶다고 했을 때 것두 아주
난생처음이라고 했잖아 그때 기분이 어땠니?
난 그 편지 보내구 막 흥분해서 종일 방방 떴드랬지 뭐야 아이 챙피해
건 그렇구 유월부턴 진짜 정신 차려서 공부하기로 했다
대학이란 걸 꼭 가야겠다는 비장 비슷한 각오 아래 말야
나만 가구 너는 못 가면 어떡하지 아니 이건 실언이야
너만 가구 나는 못 가면 어떡하지 이것두 실언
너도 가고 나도 가자
자! 이젠 안녕
모처럼만에 편지하고 나니까 굉장히 기뻐
언제나 이렇게 부드러운 마음으로 편지할 수 있는 친구를
갖게 해 주신 전능신씨 에게
나와 그리고 너의 안부를 전하며
1981 6. 5 H K !
.....
소풍 얘기하는 거 보니 남한산성 소풍 간다고 했던 여학생인가 보다.
그 사이 남편이 보고 싶다고 편지를 썼나 보다,
그것도 아주 많이 보고 싶다고
그 보고 싶은 마음이 난생처음 감정이라고 했나 보다.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내가 알기로 이때는 이미 B라고 하는 여자친구가 있던 걸로 아는데 ,,,
이 편지 보낸 H와 편지 받은 H 씨 “둘 다 대학 못 갔다.”에 내 전 재산을 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