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고 싶기에 진정 사랑이란 것을
어제 칠복이 어린이집을 데려다 주는데,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더라고요. 다들 새해를 맞아 굳은 결심을 한 것이겠죠? 여러분은 새해 계획을 세우셨는지요? 지난 글들을 보니 영어 동화책 리뷰가 특히 조회수가 많던데, 여기 오시는 분들께선 영어 공부나 아이 영어동화책 읽어주기 같은 계획을 세우셨는지, 아니면 다른 계획을 세우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올해 칠복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꼬박꼬박 글 올리는 게 하나의 목표고요. 또 재취업도 목표하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목표는... 칠복이를 더 사랑하기인데요. 이제 슬슬 자기 혼자도 제법 노는 나이가 되니, 저는 저대로 집안일을 한다던가, 가끔 너무 화가 나는 기사가 올라오면 (왜 그런 기사가 요즘 이렇게 많은 거죠.) 잠시 인터넷을 하는 등, 아기에게 집중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또, 이제 아기가 점 점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니까, 이것저것 잔소리를 시작하게 되더라고요. 음식을 던지면 안 된다, 의자 위에 서있지 마라 등등.. 아기가 더 활동적이 된 것도 있어요.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 티슈를 한 통 다 뽑아 놓거나, 벽에 낙서를 하거나, 이상한 걸 집어먹거나 하잖아요. 이런 일이 하루 종일 계속되면 가끔은 너무 화가 나요. 그쵸? 아기가 잠들면 진이 빠져 침대에 쓰러져요. 그리고 누워서 생각하죠. '아기가 뭘 알겠어. 내가 좀 더 참을걸.' 이렇게 아기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야단을 치고 속으로 후회하는 분들, 많으실 거예요. 오늘은 그런 부모님을 위한 책을 소개합니다.
Todd Parr의 <The I Love You Book>. 그리고 깍두기로 소개해 드리는, 미야니시 다쓰야의 <엄마가 정말 좋아요>
판형은 <엄마가..>가 훨씬 큽니다. 두 그림 이어 붙일 때 사이즈 조절은 어떻게 하나요?
미국 작가 Todd Parr토드 팔의 그림책은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아주 강렬한 스타일을 자랑하는데요. 토드의 책들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선정 외 다양한 수상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작가 홈페이지는 “사람들은 내 책을 활기차고, 상냥하고, 신선하고, 위로를 준다 (Cheerful, kindhearted, refreshing, reassuring)고 평한다”라고 자신의 작품을 소개했네요.
더 많은 정보는 여기에... 교사와 부모를 위한 다양한 자료, 그림 등이 준비돼 있습니다.
작가 홈페이지에 신상이 별로 없어서 위키를 들어가 보니, 토드는 62년생, 와이오밍에서 자라 샌프란시스코에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요. 전직은 비행기 승무원이었다고 합니다. 2005년엔 직접 만든 ToddWorld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이 TLC와 디스커버리 키즈에서 방송됐다고 하는데요. 이 프로그램은 데이타임 에미상도 수상했네요.
토드의 짧고 쉬운 문장과 그림 스타일은 아주 낮은 연령대 아이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읽어 보면 내용이 좀 심오한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산드라 불록이 아이들 자기 전에 읽어주기 가장 좋은 책으로 꼽았다는 The Family Book (모든 가족은 특별해요, 문학동네) 에는 이런 내용이 있거든요. “어떤 가족은 엄마랑 아이만 있고, 어떤 가족은 엄마 만 두 명 있고…” 싱글맘, 동성애자 부모를 설명하는 내용이죠. 또 The Earth Book(내 친구 지구를 지켜줘, 고래이야기), The Peace Book 등 제목만 들어도 한국에선 논란이 많이 되는 주제들인데요. 아이에게 읽어주기 전에 엄마 아빠가 먼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즈앤노블스 서점의 ‘혐오에 관한 책을 덮어라!( Close the Book on Hate)’ 캠페인 추천 도서로 뽑힌
<달라도 괜찮아>
"달라도 괜찮아. 너는 너 자신이란 그 이유로 특별하고 소중해"
오늘 소개할 The I Love You Book은 전혀 그런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내용이에요. 한 번 읽어볼까요? 이 책은 24페이지에 걸쳐 한 장 한 장, 부모가 아이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렇게 “네가 이러이러할 때 난 너를 사랑해.”라는 내용이 이어지죠. 토드 특유의 강렬한 색감이 두드러지네요. 원색이 아니라 형광색에 가까운 느낌이 들 정도에요. 하지만 위의 토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시면 그의 그림을 액자나 캔버스로 만든 게 있는데요, 또 그렇게 해 놓으면 초 모던 키치 벽걸이 느낌?
마지막 세 페이지는 결론, ‘있는 모습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 그리고 토드의 전매특허, 편지 한 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이 필요해. 이 세상엔 모든 사람이 나눌 수 있을만큼 충분한 사랑이 있어. 항상 너 자신을 사랑하는 걸 기억하렴! 애정을 담아, 토드"
약간 흔한 느낌인가요? 잠깐 그런 느낌 넣어두시고 아래를 보시면,
이렇게 뜨끔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솔직히 너무 힘들어서 아기를 조금 미워도 했던 그런 순간들 있잖아요. 저희 집도 아직 열쇠로 잠그는데, 남편 열쇠는 없어진지 이틀 만에 블록 상자 밑바닥에서 발견됐고, 제 열쇠는 아직…..
아기를 재울 때의 그 힘듬이란. 졸리고, 힘들고, 허리가 아파오고, 아기는 계속 울때… 도망가고 싶죠. 아기도 자고 세상 모두가 잘 때도 가끔 도망가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그쵸? 이럴 때 자이언티의 노래 한 구절.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거야."
-- “이럴 때, 진짜 사랑한다 말할 수 있습니까?” 테스트 --
(출처: The I Love You Book)
When they are silly
(Silly: 장난을 치거나, 실없고 이치에 닿지 않는 행동을 할 때/ 꼭 나쁜 말은 아님/ '그건 좀 바보 같아' 라고 할 때 That’s silly라고 함.)
When they are sad
(그림: 차 안에서 울고 있음)
When they are scared
(그림: 밤 중에 자다가 엄마 침대로 옴)
When they are sick
(사랑이 아니라 절망이 느껴져요)
When you need hugs
(그림: 안아달라고 생떼 중)
When you are stinky
(그림: 똥 쌌음 ... 엄마는 니가 1일 1똥만 했음 좋겠어...)
When we cook
(그림: 찬장에서 캔을 막 꺼내 놀고 있음)
When we eat
(그림: 음식을 오만군데 묻히고 있음. 엄마가 신데렐라로 빙의할 시간)
하지만 이런 순간도 있죠.
When they are brave
When we are cuddled up close
(꼭 껴안고 있을 때- 아기랑 눈이라도 마주치고 있자면 사랑이 막~)
When they sleep (훗)
When we dance
(아기와 함께 춤을 추면 정말 Silly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죠)
When they feel better
(아프다가 나았을 때)
When you give me kisses
(뺨은 침으로 범벅이 되지만 마음은 둥실둥실)
When you share
(보통 장난감을 양보하라고 할 때 Share라는 말을 써요.)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그렇게 힘들기도 해야 하는지, 엄마라는 이 자연스러운 자리는 왜 이렇게 자연스럽지 못하게 힘든가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한다는 거예요. 엄마, 나는… 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
--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중
… 우리 아들이 이런 말을 해 줄리는 없겠죠.
이 책이 이렇게 육아의 사랑스러운 순간과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함께 넣은 이유는 뭘까요. 이 책을 읽다가 아이가 “엄마, 내가 저번에 엄마 자동차 키 숨겼을 때 화냈잖아.”라고 하면, 부모가 “…음, 음… 그, 그래도 엄마는 너를 사랑했어!”라고 대답하면서 아이에게는 약간의 치유를, 부모에게는 약간의 반성과 면죄부를 주기 위함일까요?
비슷한 메시지를 더 대놓고 전하는 책, <엄마가 정말 좋아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쁜 예/ 좋은 예죠. 아기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엄마는 내가 이럴 때 이렇게 말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더 좋아 라는 내용이 쭉 이어지는데요. 야단을 치는 엄마는 대부분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게 흥미로워요 . 아이가 엄마의 화난 얼굴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미야니시 타츠야의 작품은 한국에 많이 소개되어 있네요. 이 작가는 그래픽 디자이너, 인형 미술가이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뭔가 엉뚱하고 재미있는 분위기가 이 작가의 특징인가 봐요. 이 책은 판화처럼 굵고 단순한 선과 색을 사용해서 시원시원한 느낌인데, 그럼에도 인물들의 표정이 살아있죠?
이 책 역시 마지막에 찡한 결말이 있어요.
'태어나 줘서 고마워' 라는 말을 가슴의 동요 없이 할 수 있는 부모가 있을까요? 사랑한다는 메시지마저 다소 쿨한 The I Love You Book과 비교하면 동양적인 감수성이 느껴집니다.
사실 이 책을 읽다 보면, ‘엄마가 오죽하면 너한테 그렇게 잔소리를 하겠니’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 엄마도 이렇게 아들을 사랑하는 좋은 엄마인데, 행동 하나하나 사고를 치는 아들을 보다 못해 폭발할 때가 있는 거죠. 엄마도 인간이니까.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The I Love You Book>과 <엄마가 정말 좋아요>도 자녀가 들을 땐, 그냥 당연하게 생각할 것 같아요. 반면 부모는 하필 육아의 힘든 순간들까지 들어간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솔직히 난 우리 애를 모든 순간 사랑하지 못했어' 라고요. 그런데 말이죠. 그런 좌절과 사랑이 물밀듯이 교차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육아인 것 같아요. 한시간 만에 기승전결을 지나 끝나는 텔레비전 쇼가 아니라 기약 없이 계속 되는 잠 못 드는 밤과, 걱정, 불안, 기쁨, 자랑스러움, 죄책감 등이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가는 것이 미화되지 않은 진짜 부모의 생활이죠.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 깊은 곳은 정말 그들을 사랑해요. 그건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죠. 정말 그렇잖아요.
오늘은 비슷한 듯, 안 비슷한 듯, 비슷한 것 같은 미국과 일본의 그림책, 토드 팔의 <The I Love You Book>과 미야니시 타츠야의 <엄마가 정말 좋아요> 읽어 봤습니다. 아이보다 부모에게 더 크게 들리는 내용이었는데요. 오늘도 도망가지 않고 열심히 산 여러분께 건배!
<엄마가 정말 좋아요> 책을 보내 준 소년 아에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