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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니 Mar 13. 2017

The Smartest Giant in Town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왕.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보신 적 있나요?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눠주다 친구와 함께 세상을 하직한 동상의 이야기이죠. 감동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에이그... 적당히 좀 하지, 뭘 얼어 죽을 때까지...' 라며 여덟 살쯤의 한 소녀는 쯔쯔쯔 혀를 찼다고 합니다. 저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신 부모님들께, 오늘은 좀 더 편안한 책을 소개해 드리려 하는데요. 지난 포스팅에 이어 계속 인기 작가 Julia Donaldson의 작품입니다. The Smartest Giant in Town.


명작을 줄줄이 낸 환상의 콤비, 줄리아 도날슨과 액셀 쉐플러에 대한 정보는 여기에... 밸런타인 따위.... 라며 쓴 <허수아비들의 결혼식>


이 책의 주인공인 거인 조지는 마을에서 Scruffiest (가장 후줄근한?) 거인입니다. 헤진 잠옷에 샌들만 신고 다니는 단벌 신사죠.

그냥 머리에 헤어롤 한 두개 잊은 느낌이 아니죠.

어느 날 조지는 결심을 하고 옷 쇼핑을 하러 나섭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Smartest (가장 멋진) 거인이 되죠. 하지만 신나게 집에 가던 조지의 앞에 나타난 것은...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바로 곤경에 처한 동물들입니다.

목이 추워서 울고 있는 기린, 배의 돛이 날아가 버린 염소, 집이 불에 타버려 울고 있는 어미 쥐와 새끼 쥐 등등....


조지는 망설임 없이 새 옷을 벗어서 동물들에게 줍니다. 넥타이를 풀어 기린의 목에 감아 주고, 셔츠를 벗어 염소의 돛으로 삼아 주고, 신발을 벗어 쥐 가족의 집으로 선물하지요. 그리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합니다.

신발이 없어서 깨금발로 뛰고 있는 조지... 얼마나 시끄럽겠어요. ㅎ 옆의 아줌마가 못마땅한 이유는 이것인듯.


도와주는 동물이 많아질수록 노래는 길어지고 조지는 점점 헐벗는데... 그래도 항상 조지의 노래는, "그래도 난 마을에서 가장 멋진 거인이야"라고 끝나는데요.


그러나 결국엔...

벨트를 주고 난 후 바지가 벗겨져 버립니다. 갑자기 마을에서 Coldest (가장 추운) 거인이 되어버린  조지...


조지는 다시 가게로 돌아가서 옷을 더 사려고 하는데요. 이를 어쩌나... 상점은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Oh, no!" cried George. He sank down onto the doorstep and a tear ran down his nose. He felt as sad as all the animals he had met on his way home.
"아, 안돼!" 조지는 소리쳤습니다. 그는 상점 문 앞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눈물이 코를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는 집에 가는 길에 만났던 모든 동물들만큼이나 슬퍼졌습니다.

그 때, 그는 상점 옆에서 눈에 익은 가방을 발견해요. 그건 바로 그의  옷이었습니다. 그는 기뻐하며 오래된 신발과 가운을 걸치고 말합니다. "난 마을에서 Cosiest (가장 편안한) 거인이야!" 그는 신나게 집으로 돌아가는데요. 집으로 돌아간 그를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왕관과 동물들이 준비한 카드죠. 동물들은 조지의 노래를 모두 모아 예쁜 카드로 만들어서 왕관과 함께 선물합니다. 마지막 후렴은 동물들이 만들었어요.


So here is a very fine crown,
to go with the sandals and gown
of the KINDEST giant in town.

자 여기에 왕관을 준비했지,
샌들과 가운과 잘 어울릴,
마을에서 가장 친절한 거인에게 말이야.


전편에도 언급했던 미친 라임력이 여기 집중됐네요. 이번엔 본문엔 라임이 없어요.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이 이야기를 요약하면, 조지는 Scruffiest에서 Smartest가 됐다가 Coldest가 됐다가 Coziest가 됐다가 Kindest가 됩니다. 플롯만으로는 한 인물의 자서전을 쓸 수도 있을만하죠? 물론 조지는 부제에서처럼 동물들의 왕이 된 것은 아니지만, 왕관으로 상징되는 명예를 얻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조지가 "다른 동물들만큼이나" 슬퍼서 눈물을 흘렸고 또다시 자기 모습으로 돌아와서도 즐거워하고 인정받는 것에 주목하고 싶은데요.


 <행복한 왕자>가 어려운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불쌍히 여기며 자기를 무한 희생한 것에 비해, 거인 조지는 작은 동물들보다 큰 존재지만 동물들을 내려다보지 않고 같은 레벨에서 존중하며 도와줍니다. 시혜자로서 티를 내거나 대단한 희생을 하지는 않았어요. 무언가 하나 줄 때마다 동물들이 미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어차피 이 신발은 불편했다는 식의 설명도 곁들이지요. 그러다가 그들의 처지까지도 내려갔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불행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와 신나 하는 조지의 모습, 예전의 영광에 연연하지 않는 겸손하고도 자신감 있는 모습인데요. 마치 미국에서 손꼽는 부자가 되고도 햄버거와 청바지를 즐기는 워런 버핏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사실, 조그마한 권력이나 명예를 손에 넣자마자 자기가 남보다 우월한 존재인 듯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잖아요. 아무리 잘나 봤자, 우린 매일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인간일 뿐인데 말이죠. 명예나 권력이 변하면 또 박탈감과 허무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요. 그게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닐 거 같다는 두려움에 사람들이 이런 데 집착하는 것이겠죠. 요즘 유행하는 용어, 자존감이 명예나 권력에 짜부라진 결과 아닐까요.


조지는 Smart 한 옷이 아니라 Kind 한 마음씨가 있었기 때문에 새 옷을 다 줘 버리고도 마음은 Cozy 할 수 있었고, 그래서 Scruffy 한 옷을 입고도 왕관이 잘 어울리는 거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인데요.


이런 조지, 왕으로 어울리지 않나요?


1, 2부로 나눠 녹음된 유튜브, 조지의 노래에 곡도 붙였습니다. 나이스한 영국 액센트로 들어 보실까요.


줄거리만 짚었지만 본문을 보면, 이 책은 메시지 뿐아니라 조지가 산 옷과 모양, 그리고 옷의 느낌에 대해 묘사하는 내용, 본문에선 빠진 라임 대신 리듬감 있게 반복되는 내용과 마지막 시구의 라임 등이 좋아서인지 영국 초등 참고 도서로 쓰이는 듯합니다. 선생님을 위한 가이드가 구글에 꽤 나와 있네요.


마지막으로, Kind라는 말에 대해서 좀 찾아봤는데요, Kind= 한국말로 친절하다 라고 공식처럼 박혀 있는데, 왠지 친절하다고 하면 "친절한 서비스" 등의 문맥에서 많이 쓰여서 요즘은 친절하다는 말의 의미가 조금 퇴색된 듯한 느낌입니다. 왠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게 아니라 뭔가 겉에서 예절만 차리는 그런 느낌이지 않나요?  



영어로 Kind라 하면 보상을 바라지 않는 진정한 호의를 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여러 책에서 받는데요. 대표적으로는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Patient)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Kind)" 란 성경구절이 있죠.  이와 대비되는 단어로 Polite (예의 바른) 을 들고 싶은데요.


이 Polite 를 가장 잘 설명하는 건 이 신을 것 같습니다. <제리 맥과이어>라는 영화에서 르네 언니가 이렇게 말하죠. (양심의 가책 때문에 싱글맘인 르네와 헤어지기를 주저하는 톰에게) "if one of us doesn't say something about it now we might lose ten years being polite." 우리 중 하나가 지금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냥 서로에게 "친절"한 관계로 10년을 낭비할 거야.


진짜 르네 언니... 너무 예쁘네요. ㅠㅠ  (스크립트가 밑에 나와있으니 듣기 자료로 활용하세요)



마지막으로 Kindness를 테마로 한 짤 (영어로는 meme) 남기며 맺어 봅니다. 대선이 다가오는 시기, 진정 Kind 한 사람은 누구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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