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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니 Dec 07. 2017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

아이의 눈에 비친 이 세상에서 제일 신비하고 강한 존재, 엄마. 

바쁘다고 너무 오래 브런치에 안 들어와서... 일단 이미지를 저장해 놓은 동화책부터 써봅니다. 뭔가 모멘텀을 만들어야 할 거 같아서.... ㅠㅠ 모두 잘 지내셨죠? 호주는 다시 여름이 오느라고 비가 오락가락하네요.


오늘 소개해 드릴 동화책은 읽을 때마다 아들보다 제가 더 신이 나는,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엄마 히어로 물이에요. 어릴 땐 누구보다 위대해 보였던 엄마들... 엄마들은 항상 무언가를 해냈죠. 김치를 백 포기씩 하기도 하고, 커다란 레이스를 뜨기도 했고, 매일 밥을 차려주기도 했고, 모르는 게 없었어요.


여기 나오는 엄마도 그런 엄마입니다. 힘든 일을 웃으면서 척척 해 내는 아주 힘센 엄마. 엄마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빨래입니다. 어느 날 빨래를 다 한 엄마는 더 빨 게 없어서 주변 모든 것을 빨아버리지요. 

이런 능력 갖고 싶습니다.......


그리고 빨아 버린 모든 것을 햇볕에 널어놓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 초인적인 능력이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아이들이 너무 귀엽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한 술 더 떠, 천둥번개 도깨비라는 악역을 등장시킵니다. 빨래에 비를 뿌리다가 엄마한테 잡혀 버린 도깨비는 버릇없이 굴다가 역시 빨래통 행이 되지요.

'건방진'을 '버릇 없는'으로 번역하는 게 더 좋지 않을지...
 '단정하지 못한' 을 '칠칠치 못한' 으로 번역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도깨비를 깨끗하게 빨아 탁탁 터는 엄마. 구름을 타고 다니는 도깨비라도 엄마 앞에선 꼬질꼬질한 아이일 뿐입니다. 지워진 눈코 입은 아이들이 그려 주는데요.

깨끗하고 예뻐진 도깨비는 버릇도 자연스레 고쳐졌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한번 반전을 맞이하죠. 꼬질꼬질한 도깨비들이 하늘에서 우수수수 떨어집니다. "저도 씻겨주세요, 저도 예쁜 아이로 만들어 주세요!" 하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엄마는 결코 기죽지 않습니다. 오히려 할 일이 생겨 기쁘다는 듯, 꼬질꼬질한 도깨비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지요. 꼬질꼬질하고 버릇없는 아이들이 필요했던 건 바로 이런 엄마였나 봅니다.



재미있는 과장,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사상 최고 '센캐'인 엄마의 기운찬 모습, 따뜻한 그림체 등 좋은 부분이 많은 책인데요. 저는 이 마지막 장면을 가장 좋아합니다. 제가 아이일 때 봤던 엄마의 뒷모습 같거든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엄마, 전속력으로 품에 달려들어도 얼마든지 받아 줄 수 있을 것 같았던 크고 굳건한 엄마. S라인에 단단한 복근이 있진 않지만, 그때의 엄마들은 이렇게 둥글둥글 조금씩 살이 쪄 있었고, 힘이 센 팔뚝에, 손가락은 뜨거운 것을 집어도 아무렇지 않았어요. 그 푹신한 허벅지와 등을 껴안거나 베고 자기도 하고, 다리에 매달리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체격은 엄마들과 아가씨들을 가르는 기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늘을 까며, 인형 눈을 붙이며 이어졌던 그들의 긴긴 수다 중에 살이 쪄서 고민이란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바빴습니다. 우리 엄마를 비롯하여 주변 엄마들은 결코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들은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리본 만들기, 재봉틀, 가죽 붙이기 같은 저임금 알바에 세 끼 밥까지. 그때는 김도 집에서 구워 먹었었죠. 마늘이나 참기름 냄새가 나곤 했던 그들의 손.... 그 손은 두텁고, 약간 거칠었지만, 잡기만 하면 안심이 되는 손이었습니다. 자기 전에 갑자기 찾아온 무섬증 앞에서도, 정신없이 아플 때에도, 그냥 외로워질 때나 아버지가 술을 마실 때에도 요.


저희 엄마는 제 나이에 이미 학부모가 되셨고, 제 밑으로 동생도 있었는데요. 당시 엄마는 타향살이, 가난,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폭력 등 참 힘든 상황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이혼도 흔하지 않았고, 여자가 혼자 벌어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겠지요. 그럼에도 엄마는 저희에게 이유 없이 화를 내거나, 트집을 잡거나, 힘든 사정 등을 늘어놓으며 우릴 위축시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자라는 것을 낙으로 삼아 견디셨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저희 엄마는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시진 못했습니다. 가끔 조기 유학을 와 성공한 제 또래를 보면, 중학교 때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랐던 게 생각나고, 명문대 출신인 분들을 보면, 입시 전략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엄마의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하셨다는 걸 믿기 때문에, 그걸로 충분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완벽한 인간이 되진 못했습니다만.... 그게 제 개성이겠죠.


 지금의 엄마들은 새로운 종류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해야 하는 것도 많고, 직장도 다녀야 되고, 자아도 실현해야 되고.... '아줌마/애 엄마 같지 않다'는 말이 최고의 칭찬이 되어 버린 지금, 엄마들에겐 빠글이 파마나, 허술한 옷차림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엄마'라는 중대한 업무를 하고 있어 옷차림이나 몸매 따위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는 말은 인정되지 않아요. 거기다 일을 하면서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는 자책감, 그럼에도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등..... 특히 애가 아플 때, 엄마와 너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것 같을 때는 나는 왜 아이와 같이 있을 수 없나, 라는 아주 간단하고도 머리 아픈 질문으로 스스로를 닦달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아이가 크는 것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인 것 같습니다. 나를 보고 있는 건지, 내 말을 듣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던 아이가 자기가 느낀 걸 말하고, 무언가를 배우고, 걷지 못하던 아이가 뛰어와서 안기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아이와 함께 침대에서 책을 보는 시간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스탠드를 끄는 건 아이의 일인데, 불이 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잠깐 불빛에 비치는 아이의 얼굴이 너무 아쉬워서 조금 슬퍼집니다. 그래서 꼭 껴안아 주죠. 그리고 잠 고개를 꼬록 넘어가기 전에, 엄마가 아직 곁에 있는지 졸린 눈으로 확인하는 아이의 모습. 그 아이의 눈에 비치는 저는 어둠 속에서도 안심이 되는 존재, 온 세상, 뭐든지 할 수 있는 영웅입니다. 30대의 보통 사람인 저를 그렇게 봐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일 일어날 이유가 충분하다는 느낌입니다.


오늘은 아이의 눈에 비친 신비하고도 강한 존재, 엄마를 그린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를 소개해 드렸는데요. 모두, 힘냅시다. 그리고 곧 방학이 오면 그동안 읽은 동화책 리뷰를 잔뜩 올릴 수 있게 되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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