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해서 더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동화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군요. 징집된 군인들과 그의 연인들을 이어주려던 발렌타인 성인이 순교한 날이라고 하네요. 전쟁터로 끌려가는 남자와 그런 남자와 결혼식을 올리려는 여자. 그 결혼식의 분위기가 어땠을지, 죽음을 지척에 두고 시한부 사랑을 맹세하는 두 연인의 안타까움을 상상하면 오늘날의 축제 분위기와는 잘 맞지 않는데요. 순수한 사랑하니 생각나는 동화책이 있네요. <The Scarecrows' Wedding> '허수아비들의 결혼식' - 얼마전에 서점에 서서 후루룩 읽다가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져 버렸는데요. Gruffalo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작가 Julia Donaldson, 그리고 독일 출신으로 유럽을 무대로 활동하는 Axel Scheffler 콤비의 최신작입니다.
이 명콤비는 줄리아 도날드슨의 데뷔작 <A Squash and Squeeze>부터 함께 해서 그루팔로 시리즈와 <Room on the Broom> 등의 수많은 명작을 함께 냈습니다. 저는 사실 <Room on the Broom>을 선물로 받고 이 두 작가에게 반해버렸는데요. 특히 줄리아의 미친 라임(rhyme)력에 혀를 내둘렀답니다. 동화책 전체가 마치 랩처럼 운율이 아주 깔끔하게 맞아 떨어지는데요. 내용도 좋고, 캐릭터도 좋고, 그림까지 좋으니 정말 대단하다고 밖엔...
그런데 포스팅을 위해 줄리아 도날드슨의 경력을 살펴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아버지는 철학, 정치, 경제를 옥스포드대에서 전공한 인재로 2차대전 중 독일어 재능을 인정 받아 관련 부서에서 일했고, 어머니 역시 그 시대에 언어학 학사로 독일어 통번역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학에 재능이 있었던 부모님은 어린 나이의 딸에게 시집과 운율 책을 선물했다고 하고요. 줄리아도 부모님의 재능을 이어 받았는지 19살쯤에는 학교에서 배운 독일어, 불어, 그리고 나폴리에서 휴가 때 일하며 배운 이탈리아어에 능통했다고 하네요. 부모님의 또 다른 취미는 음악이었는데, 덕분에 줄리아 역시 합창단 등에서 어린 시절부터 노래, 연기, 악기 연주 등을 했다고 합니다. 성인이 된 줄리아는 세계를 돌며 버스킹을 했는데 그 때 직접 노래를 만들기 시작해, 그 이후로도 BBC 어린이 채널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더 알고 싶다면 여기에...
다시 허수아비들의 사랑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요.
Betty O'Barley 와 Harry O'Hay는 들판에서 까마귀를 쫓는 허수아비입니다. 둘은 서로 사랑했고 어느날 해리가 말합니다.
Betty, my beauty. Let's marry. Let's have a wedding, the best wedding yet. The wedding that no one will every forget.
베티, 내 사랑, 우리 결혼해요. 최고의 결혼식을 올려요. 누구도 잊을 수 없는 결혼식이요.
이렇게 둘은 누구도 잊을 수 없는 최고의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그 결혼식을 위한 준비 리스트를 만듭니다. 그것은 흰 깃털로 만든 드레스, 조개 껍데기 목걸이, 많은 분홍빛 꽃, 반지 2개, 그리고 종이지요.
둘은 이렇게 팔짱을 끼고 결혼식 준비를 위한 여행을 떠납니다.
둘의 여행은 순조로웠습니다. 거위들을 만나 결혼식에 초대할 테니 깃털을 하나씩만 달라고 하자, 거위들은 기꺼이 깃털을 주었고, 친구 거미가 그것으로 드레스를 만들어 줬어요. 소들이 목에 달고 있는 종을 가지고 결혼식에 오기로 했고요. 게 친구가 목걸이를 가져다 줬습니다. 그리고 농부의 쓰레기통에서 커튼에 달려 있던 링을 발견했죠.
마냥 행복한 두 사람에게 남은 것은 이제 분홍색 꽃 뿐이었습니다. 해리는 베티에게 쉬라고 하고 분홍 꽃이 많은 곳을 안다는 벌을 따라 꽃밭에 가죠. 그런데 꽃을 가져오려니, 꽃을 담은 물과 버켓이 필요해서 해리는 생각보다 늦어지고 맙니다.
그런데 어쩌나. 해리가 돌아오지 않자, 농부는 새로운 허수아비를 만들어 베티 옆에 세우죠. 이 허수아비가 김중배 악역입니다. 자기는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추고 운전도 할 줄 안다며 베티를 유혹하려 하죠.
But Betty said "No- I must wait here for Harry.
He is the scarecrow I'm going to marry.
We are planning our wedding, the best wedding yet,
The wedding that no one will ever forget.
Reginald lauged, "You'll be waiting forever.
Forget about Harry, I bet he's not clever."
그러나 베티는 "싫어요. 전 여기서 해리를 기다려야 해요. 제가 결혼할 허수아비는 바로 그에요. 우리는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어요. 최고의 결혼식을요. 누구도 잊지 못할 그런 결혼식이에요." 라고 말했습니다. 레지날드는 웃으며 "영원히 기다려도 그는 안와요. 해리는 잊어요. 그는 똑똑한 작자가 아닐걸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레지날드는 폼을 재려고 시가를 피우다가 그만 불씨를 떨어뜨리고 맙니다. 허수아비에게 불은 치명적이죠. 도움을 청하는 베티를 버리고 레지날드는 도망치고, 그 때 해리가 달려옵니다.
이렇게 달려와 불을 꺼줍니다.
드디어 다음날, 이름까지도 라임이 맞는 Betty O'Barley 와 Harry O'Hay 는 결혼식을 올립니다.
모두들 "정말 행복해 보이지 않니?" "정말 근사해 보이지 않니?"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행복한 신랑 신부에게 꽃가루를 뿌려주며 "이 결혼식은 정말 최고의 결혼식이야, 아무도 이 결혼식을 잊지 못할거야." 라고 이야기합니다.
글쎄, 여러분도 감동을 받으셨나요?
뻔한 이야기라고요?
그런데도 이 이야기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커튼 링 반지와 소 방울을 가지고 한 결혼이 누구도 잊지 못할 최고의 결혼식이 된 까닭은
이들의 사랑이 그만큼 순수하기 때문이겠죠.
순수함은 참으로 뻔한 거에요.
반전이 없죠.
사랑하면 그걸로 영원하고, 행복한 것이죠.
아이들은 이 이야기에서 소박함의 미덕과 사랑 이야기의 한 전형을 볼 지 모르겠지만,
어른이 된 우리들은 이렇게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너무나 덧없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이 단순한 이야기를 한 편의 시처럼, 노래처럼 암송하게 하는
줄리아의 글과 악셀 셰플러의 그림도 큰 역할을 하지요.
그림과 함께 그림책 전체를 낭송한 유튜브 비디오.
스코틀랜드 민요 Scarborough Fair로 포스팅을 마쳐 볼까요.
셔츠를 만들어 주세요.
바느질 자국이 없는 셔츠를.
비도 내리지 않고 샘도 없는 마른 우물에서 빨아
영원토록 꽃이 피지 않은 가시 나무에서 말려 줘요.
바닷물과 모래 사이에 땅을 사주세요.
양의 뿔로 땅을 갈아 후추를 뿌리고
가죽으로 된 낫으로 베어 히스로 엮어 줘요.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아요.
시작이라도 해 주세요.
나를 사랑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