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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니 Feb 12. 2017

메이지 시리즈

동화책 주제에 너무 태연하게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2016년을 강타한 테마 중의 하나는 바로 페미니즘이었죠. 2017년에 돌아보는 이 오래되고도 새로운 이슈는 아직 극복될 부분이 많은 만큼, 앞으로도 한동안 한국에서 활발하게 논의가 이어질 것 같습니다. 한스 로슬링이  말했듯, 여성 인권이 향상되면 출산율을 비롯한 많은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하니, 발전을 위한 길을 가고 있다 보는 것이 좋겠죠? 


남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저에게는 또 하나의 이슈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여성의 성역할과 그에 대한 사회의 기대/압박을 극복하고 자신으로 살 수 있는가, 라는 담론은 많이 나와있지만, 어떻게 해야 남자아이가 성역할과 기대를 극복하고 자신으로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대한 부분은 생각보다 많이 나와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해야 남자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남자 아이 키우는 법' 이라는 테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고정 관념을 더 증폭시키는 느낌이기도 했죠.


남자들을 가두는 "맨 박스"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아이가 자라날 때 좀 더 열린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하는 것만은 분명한데요. 동화책을 고르다 보면 이게 쉽지 않죠. 옛날 동화책에선 공주는 아름답고 왕자는 용감하고,  현대 동화책에선 엄마는 집에서 요리를 하고 아빠는 일을 합니다. 동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어떤가요? 여자 아이는 잘 울고 치마를 입고, 남자 아이는 장난 꾸러기에 파란 옷을 입고 있지 않나요? 여자 아이는 동생을 보살피고, 남자 아이는 뛰어 놀거나 싸우고요.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은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메이지 시리즈>에요. 



25년간 3천만부가 팔린 메이지 시리즈는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있고요. 29개국에 26개 언어로 출간됐다 합니다. 한국에도 번역본이 나와 있지요. 64년생의 영국 작가인 루시 커즌스는 미대 졸업 얼마 후, 낙서를 하다가 문득 메이지 캐릭터를 떠올렸다고 해요. 첫 작품인 <Maisy Goes to Bed>와 <Maisy Goes Swimming>은 발간 직후부터 큰 인기를 끌어 25주년에 이르렀습니다. 위의 표지를 보면 아시겠지만 아주 선명하고 대비가 강한 색감, 뚜렷한 선이 이 작가의 특징이고요. 메이지는 3살 정도라고 합니다. 인간 3살보다 훨씬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지만요. 


작가의 다른 작품들


메이지 시리즈와 작가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는 공식 페이지. 교육적 게임과 색칠 공부 등도 즐길 수 있어요.

http://www.maisyfun.com/


그런데 여기서 잠깐, 메이지는 여자일까요, 남자일까요? 알아 맞혀 보세요. 

정답은 여자입니다. 바로 아셨나요? 전 이 샤워씬을 보고도 몰랐어요! 


               모를만 하.... 아니 옆에 여자애가 같이 있잖아요.



그만큼 동화책 여자 캐릭터는 핑크나 치마, 리본이란 공식에 익숙해져 있었던 거겠죠. 그렇다고 메이지가 뽀로로의 패티처럼 만능이거나 인기가 많거나, 특별히 남자 아이 같은 성격은 아니에요. 아주 인간 디폴트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왜 메이지가 바지만 입고 다니는지, 그 이유조차 나오지 않아요. 하여간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하려면 바지가 편하겠죠.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치마를 입을 때도 있어요. 

근데 솔직히 너에겐 바지가 더 잘 어울리는구나 친구.


사실 메이지에게는 핑크와 리본을 사랑하는 친구, 탈룰라가 있어요. 시리즈 내내 핑크와 리본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요. 말하자면 외형적으로는 뽀로로의 루피 느낌인데요. 


여기서 탈룰라가 누군지 아시겠죠. 


소심하고 삐치는 성격의 루피와는 달리 탈룰라는 이런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런 모습이 '여자다운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갇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할까요? 


또 한 명의 친구 도티 (첫번째 사진에서 원피스 입은 말) 는 항상 스타일리쉬하게 원피스와 부츠 등을 입고 다닙니다. 도티는 비중이 아주 큰 편은 아니라 성격은 잘 모르겠네요... -_-. 하지만 <Maisy Goes to the City>편이나 <Maisy Goes to Hospital>편을 보면 메이지보다 약간 연상인 것 같은 느낌이긴 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 모든 이야기에서 친구들 간에 성 역할이 전혀에 가깝게 나오지 않는다는 거에요! 덕분에 어느 친구에게나 쉽게 이입할 수 있죠. 


이런 어마어마한 장점 외에 또 제가 메이지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를 꼽으라면 물론, 밝은 색감과 큰 글자, 그리고 내용에 있어서 적당히 교육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인데요. 일단 시리즈 컨셉이 '메이지의 첫 경험 책' (...한글로 번역하니 왜 이렇게 이상한가요...) 이다보니, 메이지 또래인 실제 아이들과 실생활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메이지는 이랬지?"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진짜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 있으면 하기 전에 메이지 책을 읽어 보기도 하고요. 그리고 '길은 초록 불에 건너야 한다' 라던가 간단한 숫자 세기 등도 있지요. 


누가 초록 불을 처음 파란 불이라고 했을까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게 좋은데- 글자로 써 있는 것 외에도 많은 정보가 그림에 있다는 거에요. 예를 들면 도티네 집에 놀러 가서 하룻밤 자게 된 메이지가 도티를 위해 선물을 사는데요. 그런 대사는 굳이 나오지 않아요. 그러니 엄마가 원할 때 맘대로 상상해서 이야기 해 주면 되죠.  사실 그림책을 한 번 사면 100번은 읽어 주게 되잖아요 -_-. 나중엔 거의 외우게 되는데요. 그럴 때 엄마에게 약간 숨통을 틔워주기도 하고. 읽을 때마다 약간 포인트를 다르게 해서 읽어줄 수도 있고.... 

"자 여기 선물이야, 네가 좋아할 거 같아 샀어." "메이지, 정말 고마워. 안그래도 되는데."


이렇게 장점이 많은 <메이지 시리즈>. 애니메이션은 나레이션 위주로 되어 있답니다. 미국판, 영국판 두 가지가 있으니 원하시는 액센트로... :)






여기까지 정치적으로 올바른 <메이지 시리즈> 이야기를 해 봤는데요. 


해외 동화 작가 중엔 Todd Parr이란 작가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책을 많이 냈습니다. 그의 책 The Family Book엔 '어떤 가족은 엄마랑 아이만 있고, 어떤 가족은 엄마만 두 명 있고...'라는 도발적인(?) 구절이 있기도 하죠. 


한국에서는 <구름빵>의 작가 백희나 씨의 인터뷰가 기억 나네요.  <구름빵>이 너무나 "표본처럼 완전한 가족의 모습" 을 그려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며, 어떤 형태의 가정이든 사랑이 있으면 충분하다는 점을 그리고 싶어 <이상한 엄마>를 쓰게 됐다는 말이 있었는데요.  <이상한 엄마>의 시작은 아이가 갑자기 아픈데 엄마는 일하느라 집에 오기가 어려운 상황이에요. 여기부터가 사실 너무나 공감되지 않나요. 아직 읽어 보진 못했지만 아이와 같이 읽다보면 아이도 일을 하러 가야 하는 엄마의 상황을 좀 이해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실제 가족들이 읽으며 공감할 수 있는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동화같은 가족'은 동화 속에만 존재하잖아요. 우리는 하나 하나 다 다른 사람인걸요. 



사실 저희 아들은 분홍색을 정말 좋아하고, 또 자동차와 기차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아들이 요리와 청소도 잘하고, 또 싸워야 할 땐 싸울 줄 아는 그런 전통적인 성역할 중 좋은 것들만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그의 여자친구 또는 남자 친구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런 것들을 기대했으면 하고요. 메이지가 여자 아이인지 남자 아이인지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남의 고정 관념에 자신을 자꾸 맞춰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여자든, 남자든 넌 사랑하는 내 아이니까.


트럼프가 당선되어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를 마구 뿌리고 있는 이 때, 참 너무나 자연스럽게 올바른 고전, <메이지 시리즈> 살펴 봤습니다. 



 메이지가 안고 자는 인형은 판다인데요. 설마 작가가 이것까지 내다봤을까요? ㅎㅎㅎ 

(인종주의를 파괴해라. 판다처럼 되어라. 그는 검고, 희고, 아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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