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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니 Apr 09. 2021

시리와 이루다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지.

뒷북 로그

우리 집 어린이가 가끔 시리한테,


"똥꼬."


이런 말을 하고 후후훗, 하는 일이 있다. 시리의 말을 따라 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어린이: "시리, 00해줘." 

시리: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린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시리: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어린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시리: "흠.. 어디서 많이 들은 거 같은데요?" 

어린이: "흠... 어디서 많이 들은 것 같은데요?" 

시리: "메아리가 치는 건가요? 야호, 야호, 야호, 야호."

어린이: "메아리가 치는 건가요? 야호, 야호, 야호, 야호."

*영어 시리 번역. 한국어로는 뭐라고 하는지 궁금하군요.


일단 듣는 내가 고통스러워 그만하게 하는데, 혼란스럽긴 하다. 동물, 장난감 같이 아껴주지 않으면 사라지는 생명이나 자원은 우리 마음속에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당위가 서 있다. 그럼 인공 지능 같이 상처 받는 존재가 아닌 것은, 내 맘대로 대해도 되는 것인지?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으나 한 번 해보고 싶었던 말이나 행동을 막 해봐도 되는 것인지?


그에 대한 학술적 정보나 견해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내 나름의 결론은 이거다. 예의는 자신을 다스리고 존중하는 행동이라는 것. 상대를 존중하게 되는 것은 2차적인 결과요, 사실은 나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  중국 후한 서에 사지(四知)란 말이 있는데, 天知(천지) 地知(지지) 子知(자지) 我知(아지)란 뜻으로 유래는 이 이야기다. 옛날 왕밀이란 사람이 태수로 부임한 양진을 슬쩍 찾아가 뇌물을 주었는데, 양진은 극구 사양했다. 그럼에도 왕밀은 받으셔도 아무도 모를 거라며 자꾸 뇌물을 찔렀고, 이에 빡친 양진이 버럭 했다. "하늘이 알고 (천지) 땅이 알고 (지지) 네가 알고 (자지) 내가 아는데 (아지) 어찌 아무도 모른단 말인가!"


세상에 비밀은 없다. 이천 년도 전 한나라 때 왕밀이 비밀로 할 수 있다 여겼던 일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처럼, AI 가 나중에 내 검색 결과를 근거로 법정에서 내게 불리한 증언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결국,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있는 방에서 하는 모든 일들... 상대가 AI 든 뭐든, 하늘과 땅과 내가 알잖아. 종교인이라면 절대자일 수도 있고, 심리적으론 초자아, 이드, 자아일 수도 있고, 흔한 말로 셀프 이미지, 자아상일 수도 있다. 자아상이나 마음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는 모두 아는 사실.


그에 비하면 자지(子知) 따위, 얼마나 작고 사소한 문제일 뿐인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너무 고전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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