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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니 Apr 12. 2021

편지 쓰는 취미에 대하여

생각보다 힘든 이 취미를 유지하는 나의 방법.

새해 맞이 책 정리 하다 예전에 써 놓고 못 부친 편지 발견. 못 부친 편지라 하면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지만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부치려다 잊어버리고 이사 짐에 쓸려 없어졌을 뿐... 워낙 편지를 자주 쓰는 편이고 한국으로 보내는 것이 많으니 이런 일이 종종 있다. 그런데 요즘은 편지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취미가 편지 쓰기지만 편지를 보내도 잘 받았다는 문자가 오지 답장이 오진 않는다. 답장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이 취미를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였던 듯 하다.


이 취미의 좋은 점은 무엇보다 돈이 별로 들지 않는 것. 물론 아름다운 편지지에 멋지고 비싼 펜으로 쓴다면 돈이 조금 들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편지란 상대를 생각하며 썼다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지필묵을 가리지 않고 잊기 전에 주변의 도구를 이용하여 쓴다. 예를 들어 혼자 술 먹으러 가서 냅킨에 술집 볼펜으로 쓴다던지... 엽서에 A4 용지를 붙이기도 하고 노트에도 쓴다. 다행히도 요즘은 사람들이 편지를 쓰지 않고 쓴다해도 폰트 11로 입력한다면 A4 용지 4분의 1 이하 분량의 짧은 편지를 쓰기 때문에 항상 그 이상의 길이를 유지하는 내 편지는 양으로 성의를 대신 하는 것 같다. 단 글씨가 예쁘지 않은데다 긴 글을 읽고 싶지 않아 하는 트랜드를 고려하면 내 손편지는 그냥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글씨가 예쁘지 않은 것 역시 생각이 사라지기 전에 쓰기 때문인데... 라며 고치지 않는다. 물론 편지를 쓸 때 원고를 다른 종이에 써 두고 그리고 예쁜 편지지에 예쁜 펜으로 또박또박 옮겨 쓰는 사람도 있을테고 그 과정에서 글도 나아겠지만... 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약간의 라이브 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 달음에 쓰는 편이고, 원고는 내게조차 남아있지 않으니 약간의 퍼포먼스 밸류가 더해진 게 아닐까... 손편지 같은 취미를 유지하고 싶다면 사소한 걱정은 접어 두는 게 취미 유지 비결 2. 어차피 답장은 안오니 상관말자구.


예전엔 교환 노트 같은 것도 했고 (기세만은 여고괴담 2) 수업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쪽지도 부지런히 주고 받았는데 그 때 편지를 열심히 주고 받았던 친구들이 더 이상 편지를 안 쓰는 걸 보면 편지를 안 쓰는게 사람들이 글을 못 써서는 아니다. 그럼 기술의 발전 탓인가? 중학교 때 영국에 사는 수잔나라는 내 또래 아이와 해외 펜팔을 1년 정도 했었는데 몇년 전 페이스북에서 그 아이의 여동생인 듯한 분을 찾았었다. 이렇게 좋은 세상! 이러면서 연락을 했지만 감감 무소식.... 기술이 발전해도, 혹은 발전했기 때문에, 세상은 메시지에 더 무감해진 듯하다. 미디어가 아니라 미디어로 초래된 우리의 태도 변화가 편지 쓰기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다. 지지난번인가 한국 갔을 때 엄마가 내 짐을 정리 중이라 편지함을 버릴까 하며 하나하나 다시 읽어 봤는데, 느낀 점은, 편지를 쓰려면 무엇보다도 약간의 중 2적 감수성이 기능해야 하는 거 같다. 그러니 내가 가끔 안부 편지를 보내는 20대에서 60대 중 가끔 답장이 오는 분들은... 후훗. 사랑한다고요. 물론 백 퍼센트 예쁜 편지지나 카드에 예쁜 글씨가 써 있다. 고맙습니다.


어쨌든 내가 아무 저작도 못남기고 죽는다면 편지만 모아도 한 권 이상 나오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게 내가 쓰는 어떤 글보다 더 나에 대한 진실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누군가가 각처에 흩어진 편지들을 수집하는 수고를 해야 하니 내가 노벨 문학상을 타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아마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나라는 사소한 사람의 진실도 원래 의도대로 프라이빗하게 수신인만을 위해 남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편지라는 선물이 가지고 있는 사소한 특별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점이 참 좋다. 눈이 퍼붓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부어도. 취미 유지비결 3.


추신 1. 또 하나의 특별함은 내가 보낸 마음을 상대방이 어떻게 다루는지 내가 알 수 없다는데 있다.

추신 2. 아들이 편지쓰는 습관을 기르게 노력하고 있다. 나중에 편지 받으려고.

추신 3. 요즘 국제 우편은 한 두 달 걸리더라고요. 코로나 시대 우체부 님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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