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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니 May 03. 2021

외향성 아이

외향성이라고 항상 괜찮진 않아요

아이는 친구를 너무 좋아해서 책가방을 놓기도 전에 주변 친구 집 문을 두드리러 다닌다. 새 친구가 많은 환경에 가면 밥을 잊고 논다. 하루 종일 간식으로 싸 준 딸기 몇 개, 토스트 반 개 먹고 밥은 손도 안 댈 때가 많다. 빈 도시락 통이 돌아올 때까진 한 일 이 주가 걸린다. 남들은 사람들 앞에서 수줍지 않고 잘 노니까 낯가림 없고 적응이 빠르다고 하는데 옛날부터 남이 신경 쓰여서 수줍어하지 못하는 나는 아이의 이런 시기가 나름 애처롭다. 집에 오면 지쳐서 다크 서클이 내려와 있고, 안하던 투정도 부린다.


외향성인 아이들은 주변 친구들이 항상 필요하고 아닌 것 같아도 외로움을 타는 편이다. 나도 성장하며 난 왜 혼자서 행복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이 필요할까? 생각하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한 편, 나와 항상 함께 할 수 있는 특별한 누군가를 찾곤 했다. 또 한 번 약속한 상대한테는 과도한 인내심을 보여줄 때도 있었다.


그제는 옆집 친구가 놀러 와서 아이와 투닥투닥했다. 아이보다 한 살 많은 이 아이는 잠깐 친하게 지내다가도 매번 투닥투닥거려서 같이 노는 걸 보면 마음이 편치 않은 친구다. 사실 아이는 다른 친구들하고는 그렇게 싸우지 않는데 이 친구는 좀 심술쟁이랄까 그런 인상이 있었다. 그래서 옆에 앉아서 둘이 왜 투닥거리나 봤더니 대체로 이런 거였다.


아이가 만든 레고를 보여준다. 친구가 거기서 레고를 떼서 자기 뭘 만든다. 아이가 화낸다. 친구가 뭘 그런 걸 가지고... 이러면서 뭐라고 한다. 자기도 아이가 놀러 오면 양보하는데 운운하는데 이때 친구가 두 살 많고 학교 생활도 오래 해서 놀리는 말과 노래의 레퍼토리가 더 풍부하다. 아이가 부르르 떨며 나한테 이른다. 친구가 변명하거나 아이를 (안 보이게) 툭 친다. 둘이 체격이 비슷해서 아이도 친다.....


친구가 좀 심술쟁이긴 한데 이 정도 수준은 형제끼리도 하는 수준이니 형제가 없는 아이도 심술쟁이들에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라는 의미로 관찰 중이다. 눈치를 보니 친구 엄마는 바른 사람인 듯하여 자기 애 성향도 알고 나중에 사과도 시키고 한다. 뭐 아이들은 항상 변하니까. 바로 앞집이라 외면할 수 없기도 하고. 애가 하나라는 아쉬움을 떨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런 일이 하루 이상 되면 애 하나로 이미 나간 정신이 삼만 구만 오억 칠천 리는 더 튕겨 나갈 것 같다.


근데 그제는 좀 심했다. 그 애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잠깐 좀 봐 달라고 부탁도 한 참인데, 애들 노는 거 보고 있자니 친구가 아무래도 집에서 올 때 마음속에 뭐를 가지고 온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이가 계속 부르르 떨게 방치할 수는 없고, 노는 걸 하나하나 참견하기도 그렇고 해서, 급 떨치고 일어나 애들을 몰고 근처 놀이터로 갔는데 친구는 여전히 툭툭 거리고 결국 아이는 두 번 울고... 엄마 에너지 방전 알람이 울리는 가운데 그래도 참 다행이다 생각했던 건, 아이가 나 잠깐 타임 아웃할래 하면서 스스로 친구한테서 떨어져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던 거다.


물론 이 친구가 (아마 미안해서인 듯) 못 참고 다가가 금세 장난을 쳤지만...

...그러니까 이 친구는 좋아해서 장난치는 타입인 거 같다...


요즘은 여기저기 어린이 활동에 어린이 명상이나 요가 같이 마음 돌보기의 기술을 알려 주는 세션들이 많아서 좋다. 내향성 친구들은 발표를 하라, 적극적으로 나서라 등의 조언을 많이 듣지만, 항상 남의 반응에 예민한 외향성 친구들이 왜, 어떻게 마음을 고요히 하는지 기술적인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듣기는 어려웠다. 그냥 적응 잘하나보다 하고 내버려 두기 때문에... 이 기술은 인류 역사 어느 때보다 더 연결된 세상을 살아가게 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편안한 때를 알아차리는 법. 약간의 고독을 견디는 법. 자신의 중심을 지키는 법.


어제저녁만 해도 절대 그 친구랑 안 논다던 아이는, 오늘 아침 등굣길에 친구를 보자 쫓아가 한참을 이야기하고 왔다. 아이들은, 서로를 쫓고 쫓아가며, 또 밀어내고 밀어내며, 계속해서 변하겠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있을지를 최대한 많이 배울 수 있길, 그동안 내가 아이 곁에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어른으로 존재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가능하면 충분한 기간 동안.


학교라는 인생 최대 공동체에 속하게 된 아이. 맘 속으론 동동거리며 아이 앞에선 태연한 척하는 부모들 모두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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