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니 Dec 21. 2015

여우난골 족

고향을 그리워하는 분들께 바칩니다.


크리스마스가 호주의 명절이라면, 설은 한국의 전통 명절이지요. 어느 날 칠복이가 들고 온 이 책, 마침 시기도 맞고, 호주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눈 오는 풍경도 있고 해서 요즘 자주 읽어 주고 있어요. 


이 책은 유명한 시인 백석의  <여우난골족>을 쉬운 말로 풀이해 그림을 곁들인 책이에요. ‘우리시 그림책’이라는 시리즈로 창비에서 출판됐고, 달.리가 기획했네요. 시 한 권을 한 권의 그림책으로 만드는 기획…아주 참신해요. 15권으로 완간됐는데, 한 권 한 권 다 사 모으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이 놈의 물욕…. 가끔 아기를 위해 사는 건지, 엄마가 원해서 사는 건지 헷갈리는 것들이 있죠. 이 기획은 특히 우리 전통의 정서를 살리는데 초점을 맞춘 것 같아요. 시와 그림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 기획 노트에 잘 나와 있네요. 



사실 상당히 날로 먹는 경향이 있는(?) 영어 그림책은, 동요 하나를 책 한 권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는데요. <반짝반짝 작은 별>이라면,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가 2 페이지…이런 식이랄까요? 그런데 이런 책이 의외로 아기한텐 잘 먹히는 것 같아요. 엄마가 읽어줄 때 자연스럽게 노래를 하면서 그림을 손으로 짚어주니까 뭐랄까, 뮤직 비디오는 아니고, 그 비슷한 효과죠. 이 시리즈에 동요도 있던데 이런 책이 더 많이 나왔음 좋겠네요. 유튜브 틀어주는  것보단 낫잖아요.  


이 시는 먼 북한 땅, 평안북도의 이야기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쓰여져 있어요. 어린 아이가 명절에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가는 이야기이고, 친척들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 사촌끼리 모여 노는 모습, 맛있는 음식 냄새 등등…. 뭐 사실 이 시야 워낙 유명하니까요. 이 시에 실린 평안도의 정서를 살리기 위해 평안도 사람들이 아직 전통을 지키며 산다는 연변 산골마을까지 가서 설을 쇠며 그림책을 기획했다는데요. 설음식처럼 정성이 많이 들어간 책이네요. 자, 일단 책을 한 번 열어 볼까요? 



깍깍 소리가 자동 재생. 그리고 빠바람~~하는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테마 곡이....


한국 책은 색이며, 옵션이며, 속지며, 참 세세한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데, 이 책은 더욱 그런 것 같아요. 표지를 열면 소복이 눈이 쌓인 시골 마을의 전경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첫 페이지, 북방식 전통 가옥이 있고, 집을 신나게 나서는 주인공이 있죠. 그리고 큰 집으로 가는 눈 덮인 시골길에서 친척들과 만납니다.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난 신리 고모와 미인인 어머니 -       엄마 닮아 잘생긴 아들은 나중에 나타샤랑 애정의 도피를....

본래 시는 집에서 큰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동적인 느낌보다는 그 집에 모인 사람들이라는 정적인 느낌이 강했는데, 그림책에서 잘 구성했네요. 손을 들어 ‘어이, 누구누구 아니야!”하는 모습, 손 잡고 “잘 있었어?” 하는 다정한 모습이 있고, 뒤로는 까치며 소달구지 같은 시골 풍경이 펼쳐집니다. 


캐릭터가 확실한 작은 아버지. (주정을 하면 토방 돌을 뽑으심)


 한 가정 한 가정 모이면서 아이들도 점점 많아지고, 아이들이 신나 하는 모습이 춤을 추듯이 그려져 있죠. 

아이들 포즈에서 약간 북한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음식 만드는 모습도 당연히 들어가야겠죠? 세배하는 모습과 옛날 식으로 작은 상에서 겸상해서 밥 먹는 모습도 그려져 있어요. 


이거시 진정한 염장 ㅠㅠ 

윗 그림부터 계속 녹색 저고리 입은 언니가 계속 아기를 돌보고 있어요. 근데 배 맛있겠다 츄릅....

제일 작은 아이는 큰 언니가 돌보는 모습,  한쪽에 깎아 놓은 배, 이불 차고 뒹굴며 자는 아이 등 다복한 식구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모두 이야기가 있어요. 써 놓은 글 말고도 그림에서도 이야기가 전해지는 책이 참 좋죠.  

다들 겉옷 벗고 자는데... 저 아이는 분명 화장실 가고 싶은 걸 거야... "엄마... 나 화장실 좀..."


마지막 부분은 어때요? 추운 겨울, 눈발이 날리는데, 아늑한 방안에서 맡는 무이징게국 냄새… 바람 소리며, 시골집의 차고 선뜻한 공기, 따뜻한 아랫목과 두툼한 솜이불, 그리고 강아지 짖는 소리가 막 들릴 거 같지 않나요? 


무이징게국은 "삶은 무를 꼭 짜두었다가 잔치때 다시 끓여먹는 국" 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책 뒤편에 나와있어요. 물론  원시도 나와있고요.


하나의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과 함께 잘 구성했다는 느낌이 드는 책입니다. 색감이 약간 투박하고 그림 스타일이 전통적인 느낌인데, 그것도 나쁘지 않아요. 컴퓨터로 선이 멀끔하게 다듬어진 책을 보다가 이렇게 회화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책을 보니 좋고요.


책 초입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분들에게 바칩니다.’라고 쓰여 있는데, 오랜만에 이 책을 읽으니 저도 왠지 눈물이 울컥 날 것 같더라고요. 친척들이 모여 왁자지껄하게 설을 지낸지…벌써 팔 년이 지났는데요.  칠복이도 크면 언젠가 한국에서 설을 쇨 기회가 있겠지요? 


실향민은 아닌데....  비행기 값이 비싸서...




여담이지만, 여기 고모들이 정말 많이 등장하는데, 평안도는 고모들이 남편 떼고 친정에서 설을 쇠는 것인지… 아니면 이 명절이 사실 설이 아니라 뭐 대보름인가요? 


이 글 쓰면서 처음 백석으로 검색을 해봤어요. 고등학교 때 배울 땐 인터넷이 없었거든요. 빅뱅 이론에 나올 것 같은 머리의 백석 사진, 그리고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가 있어 덤으로 공유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