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에어컨 블로워 모터 교체 DIY
"ㄸ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
차에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저단으로 켠 다음에 코너링을 하거나 급 가속, 급 감속을 하면 어김없이 조수석 앞쪽에 위치한 글로브 박스 쪽에서 들리는 소리이다.
처음에 차를 샀을 때는 이 소리에 대해서 무감각했다. 그냥 "차가 오래되면 뭐 이런 소리가 날 수 도 있는 거지"라고 일관하며 그냥 다녔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소리가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는지에 대한 감이 없었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어느 날부터 코너를 돌 때마다 이 소리가 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더운 날이나 추운 날에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나는 이게 온도 변화에 따라 금속제 부품들이 팽창하거나 수축하면서 생긴 일시적인 변화가 만들어낸 것 같다는 엉터리 가설을 세웠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주행 중에 히터를 갑자기 끄는 일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소리가 나다가 갑자기 칼같이 멈추는 것이다. 그때부터 문제의 원인 범위는 공조장치 쪽으로 좁혀져 가기 시작했고, 이걸 구글에다가 어떻게 검색해야지 답이 나올지 모르겠어서
"에어컨 켜면 귀뚜라미 소리"
라고 검색했더니, 모든 화살표가 한 가지 방향을 지향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블로워모터(Blower motor)였다.
블로워 모터, 너는 대체 무엇이냐!!
블로워 모터는 모터의 회전 속도를 조절함으로써 자동차 에어컨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의 세기를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다행히도 열심히 유튜브를 뒤져본 결과, 이 부품을 탈거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작업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냥 조수석에 있는 글로브 박스(Glove compartment)를 탈거하면 손쉽게 뺄 수 있을 줄 알았다.
분명 1시간 만에 작업이 끝날 것만 같았으나, 몇 개의 플라스틱 클립을 부숴먹은 후에야 겨우겨우 글로브 박스를 탈거할 수 있었다. 분명 영상에서는 나사 7개만 풀면 아무 힘도 안 들이고 빠지는 것 같았는데, 그동안 나 말고는 아무도 이 쪽을 손본 적이 없어서인지, 상당히 고된 작업이 이어졌다. 너무 힘을 세게 주면 뭐 하나 부러질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힘을 적게 줘서 안 빠지는 건 아닌가 하는 딜레마를 100번 정도 반복한 끝에 겨우 해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글로브 박스 뒤쪽에 숨겨져 있던 블로워 모터 유닛을 찾아서 케이블을 빼고, 모터 유닛을 탈거해야 한다. 분명 동영상에서는 3초 만에 숭숭 빠져나오던 부품들이 내가 하면 한 10분을 낑낑대야 겨우 빠져나온다. 그런데 빠져나온 블로워 모터를 돌려보니 이상하게도 아무 소리가 나질 않는다.
"하,,, 이 고생을 했는데 헛다리 짚었다고?"
라며 탄식을 하던 찰나, 이 소리가 났던 시기가 언제였던지 봐 뒀던 것이 뇌리를 스쳤다. 바로 가속도가 급격히 변할 때다. 그럼 가속도가 급하게 변하면 이 모터가 급격히 기울지 않겠는가? 그래서 모터를 손으로 살짝 기울여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8개월간 차 안에서 꾸준히 울어대던 귀뚜라미가 이젠 내 손위에서 울고 있는 거 아닌가??
"유레카!!"
아르키메데스가 욕조를 박차고 나왔다.
이제 원인을 확인했으니, 블로워 모터를 최대한 고쳐보려 했지만, 이미 녹슬 대로 녹슬어버린 모터 축에 무슨 짓을 해도 이 소리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심지어 모터 안쪽에 있는 코일과 브러시까지도 녹슬어버린 것을 보니 이 녀석은 수명을 다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어 보내주기로 했다. 10년이면 많이 했다.
Autozone 웹사이트에 접속해보니, 역시나 해당되는 애프터마켓 제품을 팔고 있었다. 정품은 정가가 400달러에 육박하고 할인해도 200불은 훌쩍 넘는 무자비한 녀석인데, 애프터마켓 제품은 정품이 아니라서 그런지 90달러에 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전에 다른 것들을 구매해둔 게 몇 개 있어서 적립된 포인트까지 사용을 하니, 무려 60불에 구할 수 있었다.
힘겹게 모신 귀한 새 블로우 모터를 다시 원래의 위치에 넣어주고, 에어컨을 틀어보니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분명 예전에는 당연할 만큼 소음이 나던 원형 교차로(Roundabout)에서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했다. 지금까지 수리했던 것 중에서 가장 보람찼던 게 아닐까 싶다.
DIY가 가능한 수준의 정비에서 이정도의 만족감을 얻기란 쉽지가 않은데, 생각보다 수리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수리 전과 후의 차이가 상당하다는 점에서 꽤나 만족스러웠다. 글로브 박스를 뜯느라 고생한 것만 빼면 말이다.
아무튼, 이번에 얻은 결론은, 아무리 쉬워 보이는 정비도 실제로 해보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조립이 분해의 역순이라고 했지 쉽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DIY를 하면 공임비를 상당히 아낄 수 있고, Auto center에서는 무조건 정품 부품만을 고집하는 반면, 그만한 성능을 충분히 내주는 애프터마켓 부품을 자유자재로 선택해서 조립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면에서 상당히 유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돈이 많으면 이런 걱정은 평생 안 해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