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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cellaneous Apr 22. 2022

운전면허증을 4수하자

미국에서 주행시험 4번만에 합격한,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

한국에서 출국 준비를 하면서 꼭 하는 것이 바로 국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는 것이다.

국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운전면허시험장이나 인근 경찰서에 가서 본인의 운전면허증을 제시하면 쉽게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운전면허증의 유효기간은 1년으로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런. 데.


이 1년이라는 것은 고정된 거주지가 없는 사람, 예를 들면 ESTA 비자로 입국한 여행객들에게는 적용될 수 있는 유효기간이지만, 나처럼 학생비자인 F-1 비자로 미국에 입국해서 월세를 내가면서 일정 장소에 거주하고 있는 자에게는 이 유효기간이 60일로 대폭 단축된다. 학생비자뿐만 아니라 고정된 거주지가 있는 경우에는 모두 해당이 된다고 보면 된다. 거주자가 60일이 모두 지나도록 국제 운전면허증과 한국 운전면허증만 소지한 채 운전하다가 적발이 되면, 무면허 운전으로 기소되거나. 운전 중 면허증 미소지로 벌금을 청구하는 Ticket을 받을 수가 있다.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인터넷 검색 찬스를 통한 이상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바로 과속을 하다가 미국 경찰에게 Pull over (미국에서는 경찰이 뒤에 따라붙으면 최대한 빠르게 차를 갓길에 대고 멈춰야 되는데, 이렇게 갓길에 차를 임시로 주차하는 것을 Pull over라고 한다.)을 당해서 경찰 아저씨에게 참 교육을 당한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주말에 연구실을 가는 중이었는데, 차 한 대 없는 대로에 교차로마다 초록불이 연달아 켜져 있으니 속도감을 못 느끼고 나도 모르게 과속을 하고 말았다.

당해보기 전엔 모르지만 막상 당해보면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경찰: 안녕, 너 과속했네? 너 속도 몇이었는지는 알고 있니?

나: 어,, 사실 계기판(Dashboard) 안 보고 있어서 정확히는 몰라

경찰: 어떻게 그걸 안 보고 운전을 할 수가 있니? 너 50 mph에서 무려 80 mph로 달렸어!!

나: 정말 미안, 다 내 잘못이야

경찰: 그럼, 당연히 네 잘못이지. 너 운전면허증은 있음?

나: 응, 국제 운전면허증 있지 (경찰의 예상 못한 팩트 폭격에 살짝 멍해진 채로)

경찰: 그니까 인디애나 주에서 발급한 운전면허증이 아니라는 거지? 너 입국 언제 했는데?

나: 21년 8월 1일에 했어

경찰: 너 그거 유효기간 입국일로부터 60일인 거는 알고 있니?

나: 응? 난 1년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 그렇게 적혀있어

경찰: No No, 그거 60일이야, 이번엔 봐주는데 너 그렇게 면허증 없이 운전하면 Ticket 받는다


과속에다가 무면허까지, 단순히 Ticket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기소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걸 떠올리면, 그냥 구두경고(Verbal warning)로 마무리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올해 운은 그날 거기서 다 쓴 것 같다. 아무튼, 이 사건을 계기로 하루빨리 운전면허를 따기로 결심한다. 유효기간이 1년인 줄 알았을 때는 만료 2개월 전에나 설렁설렁 해볼 생각이었는데, 진짜 유효기간이 많이 지났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부터 마음이 급해졌다. 그날 집 가자마자 바로 운전면허 응시와 면허증 발급에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운전면허 시험은 크게 교통법규 및 이론시험인 Written test와 주행시험인 Driving skill test의 2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Written test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유튜브에 'Indiana DMV written test'라고만 검색해도 영상으로 제작된 문제들을 아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주마다 시험문제가 조금씩 다른가보다. 시험은 현장에서 한국어로 선택해서 볼 수도 있지만,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발번역으로 인해 오히려 한국어로 보는 게 어렵다고들 한다. 


Written test는 DMV(차량등록국)에 방문하여 저렇게 터치스크린이 달린 컴퓨터로 응시한다


Written test는 한방에 가볍게 통과하고, 이제 대망의 Driving skill test를 볼 때가 왔다. 운 좋게도 미국의 주행시험은 한국처럼 응시료를 내지 않고도 응시할 수 있다. 다만 응시하기 전에 예약을 해야 하며, 짧게는 1주에서 길게는 3주까지도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주행시험을 위해서는


1. 한국 운전면허증

2. 국제 운전면허증

3. 자동차 등록증(Vehicle registration) 

이 세 가지를 준비해서 창구 직원에게 제시해야 한다.


한 번에 붙고 금의환향할 나 자신을 머릿속에 그리며 간 첫 번째 주행시험은 Lafayette에 위치한 DMV(차량등록국)에서 응시했다. 결국엔 스쿨존을 벗어나기 전에 스쿨존 밖에 위치한 속도표지판을 보고 내 차가 속도표지판을 지나가기도 전에 속도를 올렸다는 이유로 가볍게 탈락했다. 참고로 동승한 감독관은 주행시험 중에는 절대로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다. 시험을 떨어진 게 확정되더라도 끝까지 아무 말없이 최초 출발지점까지 간 다음에야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준다. 아무래도 감독관의 신변보호 목적이 아닌가 싶다. 

감독관은 조수석에 동승해서 종이로 된 채점지에 바로바로 감점사유를 기록한다

두 번째 시험은 2주 뒤였다. 다들 한 번씩은 잘들 떨어지지만 통상 두 번째에는 통과하는 것 같아서 긴장 따위는 하지 않았다. 첫 번째 시험을 과속으로 떨어진걸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더니 "정말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가야 한다"라는 조언들을 많이 해주셔서, 이번에는 실수로라도 제한속도를 넘기지 않으려고 표지판에 써진 속도 -5 ~ -6 mph로 운전했다. 결과는 또다시 탈락. 과속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게 너무 천천히 가는 거란다. 이상적인 속도는 제한속도에 닿을락 말락 하게 컨트롤하면서 가는 거라고 한다;;; 

  스쿨존 속도는 보통 20 mph이다. 제한속도는 내 차가 표지판을 지나는 순간부터 유효하다.

세 번째 시험은 3주 뒤였다. 이제는 슬슬 압박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두 번 떨어진 사람은 주변에서 본 적이 없고 그냥 "누가 두 번이나 떨어졌다더라"정도로만 들어본지라, 내가 일종의 Outlier가 되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감독관은 같은 사람이었고, 화면을 유심히 보더니 이전에 떨어진 이유가 뭔지 아냐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 것을 일러주었다. 아마 이전 주행시험 응시 이력을 조회할 수가 있나 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 번째 시험도 탈락했다. 이유는 우회전해서 큰 도로로 진입할 때 왼쪽에서 차가 아예 오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그간의 운전경험을 바탕으로 이 정도면 나름 적당한 차간거리라 생각하고 진입하려 했더니 감독관이 "Stop!!!!"이라고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닌가?? 내가 더 놀랐다... 주행시험 탈락 사유 중에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는 즉시 탈락 요소가 되기에 이번에도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운전면허 4번보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들 했다. 그렇게 자타공인 아웃라이어가 되어버렸다.


하늘이 노오오래진다. 생각보다 큰 박탈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게 뭐라고 이 고생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또다시 운전면허 없이 운전해야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게 싫고, 이것만 붙잡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시험 한번 볼 때마다 시간소모도 무시 못하는데, 이제는 이게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급격한 스트레스가 마침 눈앞에 보이는 버거킹으로 나를 인도했고, 나는 그 설움을 와퍼 먹방으로 살살 달래 보았다.

내가 4수라니 ㅠㅠ


수능도 한 번밖에 안 본 내가 운전면허를 4수씩이나 하다니...

네 번째 시험은 또다시 3주 뒤였다. 이번에는 그냥 시험장소를 West lafayette 지역으로 바꿔보았다. 아무래도 내 마음속에서 시험장소 탓이라도 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두 번째, 세 번째 탈락 때도 비가 왔었는데, 그날도 비가 쏟아붓는 날이었다. 괜한 불안감이 더해지고 초조해지기까지 했다. 이제는 탈락 통보를 받는 게 행복하진 않지만 익숙해져 버린 듯했다. 다행히도 4번째는 깔끔하게 통과했다. 감독관이 통과했다고 말해주는 그 순간 감독관 앞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지경이었으니, 그간 내 마음고생이 얼마나 많았는지 짐작이 되는가? 


합격 후 10분 뒤에 감독관이 로비에서 나를 다시 불렀고, 드디어 운전면허 발급절차가 시작되었다. 인디애나주에서는 운전면허증을 발급받기 위해 갖가지 서류들이 필요하다.


1. 여권과 그 안에 붙어있는 비자

2. I-20(입학에 따른 입국 허가서)

3. I-94(입국 증명서)

4. Proof of address(현 주소지를 증명할 수 있는 인터넷 혹은 전기 요금 청구서)

5. SSN card(SSN이 없다면 발급 후 60일이 경과하지 않은 SSN denial letter가 필요하다)


이렇게 다섯 가지가 필요하고, 다른 주에서는 다른 게 필요할 수도 있으니 잘 확인해보기 바란다. 해당 주의 DMV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상세하게 나와있으니 참고해서 서류를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 팁이다. 특히 SSN이 없는 경우에는 SSN waiver의 유효기간이 생각보다 짧은 시간 내에 만료되는지라, 운전면허를 여러 번 떨어지게 되면 어느새 SSA(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 한국으로 치면 주민센터나 정도 되겠다)까지 가서 waiver를 새로 발급받아야 되는 귀찮음이 현실로 다가온다. 나는 실제로 운전면허를 따는 동안 SSN waiver 갱신만 2번을 했다.


사진의 품질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만든듯한 이 녀석이 운전 면허증에 들어가는 내 얼굴을 형편없이 박제해버린다.

운전면허증을 받기까지는 14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운전면허증을 대신할 수 있는, 종이로 된 임시 면허증을 발급받아서 사용한다. 한국과는 다르게 운전면허증에 쓰일 사진을 지참해 가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바로 사진을 찍어서 등록한다.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찍는 게 아니라 촬영 기계가 촬영하는 방식이다 보니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인물사진 구도에서 나오는 불만족스러움은 덤이다. 기본적인 못생김에 못생김을 한층 더한 느낌이랄까?


어쨌든, 처음으로 Written test 준비를 시작한 때로부터 대략 3개월 만에 운전면허를 합격한 것 같다.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예상 밖의 시간낭비가 워낙 컸던지라 미국 생활 중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으로 평생 남을 것 같다. 자신이 미국에 유학이나 장기체류 목적으로 왔고 고정된 거주지가 생기는 사람이라면, 미리미리 준비해서 유효기간을 넘기기 전에 꼭 취득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Indiana 주의 운전면허증 샘플이다. 내 운전면허증은 지금 우편으로 오고있는 중이고, 2주정도 걸린다고 한다. 저렇게 사진이 잘나온걸 보니 실물이 상당히 괜찮은 분들이신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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