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카드정보 도용당한 이야기
어라? 나 이런 거 결제한 적 없는데?
어느 날 무심코 계좌 잔고를 확인하려 앱을 켰는데, 결제한 적도 없는 금액이 계좌에서 빠져나간 것을 알 수 있었다. 결제자의 이름을 보니 'BACKGROUND LOOKER'라고 되어있고, 빠져나간 금액은 24.95달러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돈쓰면서 남 뒷조사하고 다닌 적은 없는데...? "
혹시라도 비슷한 게 또 있는지 찾아보니, 그 이전 달의 비슷한 날짜에 또 빠져나간 24.95달러와 함께 'REPORT FINDER'라고 쓰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좀 감이 잡힌다. 그때쯤에 차에 문제가 생겨서 자동차 정비 이력 보고서를 찾는답시고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단돈 1달러에 자동차 이력 보고서를 제공해주는 서비스가 있는 것을 보고, 횡재했다고 생각하며 아무 생각 없이 이용했었던 기억이 난다. 보고서 내용이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멀끔하게 잘 나와있는 것을 보고 이게 사기라는 의심을 하지는 않았었다. 단돈 1달러에 얼마나 많은 걸 바라겠냐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런데 분명 보고서 1건만 받고 1달러만 낸다고 했지 이런 구독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한 적은 없는데??"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든다. 어렵게 다시 그 회사의 웹사이트를 다시 찾아봐도 구독 서비스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래도 큰돈은 아니라는 생각에 일단 정식적인 절차로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생각에, 마침 그 회사의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Live Chat을 이용해서 상담사를 통해 환불과 구독해지를 요청했다. 생각보다 별문제 없이 구독이 해지되었고, 확인 이메일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좀 허술하긴 했지만, 미국이 한국에 비해서 이런 쪽의 디자인은 형편없었던 것을 생각하며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러다가 한 달이 지나고, 이번에는 29.95달러가 결제되었다. 이번에는 'EASY CAR RESULTS'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니, 같은 업체의 작품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고, 이 녀석들이 사기를 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웹사이트를 찾아보니 그전에 봤던 회사와는 엄연히 다른 위치에 있는 것으로 나와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업종에다가 날짜도 비슷한 것을 보니 내 카드정보가 도용당했다는 쪽으로 확신이 생겼다.
구글에 결제자명과 해당 회사의 이름 등으로 여러 가지 검색을 해보니, 요즘 들어 횡행하는 사기 수법 중 하나라고 온갖 불만을 쏟아내는 글들을 볼 수 있었다. VINHistoryUsa라는 이 회사는 구독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이 이런 식으로 최초 1달러 결제 시에 제공한 카드정보를 고객의 동의 없이 사용해서 금액을 인출해감과 동시에, 이제는 다른 회사로 위장해서까지 계속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결제자명을 이런 식으로 계속 바꾸어서 추적을 피하려는 의도가 명확히 보였다.
해석 : "다른 얘들이 말했듯이 사기다. 1달러짜리 보고서를 제공한다는 것을 미끼로 광고를 한 다음 월 24.95달러짜리 구독으로 전환시켜버린다. 카드 결제내역엔 다른 명의로 기록되어 있어서 추적하기가 어렵다. 나에게도 이 녀석들은 1달러의 과금을 다른 명의로 여러 번 부과했다. 결제 취소를 위해서 전화했지만, 자동응답 시스템이 응답할 뿐이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은행 앱을 켜서 카드를 정지시키고 사기 신고를 넣었다. 카드를 기다림 없이 발급받으려면 가맹점에 직접 방문해야 했는데, 이용하는 은행은 학교 은행(Purdue Federal Credit Union)이어서 캠퍼스 내에서도 가맹점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수업이 끝나고 바로 가맹점에 들러서 간단한 신원확인 후 5분 만에 바로 새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은행의 사기 대응 담당부서에서 메일이 왔고, 사기 피해에 따른 결제금액과 결제일을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나 말고도 다른 학생들이 같은 피해를 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최대한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서 정보를 제공했다. 그러고 나서 이틀 후에 사기 피해로 인한 결제 건들 이 전부 환불되었다. 사실 환불까지는 기대도 안 했는데, 이렇게 쿨하게 환불해준다니, 뜻밖의 선처에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 미국의 카드사나 은행들은 보통 이런 사기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더 고객중심으로 잘 대응해주는 것 같다.
이젠 어느 정도 지나간 이야기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재정이 어려워지자 미국에서는 요 근래 각종 사기수법이 판을 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사기라고 해봐야 피싱이나 스미싱 그리고 전화사기를 떠올리기 쉽고, 어느 정도 이를 구별하는 방법이나 대응방식에 익숙해져 있지만, 미국은 나에겐 익숙치 않은 다른 수법들이 존재하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코 베이기 십상이다. 특히 이렇게 대놓고 카드정보를 도용하는 수법은 차마 생각조차 못해봤다.
아무튼, 안 그래도 자금이 넉넉하지 않아서 먹는 것까지 줄여가며 살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사기당하느라 돈을 잃고 나서 복구도 못했으면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는가? 24.95달러면 둘이서 간단하게 한 끼 먹고 팁이랑 세금까지 지불할 돈이다. 푼돈이라면 푼돈이겠지만, 이렇게 잃는 돈은 푼돈일지라도 기분이 더럽다. 그래도 더 큰 금액으로 사기를 당하지는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