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끝났다.

by 둠두

한참 학생의 시절을 지나가던 20대에는 시험이 끝나면 마치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시험을 준비하느라 미뤄뒀던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만족스러운 하루로 한 달을 채워나갈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를 가로막는 무언가에서 벗어나면 훨훨 나를 위해서 내가 그동안 하고 싶던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유로운 마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기만 했다.


근데 박사를 해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나이를 들어서 그런가.

일과 박사학위를 겸하고 있어서 그런 건지.


수없이 스쳐가는 이유 중에 무엇을 골라잡아도 그리 특별할게 없이 비등하지만 명확하게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솔직히 요즘은 정말 알 수 없는 마음들로 하루를 가득 채우고 한 달을 채우고 그렇게 채워지지 않은 채로 시간만 성실하게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서 이렇게 키보드 앞에서 글을 쓰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고 먼지처럼 부서지고 말 것 같았다.

사실 지금도 번호표도 받지 않고 창구로 돌진하는, 해야 할 일이 한가득이다. 모든 일이 본인이 지금 제일 바쁘다며 아우성과 어리광을 동시에 부리는 턱에 한 가지 일을 받아 들면 득달같이 다른 일들도 그 문서 위에 또 다른 문서를 쌓고 있는 기분이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은 너무 소란스러운 소리들에 묻혀버린다.

내 말과 마음은 무시되고 그저 기계처럼 멀쩡하게 앉아일을 하기 바란다.

그렇게 처리해 달라며 몰려오는 일에는 눈도, 귀도 없어 보인다. 나를 전혀 배려할 생각이 없는 시간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어차피 직장 다니면 다 똑같이 힘든데 혼자 유난스럽다고. 그렇게 일 안 하면서 사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할 수 있지.

나도 안다. 내가 직장에 안 다녀본 것도 아니고 연구직이며 사무직이며 찍먹이지만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을 직장인으로 어느 자리에서든 열심히 일했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시험도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 중 가장 큰 일이라거나 끝나면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는걸 안다. 시험은 그저 번호표를 뽑고 조용히 소파에 앉아 기다리다 본인의 순서가 되었을 때 아주 친절하게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을 주고 떠날 뿐 어떤 것도 바꿔주지 못한다는 걸.


진짜 사회인으로 매일 그 자리에 앉고 서서 일을 처리하고 이미 늦게 일처리가 된다며 잔뜩 성이난 누군가에게 열심히 일을 처리하고도 죄송을 말해야 하고,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매일 같은 컨디션과 기분, 상태로 그 모든 일을 처리해 내야 한다는 것.

사회가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 내게 원하는 모습은 이런 모습일까.

그러면 나는 지금 사회인으로서 제대로 된 기능을 잃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은 ‘사회’라는 매몰찬 바람 속에서 이리저리 나부끼는 아이일 뿐인 나는 지금은 내가 뭘 위해서 살 수 있을까?

‘한숨’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텅비어버린 하루를 지나가는 커서 뒤에 남겨두며.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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