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길, 앞으로 가야할 길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날 떨리게하는 오늘 이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세워둔 계획이 두려워 지는 오늘 이다.
4년 전 까진 돈 버는게 힘들진 않았다. 겁나는것도 없었고, 무엇이든 할수 있는 자신감 내겐 늘 존재 했었다. 하지만 그 믿음과 자신감 요즘 사라진다.
나이 마흔, 직업은 실업급여 받는중이고, 아들 하나 키우기 힘들어 하는 한부모 가정, 슬픈 현실이 나를 갈증 나게 한다.
며칠전 친구와 통화를 하던중 친구가 말했다.
"점점 더 갈수록 자신이 없어진다!" 그말을 듣고 친구에게 난 '힘내' 라는 말을 했다.
전화를 끊고 나에게 밀려 오는 "ㄱㅏ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내 마음과 내 가슴을 두근 거리게 만들며, 날 불안하게 했다.
사별후 나스스로 "재혼"이라는 것 없이 혼자서 잘 살거라 했던이유, 누군가에게 또 상처 받을 까봐 였고, 난 아들 하나는 잘 키울 수 있을 거라 자신 했었다. 결혼 후 에도 일을 했었고 그덕분에 사회 생활이 단절 되지 않았던 덕분에 난 경력이 있었고 돈을 벌수 있다는 자부심이 강했다, 사별 후 내가 하고 싶고 오랬 동안 돈을 벌수 있는 직업을 찾으려 했었다. 그중 내가 선택한 하나는 방송 통신 대학 청소년 교육학과에 입학이였다. 그때 내 아버지는 "지금네가 공부 할때냐고"하셨다. 그 말 한 마디에 난 많은 충격을 받았다. 많은 생각을 했고 친구들과 이야기 하며 고민끝에 부모님도 원하시고 내아이를 위해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가장" 으로 새롭게 시작 하기로 하고 잠시 하고 싶었던 공부를 접어 두고 2013년 4월에 현대카드 콜센터 업무를 하는 아웃 소싱 회사에 교육을 받고 입사를 하게 되었다.
생전처음 하는 콜센터 에서의 업무는 멀티 상담 업무였다. 즉 인세일즈 콜, 콜을 받은후 고객이 원하는 것을 상담하고 보험 또는 카드론 상품을 파는 것이였다. 난 수당을 더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고, 생각 보다 한 두달 뒤에는 급여도 제법 올랐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도보 이용해 출근 할 수 있었으며, 점심은 도시락도 싸서 다니고 사먹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잠을 자기도 했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다만 사별후 1년만에 사회 생활 이였기에 마음과 정신적으로 가장 힘이 들때였다. 매우 심한 불면증에 우울증, 공황장애, 대인기피증, 불안장애, 섭식장애, 정신과 치료는 받고있었기에 그때 난 지금생각 해봐도 참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였다.
그때를 생각 하면 눈물이 나려한다.
매일밤 눈을 감으면 마지막에 본 신랑 모습이 보여 잠을 잘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들기 위해 난 약을 먹야했고, 아침 이면 그 독한 약기운이 남아 있는 상태 에서 난 출근을 했다.
사별전과 다름 없이 사별 후에도 친정 부모님과 그리고 아들과 함께 네식구는 함께 살았고 늘 약을 먹어야 했던 내 마음을 알수 없었던 친정 엄마는 이런 내 상태와 이유를 잘 모르고 계셨다.
지금도 내가 잠을 잘 못자는 이유는 모르신다.
그 이유 난 늘 혼자 라는게 외로웠고, 신랑을 죽음으로 부터 잡아 주지 못했 다는 죄책감에 편하게 잘수도 없었고, 아들에게 아빠를 잃게 한 모든 책임이 내게 있다고 생각한 나 자신을 "가해자"라고 생각을 하며 늘 마음으로 울며 생활을 했던 거였다. 또 난 나스스로 늘 평온함 을 유지하기 위함이였고, 깊은 숙면의 잠을 자고 사회 생활을 해야했기에 난 늘 정신과 약을 복용 했던 것 였다. 단순한 수면제가 아닌 항 우울증 치료를 하는 중 이였기 때문이다.
사별은 내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며, 곧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내 스스로가 "가해자"라고 상처 주며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시간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완전하지도 않았고 일반적 으로 정상 사람 여성의 정신은 아니였다.
콜에 대한 겁도 없었고, 자신감에 회사에 오래 다니고 싶었다. 일 끝나고 회사 동료들과 함께 저녁으로 웃으며 술한잔 기울이고 아들이 집에올 시간에 맞춰서 집에 들어갔고. 아들 에게는 내가 해줄수 있는 교육인 영어, 피아노, 미술, 공부방, 태권도등 해 줄 수 있는 건 다 배우게 했었고 사고 싶은 장난 감을 사주며, 혹시 라도 내가 죽더 라도 보험금은 잘 탈수 있도록 보험도 몇개 가입해가며 난 4년동안 나름 살려고 발버둥 치며살아왔다.
아들에게 아빠가 없는 앞으로의 그 길과,
또 엄마인 내가 하루 종일 늘 곁에 있어 줄 수 없기 때문에 미안함이란 마음을 합리화 하며, 아들에게 엄마와 아빠 역할을 동시에 하기 위해 난 많은 노력 했었다.
오늘 문득 내앞의 놓인 현실을 잠시 보았다.
새로운 일을 시작 하려고 세운 내 계획은 그대로 진행 중이다. 잠시 흔들리고 있었다.내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 난 답답함에 생각에 잠긴다.
오늘 아들 보험료와 내보험료가 4월1일 자로 실효 될수 있다는 문자를 받고 난 또 다시 경제적 현실과
4년전 내 아버지가 하신 한마디 말이 생각났다.
1인1책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배부른 베짱이가 여름에 일하지 않고 노래와 기타를 치는것과"같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돈이 없는 지금 현재 상황 에서 노트북도 하드웨어 문제로 수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기술을 배우려고 하는 내 생각, 내 나이 마흔에 간호조무사 자격시험을 보기 위해 청주 고용 센타 취업 성공 패키지에 등록하여 모자가정 혜택으로 전액 국비지원금으로 무료로 9개월과정으로 4월 중순부터 교육을 받는것도 그렇고 내가 앞으로 더 오랜 시간 일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한 '선택' 이란것을 하는 과정속에서 난 또 현실과 미래와 싸움을 한다.
자격시험을 공부하는 9개월 동안은 실직 상태가 된다. 아들 학원비와 보험료 통신비등 어떻게 해야하나?또 난 4년전 했던 고민에 또 빠져든다.
지난4년 동안 단기 마라톤 하는 힘은 충분히 길렀다
인생은 단기 마라톤이 아니다.
인생은 장기 마라톤이다.
태어남 과 동시에 마라톤 출발 지점에서 시작 되는 것이 인생이고, 죽음 까지가 마라톤 시작 지점으로 돌아 오는 것, 그 것이 완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미래를 위해 필요한 처방전을 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혼자서 하려는 내 자신이 혼자인 내가 현실과 함께 미래를 위한 처방전을 유지 해야 하는 나로서는 오늘 유난히 초라하게 느껴진다.
현실 때문에 또 한번 ㅇㅏ닌 두번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은 한길뿐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장기 마라톤의 완주를 하는것이 내 목표.
오늘은 유난히도 날 응원해 주던 "용기"가 봄바람 탓에 도망가고 없는것 같다.
간절함으로.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
서영아 방법이 있을꺼야!
천천히 물이흐르듯 순리대로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