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 혜리 Nov 05. 2022

엄마의 황혼


선들거리는 바람과 함께  낙엽이 곱게 물든 날,


엄마 좋아하는 두유, 바나나, 쇠고기 두 손 가득 들고

발걸음 재촉하여 고향을 찾은 날에


담너머로 가지 늘어뜨린 어느 집 감나무에는

빨갛게 익은 홍시가 주렁주렁 햇살 속에 웃는데,


잠자던 강아지 벌떡 일어나 꼬리 흔드는 것처럼

현관 앞 엄마의 풀린 눈동자엔 반가움 서려있다.


흰 저고리  입은 사진 속 어여쁜 모습 온데간데없이

노란 은행잎 같은 주름진 얼굴로 내 앞에 앉은 엄마는


느타리버섯에 연푸른 배춧잎 띄운 불고기 전골

한상 가득 차린 밥상 오물오물 맛있게 드셨네.


젊은 날의 엄마는 검은 공단 같은 머리로

꾸역꾸역 어린이날마다 우리를 집으로 불러 모았는데,


고사리손 더하여  땀 흘려 지은 일 년 농사 

에 남은 건 보통사람 달이 채 안 되는 월급.


엄마 연세 환갑에 이르렀을 때 아프시다는 허리

농사는 이제 그만 짓고 편히 사시라 말하며


뼈에 구멍이 숭숭하여 어렵다는 수술을

이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며 겨우  드렸지만,


일 년이 안되어 다시 재발한 엄마 아픈 허리.


어미젖 찾아 울음 터트리는 첫아이 낳은 나에게

성미 급한 엄마는 보름이 안되어 집으로 돌아가라 하였건만


무엇이  급하여  엄마는 그리 버둥거리셨을까.


나는  그렇게  미련하시냐 말하고 싶지만은

쇠귀에 경 읽기 지가 오래되었네.


갓 육십 넘어 손발 묶은 어린아이처럼


되신 얼굴  때마다 마음 아팠던 나는

먹고 싶고 입고 싶은 참아가며 호주머니 채워 드렸지만

 

엄마는 틈틈이 모은 용돈  하나뿐인 아들 장가든 날 

내어놓으셨네.


늙으신 부모님 입가에 서린 웃음 보고 싶을 때면

먼 곳 사는 자식은 그리움 찾아 자주 하는데


무엇을 해달라는 사람도 없고 키울 자식도 없는 때에

천금 같은 시간 잉여로 보내버린 엄마의 슬픈 황혼.


마을 회관 한번 다녀오려면 한나절이 걸리는

이제는 지팡이를 짚어도 어려운 바깥나들이.


몸이 부실한 나는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에

메아리 없는 사모곡 조용히 혼자 불러보네.








 






 











매거진의 이전글 고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