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윗집에서 부주를 한 아름 가지고 왔다. 몇 년 전부터 고향에 농막을 치고 농사를 지은 부부는 작년에 남편이 은퇴하면서 자주 집을 비웠는데 작년 동지에는 팥죽을 끓여서 우리 집 벨을 눌렀고 올봄에는 잘 다듬은 두릅과 머위를 내게 안겼다.
몇 년 전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 나는 비교적 간단한 두 번째 수술을 받았다. 많이 아프진 않았지만 내색을 하기 싫었던 나는 얼굴이 차갑게 변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터지고 마스크를 끼게 되면서 이웃과 마주친 엘리베이터에서 간단한 목례만 하고 거리를 두며 지내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결혼을 하고 나서 이 년이 지나 겨우 월세를 면하고 들어간 전셋집은 이층으로 된 주택이었는데 주인이 살지 않는 일층에는 남편의 사업이 안 되어 비싼 그릇으로 홈쿠킹을 시연하는 홍대 나온 언니가 살고 있었고 우리 옆집에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시간강사를 하는 남편을 둔 서울의 명문여대를 나온 언니가 살고 있었다. 우리는 가끔 옆집 언니네에 모여 김치전과 탕수육을 만들며 담소를 즐겼는데 lMF가 도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들은 대출을 하여 집을 사서 나갔다. 혼자 남겨진 나는 많이 허전해하였는데 나도 곧 이사를 하게 되면서 그 집을 떠났다.
내가 처음 집을 사서 이사를 한 그곳은 주위에 땅이 빈 곳이 많은 신도시였다. 나는 그곳에서 둘째를 가 낳아 키웠는데 처음에는 외톨이가 된 것 같아 외로웠지만 비슷한 나이 또래의 그녀들과 어울려 이집저집 돌아다니며 차를 마시고 함께 밥을 먹으며 수영을 다녀 정이 많이 든 곳이 되었다. 오 년이 지나 나 혼자 시내로 들어오면서 그녀들과 헤어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투병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웃과 교류를 많이 하지 못했다.
살면서 적지 않은 만남과 이별을 겪었는데 내게 하느님을 믿으라고 전도를 한 옆집 언니는 아이들이 자라 미국으로 떠나면서 가끔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고 신도시의 그녀들과도 가끔 연락을 하며 지낸다. 이제 코로나도 저만치 물러 나 집뒤에 있는 동산과 호수로 운동을 나갈 때마다 매일 다정하게 손을 잡은 부부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옆집에 사는 언니는 얼마전 집에 초대하여 다과를 나누었다.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처럼 삭막하다는 요즘 세상에서 손을 내미는 이웃이 있어 아직 살만하다는 생각을 하며 몇 주 전 자녀 결혼식 축의금에 대한 답례로 업체 부장님이 직접 농사를 지어 보내온 복숭아를 반절 나누어 아침에 위층으로 올라갔다.
올봄에는 햇쑥으로 인절미를 만들어 나누어 먹었는데 햇사과가 곧 홍조를 띤다는 과일가게 주인의 말처럼 다음 주엔 시장에서 사과 한 봉지를 사서 위층에 가져다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