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by 박 혜리


어릴 때 같은 마을에서 자란 J와 나는 일 년에 두세 번 안부를 물으며 지냈다. 통화를 할 때면 그녀는 묻지도 않은 소식들을 많이 전하였는데 하루는 그녀에게 K의 근황을 물었다. 우리보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세명의 아이를 둔 K는 시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 하였는데 그녀와 한번 통화를 해보리라 생각하며 나는 J로부터 K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그러던 늦여름의 어느 날, 나는 K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전처럼 그녀는 반갑게 통통 튀는 목소리로 내 전화를 받았는데 그동안의 일들과 친구들의 근황을 묻다가 우리는 다음에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날씨가 맑은 가을의 어느 날, 나는 베이지색 가을 코트를 입고 K가 알려준 주소로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한 시간 넘는 거리를 운전하며 그녀를 만나러 갔다.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서 도착하였다고 K에게 전화를 하니 검은색 라운드넥 티셔츠와 같은 색 바지를 입은 k가 뚜벅뚜벅 나를 향하여 걸어왔다. 우리는 환하게 웃으며 근처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며 아이들과 그동안의 일들을 이야기하였는데 물었는데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음을 피하여 식사가 차를 마시기 위하여 커피숍으로 향하였다.


"k야 너는 전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네."


"너도 마찬가지다야."


"그런가. 나이를 먹으니 체력도 그렇고 나는 예전과 다르게 힘이 드네."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문득 K의 옆집에 사는 S의 소식이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S는 잘 지내지? 요즘 어디서 뭐 하고 지낸다니?"


"지금은 경기도에 사는데 결혼식 얼마 남겨두지 않고 파혼을 했어."


서로 떨어져 있는 데다 바쁜 생활로 나는 그녀를 잊고 지냈다. 임신을 하였을 때 진찰을 받기 위하여 방문한 병원에서 만났던 S는 내가 병원을 갈 때마다 빨리 진찰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며 점점 불러오는 배 위에 걸쳐 입은 원피스를 이쁘다며 말하였는데 다른 도시로 떠난 그녀는 항상 내게 친절하였다. S에게 카톡을 하고 전화를 걸어도 답이 없다며 억울하다는 듯 분개하는 K에게 좋은 이야기도 아닌 데하며 나는 사정이 있겠지라고 S의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라고 하였다.


마을을 벗어난 신작로를 따라 걸어 나오면 큰 도로가 나오고 약 10분 정도 걸으며 학교가 있었다. 학교옆에 있는 마을을 지나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K가 사는 마을이 있었는데 아담한 키에 얼굴이 예뻤던 그녀와 나는 초등학교 때 처음 만났다. K는 S와 돌담을 사이에 두고 이웃마을에 살았는데 나를 포함하여 동네 친구 두 명과 항상 붙어 다녀 주위친구들로부터 오 총사라 불렸다. 우리는 등하교 때 자주 만나며 가끔 마을입구에 있는 친구의 집에 함께 모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K의 집에서 놀았는데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차츰 멀어졌다.


K와 만나고 돌아온 이후 가끔 그녀와 통화를 할 때면 여섯 형제 중 유일한 남자이며 지금은 고인이 된 오빠 이야기를 하였다. 여섯 형제 중 하나뿐인 아들이라 생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애지중지 키운 이야기며 몸이 약한 오빠가 사업을 할 때 여러 형제가 물심양면으로 도왔지만 결국 좋지 못한 결과로 결국 하던 일을 접고 좋지 않던 건강마저 잃어 오십을 넘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하였다. 항상 그런 가족사가 있는 줄 전혀 몰랐는데 K와의 만남이 있은 이후 글을 써볼까 그림을 그려볼까 댄스를 배워볼까 하며 고민을 하던 어느 날, 나는 내 개인사가 있는 짤막한 에피소드 한편을 적어 K에게 보냈다.


그리고 몇 달 후 K와 나는 그녀가 사는 아파트를 벗어난 산길을 돌아 찾은 커피숍에서 다시 마주 앉았다. 그녀는 전화도 오지 않는 핸드폰을 자주 쳐다보며 이름도 듣지 못한 영양제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녀를 바래다주고 난 얼마 후 코로나시국을 맞이하면서 몇 년을 만나지 못하였다. 가끔 전화로 딸이 대학에 진학한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는데 지난번 만났을 때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태도를 맘에 걸린 나는 가벼운 글 한편을 써서 다시 보내었다. 시간 날 때 읽어보겠다 하여 그런 줄 알다가 다시 안부로 카톡을 보냈는데 그녀에게서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을 따라 몇 년간 해외에 체류하다 돌아온 L과 나는 마트에서 다시 만났다.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근무지에서 있었던 일을 전화기로 이야기하던 그녀는 남편의 동료 와이프로부터 무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김장을 하고 난 후에 식사를 함께 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김장을 하고 나자 감기를 앓은 막내가 다시 코로나에 걸려 약속을 미루어야겠다고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며 다시 약속을 정하기로 하였는데 아직 답장이 없다.


L을 만난 건 결혼을 하여 2년 월세를 살다가 전세금을 마련하여 들어온 이층으로 된 신축 단독주택에 살 때였다. 그녀는 내가 사는 집 옆 공터옆의 집에 살았는데 이사를 왔다며 과일과 떡을 들고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우리는 친해졌다. 큰 키에 얼굴이 갸름하여 나는 그녀가 청초하다 생각하였는데 시동생을 데리고 있는 데다 집안일을 잘 도와주지 않는 남편으로 인하여 우리는 가끔 공원에서 맥주를 함께 나눠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번 선을 보고 나서 결혼한 K는 첫 번째 만났을 때 내게 백 한 번째 사랑을 꿈꾼다 하였다. 그녀가 집안의 일이며 오빠의 일까지 속속들이 내게 이야기할 때는 내가 편해서 그랬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작은 개울이 달린 찻집에서 사진을 찍을 휴대폰으로 밝기나 크기조절을 하지 못하던 그녀는 운전을 하는 것을 무서워하여 매번 내가 만나러 가야 했는데 낮에 직장을 다니며 대학을 졸업하며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는 S를 깎아내릴 때까지만 하여도 나는 그럴 수 있다 생각하였지만 그냥 한번 읽어보라고 쓴 글에 답이 없는 그녀를 보면서 왜 S가 그녀에게 더 이상 답을 하지 않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아이 때문에 약속을 미루었지만 남편의 직장 동료 와이프처럼 내게 무시를 받았다는 착각을 한 것인지 여태 L로부터 연락이 없는데 아이들을 키울 때 몸을 부딪혀가며 싸운 기억은 잊어버린 듯 아버지를 따라 국제학교에 다닌 경험으로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재외국인특별전형으로 다니는 아이들이 최고란 듯이 말하는 것을 보며 친척이 몰라보게 변했다고 말한 것처럼 그녀는 청순함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얼마 전 초밥을 먹으러 가자는 아들과 나란히 손을 잡고 음식점으로 향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나이테가 고스란히 드러난 판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근래에 자주 대두대는 직장이나 학교의 갑질과 차별을 보면서 타인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요 라며 남의 불행에 기생하는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사람들을 보면서 이것을 보고자란 세대가 다시 그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되었다. 예전에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가 줄어든다는 말을 어른들이 하는 것을 들었는데 조선시대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라며 한탄한 것처럼 나만 옳다는 이기적인 세상에서 나는 말을 아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