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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혜리 Oct 22. 2023

옷장을 정리하며


어제는 남편과 함께 나들이 겸 아울렛에 갔다. 허리 사이즈가 늘어난 남편은 가을에 입을 옷이 더 필요하다 하였는데 내년에 대학에 입학할 막내옷도 필요해서 이곳에 들르게 되었다.


곳에 도착하자마자 늦게 일어난 막내에게 점심을 먹이기 위하여 우리는 식당부터 찾았다. 음식점이 모여있는 식당가 몇 군데를 돌다 한 곳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먹은 음식을 소화도 시킬 겸  양쪽에 일직선으로 길게 늘어선 매장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먼저 남편옷부터 사기 위하여 순서대로 하나씩 훑어보며 걷는데 아들이 좋아하는 브랜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괜찮은 옷을 골라 입어보고 아들은 겨울에 입을 바지도 벌과 모자 달린 티셔츠 그리고 간절기에 입을 패딩점퍼를 샀는데 옷 사는 데에 함께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아들은 마음에 드는 옷을 사서 그런지 무거운 가방을 거뜬히 들며 잘 따라다녔다.


다음은 남편 옷을 살 차례였다. 같은 브랜드에 같은 사이즈라도 옷마다 편한 정도가 다른 것인지 여러 벌 입어보고도 남편은 겨우 바지하나를 골랐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남편에게 입혀보고 실수가 없었던 브랜드로 필요하다면 다음에 백화점에서 더 장만하기로 하고 옷을 모두 산 후 커피숍에 들러 차를 시며 아픈 다리를 푼 후에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오래전 남편 혼자 버는 외벌이 직장인 일 때  나는 거의 옷을 사지 않았다. 명절에 친정을 가면 남동생이 누나는 매번 비슷한 옷만 입느냐며 옷 좀 사 입으라 말하였는데  집의 월세를 내고 다달이 시부모님 용돈을 보내고 나면 아이 하나 키우기도 벅차 나는 옷 사 입는 것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자라고 학교에서 행사하는 모임에 참석할 일이 생기면서부터 나는 조금씩 옷을 사 입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새 옷을 사 입으며 허세를 부렸는옷을 여러 벌 입다 보니 센스라도 생긴 것인지 그날의 기분에 따라 대충 입고 외출을 하여도 옷 잘 입는다는 평을 듣게 되었다.


여하튼 평소에 옷에 관심이 없던 내가 급관심을 보이며 옷을 사 입기 시작하자 그런 내가 의아하였는지 하루는  남편이 '병을 있는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자 곧 세상을 떠날 것처럼 한꺼번에 돈을 많이 탕진하여 빈털터리가 되었는데 병원에서 당신은 곧 죽을 것이다 하였지만 그는  죽지 않고 오래 살아 나중에 고생을 하였더라'며 어느 신문에서 읽었다며 농담을 하기도 하였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계절이 지난 달력을 겉표지에 씌운 후에 나라에서 무상으로 지급한 교과서 수업을 들었다. 중학교부터는 비용을 내고 교과서를 구입하여 수업을 들어야 하였는데  책을 살 수 없었던 가정형편으로 같은 동네에 사는 오빠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나서 얻은 교과서로 공부를 하였다. 헌책으로 지문을 읽을 때면 까까머리 사춘기 소년이 친 밑줄과 낙서로 무슨 말인지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울 때도 많았는데 그것뿐만 아니라 학교에 입고 다닐 옷이 여의치 않아 훌쩍 커버린 키로 못 입게 된 이웃에 사는 언니들의 옷을 얻어와 엄마는 내게 입혔다.


그러다 여름내 농사지은 고추를 읍내에 있는 시장에 내다 팔아 어쩌다 가끔 엄마는 새 옷을 사 오셨다. 주로 사계절 입을 수 있는 바지를 사 왔는데 길이가 항상 길어 나는 늘 두 단 정도 접어 입고 다녔다.  요즘처럼 계절마다 옷을 살 수 없었기에 엄마가 사 온 잠바는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가을부터 여름이 시작되는 다음 해 봄까지 입고 다녔는데 홑겹으로 된 잠바를 입고 학교를 오갈 때나 방학을 맞아 얼어붙은 강에서 친구들과 함께 썰매를 탈 때면 뼛속까지 파고드는 살을 에일듯한  겨울바람으로 위아래의 이가 딱딱 부딪히며 절로 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월든을 집필한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는  의자 세 개, 침대하나, 두 개의 유리창, 벽난로하나로 몇 년을 호숫가에서 생활하였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남이 알아주는 직장을 다니며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는 것이 성공의 공식이 된 요즘  " 우리는 끝없이 얻으려고만 노력하면서 왜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하는가?"라며  소박하게 산다면 자기 한 몸 건사하는 것은 오락거리가 될 것이라 하였는데 자연이 들려주는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과 촉감 그리고 냄새를 통하여  삶의 지혜와 함께 그는 정신적인 여유까지 얻었다 하였다.


올해는 비가 자주 온 데다 꼬리가 긴 더위로 소매가 짧은 여름동안 입었던 옷들을 한동안 정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며 더위가 한풀 꺾이자 짧은 소매대신 팔이 긴 가을 운동복을 찾다가 뒤죽박죽 된 옷들을 끄집어내어 내친김에 정리를 하였는데 언젠가 입을 일이 있겠지 하며 유행만 타지 않으면 지금 입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깨끗이 보관한 오래된 옷들과 매일 운동을 하며 입은 낡은 운동복을 차곡차곡 개어 분리 수거함에 넣으니 하던 옷장이 넓어지며 한결 정리가 된 것 같았다.


지난날  먹지 못하고 제대로 입지 못하여 나를 잘 대하지 못하였다는 자각으로 나는 옷을  입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다른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여유로운 삶을 포기한다며 소로는 일침을 하였는데 아이들이 자라 집을 떠나고 나이가 드는 이때에 먹을 만큼 냉장고를 채우고 새 옷을 사 입기보다 있는 옷으로 만족하며 필요한 것을 사기보다 있는 것을 잘 활용하는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며 나는 앞으로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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