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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혜리 Oct 22. 2023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누가 내게 가장 잘한 일 두 가지를 꼽으라면 첫째는 혼자힘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일과 다음은 운전 면허증을 취득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요즘 수능은 문과 이과를 나누지 않고 통합형 인재를 뽑는다는데 문과 성향인 내가 한 번에 운전면허를 거머쥔 것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 기계를 다루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듯이 컴퓨터가 처음으로 등장하였을 때 세상은 내게 온통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처럼 느껴졌는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대기 발령 중인 여동생에게 첫째를 맡기고 운전면허를 딴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내차가 없을 때 열감기를 하는 아이를 업고 병원에 다녀오면 몸에 땀이 나고 삭신이 아팠는데 롱 속에 몇 년간 혀 둔 면허증을 꺼내어 일주일 도로 연수를 받고 나서 운전을 한 이후부터 나는 지금까지 무사고 운전을 해왔다.


어느 날 직장을 다니는 여동생이 하나뿐인 차로 애를 태우자 타던 차를 디스카운트하여 헐값에 넘기고 나는 다시 차를 샀는데 그 차를 타고 병원도 다니고 어디론가 떠났다 돌아오기도 하며 오랜 세월 우리는 함께 하였다.


엄마차는 뒷좌석에 앉으면 엉덩이가 아프다며 노래를 부르던 막내는 차를 잘 안다는 친구에게 물어보기도 하며 부쩍 차에 관심이 많았는데 올해 중반부터는 남편과 함께 캠리와 크라운을 들먹이며 의기투합하였다. 


나는 급할 거 뭐 있느냐며 천천히 생각해 보자 하였는데  쇠뿔을 단김에 뽑아야겠다는 가족과 함께 전시장이 있는 영업소에 방문하여 우리는 차를 주문하였다.


차가 오면 물 흐르듯이 천천히 명칭과 쓰임새를 익히려고 하는데 가만히 있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기 듯 기분이 모호한 나는 어쩐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마저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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