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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혜리 Oct 23. 2023

편리한 세상


오늘도 점심을 먹고 나서 산책길에 나섰다.


현관문을 닫고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내가 사는 층수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냉큼 타고 나는 다시 현관으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른다.


일층을 지나 로비에 내리니 비밀의 문 같은 밖으로 나가는 문이 나오고 어떤 주문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저절로 열린다.


문을 지나 이삼 분쯤 걸으니 문하나가 개선장군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다.


나는 마지막 문을 지나 무사히 밖으로  나왔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화창하다.


동산을 오르는 대신 호숫가 둘레길을 천천히 걷는다.


막힌 곳 하나 없는 평지에 내리쬐는 햇살을 받고 나니

오늘은 잠이 빨리 올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여느 때처럼 네 바퀴를 돌다가 욕심이 나 바퀴를 더 걸었는데 재어보니 육 킬로미터는 되겠네 싶다.


왔던 길을 되돌아 오늘은 일찍 운동을 갔으니 저녁준비도 빨리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며 열려라 참깨도 안 했는데 문이 양쪽으로 다시 저절로 열린다.


이삼 분 걸어 로비가 있는 현관에  들어서니 나갈 때와같이 스르르 하고 문이 열린다.


문안에 들어선 나는 로비에서 엘리베이터 옆의 버튼을 누르고  내려오기를 기다린다.


내 앞에 엘리베이터가 당도하자 안으로 들어서며 내가 사는 층의 버튼을 누르고 가만히 기다린다.


드디어 집에 도착하여 도어록이 있는 현관문 앞에서  나는 아홉 자리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안으로 입성을 한다.


신발을 벗고 먼저 욕실에서 손을 씻고 어두운 실내를 밝히기 위하여 홈 네트워크에 있는 주방의 조명 버튼을 누른다.


불을 켜자 집안이 환하게 밝아온다.


오늘도 나는 내 휴대폰에 탑재된 현관문 도어개폐 앱으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단지 우리 집 비밀번호만 누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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