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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혜리 Nov 06. 2023

가을비 내린 날


까지 내리던 가는 비가 그치자 점심을 먹은   나는 오후 산책을 나섰다.


운동복을 갖추어 입고 나서 로비에 있는 현관문을 나서는데 어제와 달리 뺨에 닿은 바람이 제법 서늘하였다.


언제나처럼 뒷동산을 오르니 밤새 내린 가을비로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전쟁의 잔해처럼 사방에 널브러졌는데 떨어진 갈색 나뭇잎들이 점령한 계단을 한참 오르니 눈에 익은 오솔길이 보였다.


나는 나무 그늘이 진 길을 한 바퀴 돌았는데 침침한 눈처럼 길이 한층 더 어둑해지자 밝은 공원으로 내려와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길을 걸으며 저 멀리로 눈길을 돌리니 병풍처럼 두른 산은 지난해와 달리 오색으로 물드지 않은 채 아직 새파랗기만 한데 위아래가 다른 물고기 여인처럼 호수 주위심은 단풍나무 역시 반만 물들어 내 마음까지 차가워지는 듯하였다.


어느 곳은 홍수가 범람하고 또 다른 곳은 폭염으로 덥고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기온이 올라 올해는 산천이 곱게 물든 모습을 보기 어렵다는데   인간의 욕심으로 지구가 폐허 될까 사뭇 걱정이 되었다.


미래의 후손에게 물려줄 지구는 아름다운 사람이 머물다 떠난 자리처럼 깨끗해야 하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는 방향을 잃어버린 내비게이션처럼 사람도 자연도 길을 잃은 지 오래 인 것 같다.


또한 개성 없는 표정으로 똑같은 구호를 외치는 한물간 배우처럼  여전히 사람들은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데 사색하는 것보다 빠르게 달려가는 세상에 어지러움을 느끼며 지구에 닻을 내린 여행자로서 나는 천천히 산책을 즐기면서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려고 한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하였다. 창밖으로는 마지막 잎새를 떨구는 찬바람이 부는데 오늘이 지나 내일이 되면 성큼하며 겨울이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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