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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혜리 Nov 06. 2023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어제는 햇살이 구름 속에 얼굴을 감춘 채 하루종일 하늘이 흐렸는데 미식가인 막내가 갑자기 오리탕이 먹고 싶다 하여 우리는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


새 차를 바꾸고 나서 운전할 기회가 없다며 남편이 그날 운전을 하였는데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대로로 나와 좌회전하여 밀집한 주택가를 벗어나니 차가 많이 다니는 큰 대로가 나타났다.


사거리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다 맞은편을 보니 공단이 보였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양옆으로  산재한 길을 따라 길 끝에서 우회전하니 이삼백 미터 앞에 좌회전 신호가 있었다.


남편은 좌측 밖이를 넣고 다시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신호를 받고 좌회전을 하니 고가도로가 나타났는데 외길을 달려  Y자형 도로 앞에서 우회전하여 비스듬한 길을 조금 오르니 터널 앞에 이차선 도로가 나왔다.


남편은 끼어들기를 하려고 우측 깜빡이를 넣었는데  차의 유리창에 침대나 시트 청소라고 쓴 미니밴 레이가 쌩하고 앞질러 달려가자 조금 기다려주면 될 텐데 성질 급하네라며 남편이 말하였다.


그러면서 끼어들 차가 기다리고 있으면 속도를 줄여 다른 차가 끼어들 수 있게 배려하면 좋을 텐데 저런 차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다며 남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을 가만히 듣던 나는 상대방이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당신이 한 템포 늦게 끼어들면 되지 별일도 아닌데 말할 필요 있나 하였다.


그러자 남편은 터널이 바로 앞인데 속도를 줄이지 않는 레이가 잘못이 크다고 말하였다. 누구 잘못을 떠나 사안 나는 것이 우선이니 그냥 넘기면 될 일이라 하자 남편은 대뜸 당신도 운전할 때 상대방이 불시에 끼어들어 사고 유발하면 기분 나쁘지 않으냐 하였다.


그렇긴 하지만  넘어가지 나는 말하지 않는데 하였다.


그러면서 지난번에 주차장에 가만히 서 있다가 나갈 것도 아니면서  브레이크를 발에서 떼어 차가 앞으로 쏠리자  정차한 줄 알고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이 놀라지 않았냐며 나의 경우를 말하였다.


어떤 날 도심의 편도 이차선 도로에서 내가 이차선으로 가고 있었는데 신호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차 한 대가 끼어들려고 대기 중이었다. 나는 당신처럼 정차한 줄 알고 지나려고 하였는데 옆에서 갑자기 차가 풀썩하고 튀어나와 놀랐다고 하였다.


그렇게 갑론을박하다가 우리는 음식점에 도착하였다.


날이 궂은 데다 단풍철이라 그런지 식당은 한산하였는데 좌식 테이블보다 의자가 편하여

우리는 밖이 보이는 방을 골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막내가 좋아하는 오리탕과 메밀전병을 시켜놓고

식이 나오길 기다리자 남편은 다시 이야기를 꺼내었다. 나는 어쨌든 양보해서 나쁠 거 없다며  옆차선을 침범하며 운전에 집중하지 않는 당신 운전 습관도 보기 좋은 것은 아니라 하였는데

운전을 나보다 훨씬 많이 하고 오래 한 남편은 반박은 못하고 막내얼굴만 쳐다보았다.


덧붙여 사고는 초보보다 오히려 베테랑이 더 많이 낸다며 세상에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듯이 나는 그냥 조심하면 된다 하였는데 남편은 운전자보다 옆에 앉은 사람이 더 불안한 것 맞다며  운전할 때 상대방이 배려하지 않으면 자기도 기분 나쁘다 하였다.


아빠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심을 먹던 막내는  엄마는 상습범이라며 웃었는데 차도에서 언제 무슨 일이 벌어 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신호도 없이 갑자기 끼어들거나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는 차로 인해 사고가 일어날뻔한 경험으로  순간적으로 욱하며 혼자 중얼거렸음을 생각하고 나는 역지사지해야 한다 생각하였다.


사고란 결국 쌍방 과실이므로 사고 안 난 것이 다행인데 자존심 센 남편을 이기는 것과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길은 내가 물러서는 것임을 아는 나는 밥이나 먹자 하였다. 내가 한발 물러나자  남편은 웃으며 내 그릇에 오리탕을 들어주었는데 집으로 돌아올 때는 지난번 여행 때처럼 삑 하는 옆 차선 침범하는 소리 대신 조용하면서도  안전하게 남편은 운전을 하였다.


새벽에 베란다 창문을 두드리는 세찬 빗소리에 잠이 깨어 시간을 보니 곧 일어날 시간인데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 창밖을 보니 비바람에 화들짝 놀란 은행잎들이 우수수하며 떨어졌다.


나는 차를 한잔 우려 마시며 어제일을 생각하였는데 부부가 함께 오래가는 지름길은 이기는 것이 아니고 지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운전은 배우자가 가르치는 것이 아님을 상기하면서 앞으로 운전석 옆에 내가 앉을 때는 입 꾹 해야겠다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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