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의 어느 날 타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는 첫째는 생일을 집에서 보내겠다며 내게 전화를 하였다.
나는 언제 내려올 것인지 아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며칠날 집에 올 것이라고 말하던 첫째는 졸업을 하기 전에 여행을 한번 다녀오고 싶다며 용돈을 좀 더 줄 수 없는지 물었다.
나는 언제 누구와 함께 갈 것인지 물은 후 아빠와 한번 상의해 보겠다고 말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첫째는 양력인 제 생일날짜를 지나 집에 오후 늦게 도착을 하였다. 나는 미역국을 끓이고 등갈비찜을 만들어 아들의 생일상을 차렸는데 미리 내가 귀띔을 하여 내막을 알고 있는 남편이 식탁에서 아들과 대화를 나누며 질문을 하고 재차 확인을 한 후에 승낙이 떨어졌다.
군대를 제대하자 첫째는 기숙사를 나와 학교 근처에 방을 얻었다.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아들의 바람대로 방을 얻자 다달이 주는 용돈에 방세까지 더해져 지출이 많아졌는데 여름과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아르바이트를 하였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첫째에겐 용돈이 자주 부족하였다.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 라면 한 봉지에 백 원에서 이백 원 사이, 두부 한모 오백 원.
아들이 받는 용돈은 내가 갓 결혼을 하였을 때 받은 남편의 월급봉투에 찍힌 숫자보다 많다. 첫째가 과소비를 한다 싶으면 나는 경제관념도 심어줄 겸 어렵게 시작한 우리의 신혼 시절을 들려주었는데 '아들 네가 매달 받는 용돈보다 적은 돈으로 엄마는 월세를 내고 할머니 용돈을 드렸으며 너를 키우고 저축까지 하였다' 말하였다.
생일날 집에 온 첫째는 밤에 케이크를 자르고 다음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알바를 하면서도 용돈이 부족하다는 아들은 내가 옛날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라떼 이야기는 그만하시라 하였는데 자기주장 강한 요즘세대답게 제 생일은 잊지 않고 먼저 전화를 하면서도 내가 할 이야기가 있거나 전해야 할 말이 있을 때는 늦게 카톡을 확인하는 아들이 졸업여행도 잘 다녀오고 준비하고 있는 시험도 꼭 합격을 하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