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시부모님 댁을 방문하였을 때 시어머니는 스커트가 무릎 위로 올라가 드러난 내 하얀 속살을 보시고는 춥지 않으냐 하셨다.
나는 허벅지 위로 올라간 치마를 밑으로 자꾸 끌어내리며 어머니께 괜찮다고 말씀을 드렸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 처음 시댁을 방문한 날에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서 모인 가족과 함께 근처에 있는 밭에 따라갔다. 나는 따로 입을 여벌의 옷을 준비하지 않아 시어머니가 준 옷을 입었는데 딱 내 몸 두 개가 들어갈 정도로 큰 사이즈의 바지 허리의 주름을 잡아 핀으로 고정을 시켜 동여매고 시어머니를 따라 밭으로 가서 일을 거들었다.
딸 한 명과 아들넷을 둔 풍채가 있으신 시어머니는 친정에서 둘째로 태어나 시집을 오고부터는 줄곧 시집의 맏며느리로써 시할머니를 모시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셨는데 추석이나 설 명절이 다가오면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아 며느리와 딸에게 나눠 줄 간장게장을 담그셨다.
어느 해인가 둘째 형님이 그 비법을 여쭈었지만 어머니는 간장과 물 그리고 설탕과 청주를 비율대로 넣으면 된다 하셨는데 간단한 레시피와 달리 어머니가 만든 간장게장은 달큰 짭조름하니 맛이 있었다.
칠십이 된 시아버지가 퇴직을 하실 때까지 점심 도시락을 쌌던 시어머니는 게장뿐만 아니라 김치 또한 맛이 있었다. 봄에는 얼갈이김치, 여름에는 열무김치를 담으셨는데 겨울에 직접 담근 젓갈로 만든 김치는 내가 태어나서 여태껏 맛보지 못한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맛으로 금방 먹을 때도 맛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맛이 났다.
가족이 다 함께 모인 명절에는 위의 두 형님과 달리 내 몫으로 꼭 닭다리 같은 맛있는 부위를 따로 남겨 둔 시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집에 제사가 없어 제사음식에 무엇이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서투르기만 하던 내게 늘 유하다 하시며 어머니는 딸처럼 나를 귀애하셨다.
명절이 다가오면 간장게장을 담으시고 싱싱한 민어조기를 넉넉하게 사놓고 며느리를 기다리던 시어머니는 큰 질병 없이 저녁까지 잘 드시고 재작년 구십사 세의 일기로 편안하게 영면에 드셨다.
지난 추석에는 가족과 함께 하루 날을 잡아 시부모님 산소에 다녀왔는데 종친회에서 운영하는 가족 납골당에 모신 어머니를 뵈러 가는 길에 본 들판은 아직 추수 전이라 그런지 황금빛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미리 준비한 꽃을 화분에 꽂고 가지고 간 몇 가지 과일과 술을 따라 잔을 채우고 나서 절 두 번을 올렸다.
겉으로는 무뚝뚝하시지만 속정이 깊으신 시어머니를 내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자주 찾아뵙지 못하여 나는 죄송한 마음뿐이다.
"어머니, 그립고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