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나들이

by 박 혜리


막내아들이 수행평가를 치르기 위하여 읽을 책을 구입해야 한다는 말에 지난 주말 나는 집에서 멀지 않은 서점을 찾았다. 어릴 때는 주말마다 서점에 나들이를 가자고 하던 아들이 스마트폰이 생기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는데 우리는 책을 고른 후에 한쪽에 있는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하였다. 봄에 서점을 들른 후에 오랜만에 서점을 방문하였는데 아들은 경제에 관련된 책을 사고 나는 시와 과학에 관한 책을 사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어릴 때 우리는 자주 서점을 방문했었다. 주말의 점심시간이 지난 후나 산책을 겸해서 저녁을 먹은 후에 가족이 함께 서점을 들렀는데 새로 나온 신간이나 베스트셀러 등 책장과 매대에 누운 책들 사이를 침묵 속에 걸을 때면 이것저것 입어보라며 권하는 옷가게 주인처럼 신경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고 내게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책을 읽느라 고개를 숙인 사람들 틈에서 누리는 자유를 나는 사랑하였다. 넓은 공간이 있는 서점을 걸을 때면 사방의 벽에 높이 쌓아 올린 책들이 마치 해리포터가 다니는 호그와트의 마법의 학교에 온 것 같은 웅장함이 느껴지는데 책을 구경하며 책장이 있는 튼 사이를 걷다 보면 숨바꼭질하는 마음도 고요해졌다.


어린 시절 내가 사는 마을에는 서점이 없었다. 왁자지껄한 친구들이 수업을 마치고 하원을 하면 집으로 가는 대신에 나는 도서관을 찾았는데 소공녀나 빨간 머리 앤 같은 동화들을 읽으면서 나는 혼자 공상하기를 즐겼다.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시끄러운 부모님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들

리지 않아 좋았는데 학년이 올라간 후에도 나는 점심시간에 얼른 도시락을 먹고 나서 학교 도서관에서 세계문학전집이나 SF 같은 과학공상소설 읽기를 즐겼다. 시험기간을 빼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는데 나는 그곳에서 불투명한 나의 미래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다.


재작년에 나는 티브이를 통하여 유명하다는 서점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곳은 예전에 기계가 설치된 공장이었다는데 뼈대 같은 기본틀은 그대로 두고 내부를 리모델링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복합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하여 전시회를 열거나 중고와 새책을 살 수도 있는 서점을 겸비하여 가까운 이와 함께 베이커리가 딸린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나서 의자에 앉아 책을 함께 고르는 재미도 있겠다 싶었다. 여행을 떠날 때도 가끔 서점을 만나게 되는데 은은한 불빛 아래 포즈를 취하며 위용을 드러낸 알록달록한 책들은 낯선 풍경 속에서 익숙한 곳으로 돌아온 듯한 친근감이 들었다.


근래에 노안이 온 데다 스마트폰을 가지게 되면서 책을 등한히 하였다. 하루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휘호를 남기며 마지막 날에도 책을 읽고 떠나신 도산 안창호 선생처럼 젊은 날 외로웠던 나에게 지기가 되어 준 친구 같은 책과 나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은데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에는 이따금씩 나의 비밀스러운 공간인 서점에 나들이를 하며 독서의 즐거움에 빠져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