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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닮다 Jan 18. 2022

소수의 구독자를 가진 작가

숫자에 연연하는 어른이




처음 친구가 브런치 앱의 작가 신청 제안을 했을 때까지만 해도 신청서를 넣는다고 다 붙으리란 보장이 없음에, 내 실력에 자신이 없었다. 나는 어쩌다 글을 잘 쓴다는 칭찬 몇 번 들어본 어설픈 이야기꾼임을 꽤 오래전에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련이란 놈은 아직 남아서 '그래, 신청이나 해보자.' 했던 일이 한 번에 붙게 되면서 내 스스로 나에 대한 기대치가 커졌다. 어? 아직 나 할 수 있구나.

 늘 나에 대한 기대치가 본인인 나보다 높았던 남편에게, 평소 자주 다니던 맘 카페에 브런치에 글을 발행할 수 있게 되었노라고 자랑 아닌 자랑을 했고 나는 또다시 어릴 적 가졌던 무모한 기대치를 꿈꿨다.

 그리고 브런치에 자전적 이야기를 발행하기 시작한 지 이제 열흘이 지났다. 예전처럼 '글을 잘 쓰는 것처럼' 보이려고 멋 부리고 힘 잔뜩 준 글은 쓰지 않지만 늘어나지 않는 구독자 수와 제자리에서 고만고만하게 맴도는 라이킷 수를 보며 나에 대한 기대치를 다시 너무 높여버린 것 같아서, 실망스러운 성적표에 요 며칠 방바닥을 긁어댔다. 아, 나는 그냥 나 혼자 쓰는 것으로 만족했어야 하는 실력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났다. 중학생 때부터 써왔던 일기는 그저 나 혼자 보기 위해 쓰는 것이라 실력을 닦고 자시고 할 게 없었지만 블로그나 SNS, 브런치 앱에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혼자 보던 일기와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그냥 나는 어쩌다, 우연치 않게 작가 신청에 덜컥 붙어버린 운 좋은 사람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계속해서 핸드폰을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 작가 신청을 할 때까지만 해도 붙기만 하자, 더니 첫 발행을 한 후에는 라이킷 수 10개만 넘기자,로 지금은 다시 구독자 수가 계속해서 한 자릿수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이 여간 서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내가 이 일을 대체 누구에게 서운해해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흡입력을 가지지 못한 나의 필력의 문제일 뿐인 것을, 이 일에 원인을 가지고 있는 내가 누구에게 서운해한다는 말인가. 내가 생각해놓고도 스스로가 우스워 자조적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요 며칠 전까지 쓰기에 대한 의욕을 상실했었다.

 3일 전,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내게 물었다.


 "요즘 글 안 써?"


 남편과 통화를 할 때마다 "나 글 쓰는 중이야"라든지 퇴근을 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겨두고 몇 줄이나마 글을 쓰던 모습이 겨우 열흘 안에 확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써둔 것도 있고 쓰고 있긴 한데.. 구독자 수가 안 늘어."


 나는 목소리와 표정에 감정이 고스란히 담기는 편이다. 당장 예대 문예 창작과에 들어가기만 하면 엄청난 작가가 될 줄 알았던 어릴 적의 나처럼 나는 무척이나 큰 기대를 하고 있었고,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숫자 따위가 나를 너무 실망스럽게 했다. 그것은 나의 표정에 고스란히 담겼다. 남편은 그런 내가 웃긴 것인지, 귀엽다는 것인지 정수리를 톡톡 두드리며 다시 물었다.


 "지금 구독자 수 몇 명인데?"

 ".... 5명."


 쌀을 씻고 있는 내 옆에 서서 아이들 간식거리를 정리하고 있던 남편이 내게 말했다.


 "5명이 어디야. 처음 시작할 땐 1명 밖에 없었잖아."

 "열흘이나 지났는데 5명 밖에 안되니까 그렇지.."

 "미소야, 그 5명은 네가 글을 올릴 때마다 네 글을 찾아와서 보는 사람들이야. 그중에 나도 있고, 슬기도 있지만 나머지 3명은 네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잖아. 그 사람들이 네 글을 보러 와주고 좋아요 눌러줄 때마다 고마운 거 아니야?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네 글을 좋아해 주는 거잖아."


 드라마처럼 과장된 액션으로 큰 깨달음을 얻은 듯 굴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의 말에 쌀을 씻던 손이 잠시 멈칫했다. 남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 않는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나의 글을 구독해 주고 있고, 내가 글을 올릴 때마다 나의 글에 '라이킷, 좋아요'를 눌러주며 힘을 주고 있다는 것. 그게 설령 한 자릿수에서 맴돌지언정 나는 그들을 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숫자로 확인을 하게 되는 세상이 열리고  친구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옆에 쓰인 '1'이라는 숫자가 사라질 때까지, SNS에 어떤 사진을 올릴 때마다 눌리는 '좋아요'의 개수로, 전보다 훨씬 기대치를 내려놓고 쓴 글임에도 나의 글에 눌리는 '라이킷'의 숫자와 나를 구독해 주는 사람들을 숫자로 평가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어느 한구석도 예전보다 어른이 된 곳이 없었다. 같이 보내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 같던 나의 남편은 가끔 나에게 너무 큰 어른 같아 보일 때가 있고 무심하게 건네는 말로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나의 인스타그램에는 483명의 팔로워가 있지만 그중에 내가 올리는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은 겨우 스무 명 남짓, 그렇다고 나머지 팔로워들이 나의 글을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글에, 나의 사진에 보이는 공감의 표시를 하지 않는 것일 뿐 그들도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글을 쓰는지 모두 보고 있다.  


 나는 여전히 숫자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한순간의 위로가 될지언정 여전히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쿨하게 말하지 못하는 못난 작가일 뿐이지만, 남편을 통해 분명하게 일깨운 것 하나는 소수의 당신들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글을 멈추지 못한다는 것. 그렇게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쓰고, 당신들을 위해 글을 쓰며 언젠가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 쿨한 어른이 되는 날이 오면 이 글을 서른넷 어른이의 투정으로 귀엽게 봐줄 수 있을 때가 오리란 것을 믿는다. 나는 소수의 구독자를 가진 작가이지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편의 글이나마 당신들께, 아니 사실은 나를 위해 매일같이 글을 쓴다.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숫자에 연연하는 못난 어른이로 살겠지만 나는 그것 또한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한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힐 수만 있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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