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되겠지
어떤 날은 원래 계획했던 아이템을 버리고 그날 떠오른 생각을, 어떤 날은 ‘와, 이거 내가 봐도 좀 억지로 쓴 티가 난다’ 싶은 글을, 어떤 날은 ‘이건 버리자’ 했던 원고를 다시 슥슥 먼지만 털어 올리기도 한다. 글감이 매일 여유로운 건 아니지만 오며가며 문득 드는 생각들을 꾸준히 메모하는 날 보면서 ‘아, 나 이거 좋아하네’ 하고 느꼈다. 적어도 멈추고 싶거나 멈출 생각은 없다는 거니까. 가는 데까지 가보고 싶다.
좋아서 하는 미솔랭가이드
팔로워 126명의 작고 귀여운 채널이고, 나의 원래 친구들이 절반은 되는 것 같지만 나에게 미솔랭가이드는 아주 소중하다. 처음엔 ‘놀면 뭐하니’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건데,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다는 후문. 그렇다고 이걸로 뭐 대단한 걸 하겠다는 전략을 세워두고 시작한 건 아닌데 영업일 기준 매일 업데이트를 하기로 다짐하며 첫 단추를 잘못 꿴 관계로…내 일상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격일로 할껄…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정한 콘텐츠를 올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는 할 줄 아는 게 이것 밖에 없으니 오히려 전략은 심플하다. 대(大)어필의 시대에 매일 쓰는 자기소개서랄까. 그냥 url 덜렁 하나 주고 싶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입사 후 포부’ 이런 거 말고, 놀고, 먹고, 읽고,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이니까. 그렇게 꺼릴 것이 없어지니 이제는 좀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들기도 했다.
그리고 누가 인스타그램을 이렇게 텍스트 매체로 쓴단 말인가. 어지간한 애정 아니고서야 인스타에서 긴 글을 누가 읽어…하지만 대충 찍은 걸 크롭해서 올리기만 해도 느좋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캡컷으로 슥슥 갖다 붙이면 브이로그 하나 뚝딱 나오는 니들이 뭘 알아!!! 릴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모두의 조언을 비자발적으로 외면하고 나는 오늘도 “할 줄 아는 것을 지금 한다!”를 외치며 미솔랭가이드의 원고를 쓴다.
가끔씩 친구들과 나중에 책으로 내도 재밌겠다는 얘기도 하고, 갑자기 떡상해서 팔이피플이 되는 얼토당토 않은 상황극을 해보기도 하지만, 나도 이 미솔랭가이드가 결국 무엇이 될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내가 제일 궁금하다. 일단 지금은 나에 대한 성실한 기록, 남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 더 신경을 많이 쓰던 내가 나와의 약속을 매일 하나씩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 안정감 정도로 해두겠다. 뭐라도 되겠지.
*커버 이미지 짤 출처를 모르겠어요…짤주인이 보신다면 연락주세요…
미솔랭가이드 260219 : [그냥해] 좋아서 하는 미솔랭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