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후기] 차례 사라진 큰집에 아기의 등장이라

귀여운 조카의 방문

by 미솔랭가이드
미솔랭 게시물.png 할머니집에서 보내는 조카의 첫 명절

차례 사라진 큰집에 아기의 등장이라


조카가 생기고 난 이후로 첫 명절이었다. 이번 명절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귀여움은 남았지만, 내 명절 어디갔니”다. 명절 차례 포함 제사를 1년에 10번씩 지내던 우리집은 남동생이 결혼하면서 며느리에게 이것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엄마의 대승적 판단 아래 드디어 남들처럼(?) 명절을 보내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동안 혼자 즐거웠던 아빠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지만, 엄마의 고생과 희생이 너무 컸다.


큰집인 우리 집에 차례 지내러 오는 친척들의 이부자리부터 밥상, 술상을 번갈아 내다 보면 내 울화가 다 치밀어 올랐지만, 과거의 일이니 다 묻어두고 올해는 기쁜 마음으로 귀요미를 맞을 준비를 했다. 주로 바닥생활을 할 것이니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뭔가 방해가 될 만한 물건들을 다 치우고 두근두근. 고작 하룻밤 자고 갔는데 아주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의 혼을 쏙 빼놓고 갔다.


아직 낯을 가리지도 않고 순둥순둥한 덕분에 엄마, 아빠 없이도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아서 어른들의 이쁨을 듬뿍 받았다. 귀여워서 눈을 뗄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정말 아기가 훔쳐가는 어른의 시간은 밀도 100%다. 그 어떤 딴짓도 할 수가 없다. 부모님과 나의 시간이 온전히 요녀석에게 붙들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일 같았으면 효율, 효과를 생각했겠지만 그런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 귀여우니까.


생각해보면 내가 누군가의 어린 손녀였던 시절에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애타게 날 기다렸겠지. 그래도 우리는 조카와 가까운 곳에 살아서 종종 얼굴을 볼 수도 있지만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1년에 2번 찾아오는 명절을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싶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를 기다리는 부모님을 보면서 아빠 차 소리에 달려나오시던 그때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 마음을 짐작해본다.


아기 하나로 집안 분위기가 바뀐다는 이런 뻔한 말에 별로 관심도 없었고, 그런 말이 믿어지지도 않았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건 정말 그 뻔한 말들을 하나씩 체감하며 인생에 좀 겸손해지는 일인가 싶다. 다들 이렇게 비슷하게 살고, 비슷한 이유로 행복해하고, 비슷한 이유로 슬퍼하고, 크게 특별할 게 없어도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구나. 조금 더 가깝고 구체적인 행복을 잘 찾으면 더 좋은 인생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솔랭가이드 260218 : [명절 후기] 차례 사라진 큰집에 아기의 등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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