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언어] 어깨 쭉 펴고 영화를 좋아하기

중년의 야매 시네필의 뒤늦은 영화사랑

by 미솔랭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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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쭉 펴고 영화를 좋아하기


누누히 밝히지만 나는 중년의 야매 시네필이다. 그런 까닭에 영화와 관련된 책을 봤을 때 〈대부〉, 〈하녀〉, 히치콕 감독 이런 내용들이 나오면 일단 주눅이 든다. 고전이라고 하는 영화들을 보지 않은 야매 시네필이니까. 고전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괜히 어려울 것 같고, 공부하듯이 봐야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애매하게 사랑하던 와중에 이다혜 기자님의 《영화의 언어》가 나온 것을 알았다.


어떤 분야에 있어 분기점이 되는 중요한 작품들을 보고 알게 되면 그 이후의 덕질이 얼마나 풍부해지는지 이미 문학을 통해 경험했지만, 그건 학점과 학위가 달린…내 전공이었고요? 내가 이 나이에 다시 한예종 영상원에 갈 것도 아닌데 도대체 영화에 대한 나의 이 마음이 뭘까 계속 궁금하던 차, 《영화의 언어》를 보고 내가 아직 습득하지 못한 영화의 ‘문법’에 대한 강박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아주아주 많이 사랑했던 〈8월의 크리스마스〉나 괜히 멋있어보여서 봤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긴가민가하면서 본 〈애프터썬〉 같은 영화로도 영화의 언어를 익힐 수 있다면 나는 주눅든 마음을 쭉 펴고 영화를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언어를 배우고자 한다는 건 내가 그 대상에게 관심이 있고 더 알아가고 싶은 거 아닌가.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무어람.


더 많이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두리번거려보니 〈대부〉도 봐야 한다고 그러고 〈하녀〉도 중요한 작품이라 하고, 이건 저거의 레퍼런스라고 하고, 난 그 레퍼런스가 뭔지도 모르고…종로3가 시네코아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멋있어보여서 괜히 영화잡지 《키노》도 몇 권 사봤지만, 결국 극장 가서 보는 건 〈토이스토리〉였던 내가 이렇게 뒤늦게 자각한 영화와 극장에 대한 사랑이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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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기자님의 글을 좋아한다. 선명함과 사려깊음을 동시에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데 내가 읽었던 작가님의 책과 글들은 늘 그러했다. 좀 매울 때도 있지만, 어깨 한 번 툭- 쳐주는 위로도 있었다. 코로나로 우리 모두가 집에 갇혀있을 때, 기자님의 온라인 글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당시 세상과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였던 줌에서 열댓 명이 옹기종기 모여 4주 정도를 열심히 읽고 듣고 썼다.


그렇게 대단치 않은 글을 썼던 것 같은데, 마지막 과제의 피드백을 보고 진짜 거짓말 안하고 랩탑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던 것 같다. 팬데믹으로 세상이 멈춘 탓도 있지만 그때의 나도 모든 것이 멈춰있던 시기여서 도통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던, 할 줄 알았던 게 글쓰기였는데 그때 그 수업과 기자님의 피드백을 계기로 다시 세상을 뚫고 나아갈 수 있었다.


그때 생각이 나서 오래된 폴더를 뒤져 그때의 과제를 발견했는데 지금 보니 내가 배운 건 글쓰기나 작법이 아니라 글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이었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글쓰기가 중요한 건 그 자체로서도 중요하지만 결국 무엇이든 정확하고 구체적이어야 움직이든, 바꾸든, 버리든, 사랑하든 할 수 있다는 것. 언어를 갈고 닦아야 하는 건 그러한 까닭이 아닐까. 그것이 영화의 언어든, 나의 언어든 말이다.


260327 미솔랭가이드 : [영화의 언어] 어깨 쭉 펴고 영화를 좋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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