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부터 더워진대요...
꽃이 지나간 자리, 피어나는 기세
지난 주말이 지나고 갑자기 카톡 친구들의 프사가 잔뜩 업데이트 되었다. 다들 벚꽃 배경의 사진이다. 귀여운 사람들 같으니. 벚꽃이 흐드러진 곳에서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춘다. 그리고 언제 다시 열어볼지 모르는 사진들을 찰칵찰칵 찍어댄다. 내년 봄이 되면 똑같은 사진을 또 찍을 거면서. 하지만 뭐 어떤가. 예쁜 풍경을 눈에 담고 싶다는 마음이 이는 것도, 덕분에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는 것도 좋지 않나.
하지만 오늘은 또 거짓말 같이 “이제 다 즐겼지?”하고 봄비가 내린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봄의 절정을 알리는 봄꽃들은 아마 내년은 되어야 만날 수 있을 것이고(만날 수는 있는 거겠지?), 비가 그치고 나면 바짝 마른 나뭇가지로 있던 나무들에 새순이 돋아나 있을 거다. 나는 원래 초록색을 좋아하지만 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봄의 초록을 가장 좋아한다. 봄은 이러나저러나 참 얄궃고 아쉽고 매력적이다.
꽤 오랫동안 나의 카톡 상태메시지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와 같은 말인데 그냥 좀 있어보일 것 같아서. 내가 내 상태메시지를 볼 일은 별로 없지만 원래 상메가 그런 것 아닌가. 내가 이렇다고, 좀 알아달라고, 대놓고 말하긴 좀 뻘줌하니 은은하게 외치는 것. 뒤에 이어지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은 주로 나를 힘들게 하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 썼다. 얼마나 가나 보자. 나쁜놈!
하지만 많은 것들이 지나간 듯한 기분인 요즘은 무언가 지나가는 것들이 좀 아쉽다. 잃어가는 아쉬움보다는 그 시간을 내가 듬뿍 잘 누렸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크게 다를 것 없는 일상이지만 하루하루를 받아드는 느낌이 예전과 다르다. 예전보다 엄청 더 밀도 높은 삶을 살거나 대단해진 것도 없는데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시간도 없다. 비교적 마주하는 그 시간 안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붉은 꽃은 고작 열흘을 피어있지만, 꽃이 진 자리에 새 잎사귀도 나고 가끔은 새도 날아와 앉아있는다. 그리고 내년 봄 되면 꽃은 또 필 것이다. 그래서 더 중요한 건 꽃이 피는 열흘을 뺀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사느냐가 아닐까 한다. 붉고 예쁜 꽃이 없으니 봐주는 사람도 없을 거고, 다시 피려면 꼬박 1년을 또 기다려야 하지만, 괜찮다. 봄은 또 올 거니까. 그래서 요즘 나의 카톡 상메는 ‘기세(氣勢)’다.
260410 미솔랭가이드 : [벚꽃이 지면] 꽃이 지나간 자리, 피어나는 기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