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다들 봄옷 어쩌고 있어요?
위기를 맞은 간절기 패셔니스타
기후위기도 기후위기인데 내 옷장도 위기에 놓였다. 작년까지는 ‘그래, 위기는 위기지..’하고 애써 담담한 척을 했다면 이번주 날씨를 보고 ‘아, 이건 이제 거스를 수 없구나’ 싶다. 이미 겨울 패딩, 코트는 세탁소에 다녀왔고, 몇 번 입지도 않은 트렌치와 자켓을 세탁소에 보냈다. 드라이클리닝이 옷에 별로 안좋다고도 하고, 정말 몇 번 못입어서 ‘대충 좀 털고 닦아서 넣어?’ 했지만, 셀프 클리닝에 자신이 없어 결국 보냈다.
내 기준 봄옷을 꺼내며 아주 한여름 옷까지 망설임없이 다 꺼냈다. 이건 그냥 잠깐 덥고 말 게 아니다. 5월부터 여름이라고 치면…하면서 손가락으로 5, 6, 7, 8, 9, 다섯을 셌다. 이제 여름이 5개월이구나. 길면 6개월. 오히려 봄옷을 꺼내는 것에 더 주저하게 되었다. 얘들을 몇 번이나 입을 수 있을까. 또 괜히 한 두 번 입고 또 세탁소 신세 아닌가 싶어서 몇 번을 망설이다가 고놈들도 결국 다 꺼냈다.
신발장을 보면서 아빠가 “우리집에 지네가 사나…” 했는데, 걸려있는 바지들을 보니 지네가 살긴 사는 모양이다. 다리가 한 20개는 되는 줄 알았네. 하루에 하나씩 입어도 한참을 입겠다. 드라이클리닝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반만 꺼낼까 했지만, 그렇게 시작하면 이제 옷장은 옷무덤이 되는 것이다. 한 해, 두 해 옷장 안에서 묵은 옷들은 결국 사촌동생에게 가거나 옷체통 신세를 면치 못한다. 다 꺼내서 입자.
결국 손이 가는 옷들만 계속 입게 되겠지만, 정말 이제는 ‘그 계절’이 곧 사라질 것만 같아서 진혼제 하듯이 한 번이라도 더 입고 보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름, 겨울옷이라고 적은 것도 아니지만 유독 봄, 가을 옷이 왜 많은가 생각해봤더니 추위 끝에 옷이 가벼워지는, 더위 끝에 옷이 묵직해지는 그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기능보다는 패션일 수 있는 그 짧은 기간이 좋아 신나게 사재꼈다.
날씨가 변하는 속도만 보면 지구 종말이 머지 않은 것 같지만,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살아가야 하는 날을 생각하면 선크림 잘 바르고, 물 많이 마시고, 양산 잘 쓰고다니는 수밖에. 정말 길고 지난한 여름이다. 막상 위기감이 엄습할 때는 그 위기의 실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많이 흘러 돌이켜봤을 때, 지나온 자리가 폐허라면 그것이 그 위기의 맨얼굴이겠지. 일단 내 맨얼굴부터 지켜!
260415 미솔랭가이드 : [봄옷 어떡행] 위기를 맞은 간절기 패셔니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