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의 퇴직금으로 함께 한 일본 여행, 언제 자라서 여행도 같이 가고 기특하고 대견하다. 여행 첫날 아침, 막내는 사우나를 가고, 나는 조용히 필사 노트를 펼쳤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두려운 순간은 찾아온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느꼈던 그 불안감처럼.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다."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두려운 마음이 두려움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는 작은 의식이다.
우리는 여행 중에도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나는 일상에서의 나와 조금 다르다. 더 솔직하고,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많이 느낀다.
"엄마, 이거 맛있어, 한 번 먹어봐"
막내가 건넨 일본 과자를 먹으며 나는 생각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오롯이 나와 함께할 동반자는 결국 나 자신인데, 성장하면 할수록 왜 다른 사람을 의지하게 되는 걸까,
후쿠오카 텐진 시내를 걸으며 긴 대화를 나눴다.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막내가 회사에서 겪었던 어려움, 퇴직을 결심하게 된 이유, 앞으로의 꿈에 대해, 남자 친구 이야기까지, 여행의 즐거움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도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이렇게 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의지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고 상처받는가, 사람들 사이에서 전쟁을 치르고 전사병이 되어 돌아오는 날, 그제야 비로소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이번 여행은 막내에게도,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될지 모른다. 나를 만나는 그 순간부터 삶은 달라진다. 고독을 씹을 수 있게 되고, 고독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동안은 외로워서 밖으로만 돌았다면, 이제부터는 고독해서 나를 만나는 것이다. 고독의 시간은 사색의 시간이다.
호텔 대욕탕에 몸을 담그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낯선 도시의 밤하늘에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속에는 작은 빛이 일었다. 두려움과 고독을 껴안고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잠시 서로의 시간을 가지면서, 고독을 즐길 시간, 나를 돌아볼 시간, 내 마음속 두려움을 물리칠 시간, 이런 시간과 공간이 허락됨에 감사했다. 이래서, 저래서 못한다는 건 결국 핑계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여행이다.
오늘은 어떤 기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알 수 없지만 함께하는 시간도혼자만의 시간도, 소중히 여기며 나아갈 것이다. 두려움과 고독을 껴안고, 그 속에서 진짜 나를 발견하는 여행,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여행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