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운동을 끝내고 돌아오면, 부엌에서는 보글보글 찌개가 끓고 있다. 거실 가득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풍겨온다. 운동화를 벗고 부엌으로 달려가니, 엄마가 바쁘게 움직이고 계신다. 그녀의 어깨를 슬며시 감싸며 농담을 던진다.
"아이고, 어머님! 아침 문안 인사드리옵니다."
"참나." 엄마는 피식 웃으며 한마디 한다.
그녀의 단단한 어깨 근육을 느낀다. 30년 넘게 아빠와 함께 운영해 온 식당에서 쌓인 생존 근육이다. 엄마의 체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참, 시간이 없다. 출근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급하게 욕실 문을 여는 순간,
"으악! 아빠!"
아빠는 한 손에 신문을 들고 일을 보고 계신다. 나는 외친다.
"아빠, 문 좀 잠그라니까!"
엄마가 뒤에서 웃는다. "아이고, 너네 아빠도 참."
화목한 3인 가족처럼 보이는 순간이지만, 여기엔 한 가지 큰 구멍이 있다. 그 구멍은 바로 나, 이 집의 막내딸. 서른 후반 미혼 여성이자 부모님과 함께 사는 캥거루족이다. 캥거루 경력직 34년 차.
"결혼을 하든 독립을 하든, 왜 아직도 저러고 있어?"
워워 진정하시라. 벌써부터 당신의 비난의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내게도 할 말이 있다.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밥벌이는 하고 있고 생활비도 부담한다. 독립생활도 해봤다. 다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본가로 돌아왔다. 그 사정이 뭐냐고?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 차차 알아가기로 하자.
캥거루족, 이들은 누구인가?
인터넷에서 '캥거루족'을 검색하면 불명예스러운 정의가 넘친다. 캥거루족이란 성인이 되어도 독립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자녀를 일컫는 말이다. 이 용어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면서 등장했다. 당시 치솟는 실업률과 집값 때문에 많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의지하게 되었고, 그 모습이 캥거루가 새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만들어진 말이다.
최근에는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캥거루족의 모습도 달라졌다. 경제적으로 자립했지만 부모에게 생활비를 보태면서 함께 사는 신캥거루족, 독립했다가 다시 부모님 집으로 돌아온 리터루족, 심지어 중년 캥거루족도 등장했다. 그 이유도 다양하다.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경우, 생활비를 절감하기 위해, 혹은 정서적 교류를 위해서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개념은 2024년 현재에도 번번이 쓰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5세에서 39세 사이의 미혼 청년 중 약 절반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내 주변을 봐도 싱글 친구들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건 분명히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리터루족, 돌아온 막내딸의 사정
나는 한때 독립해 1인 가구 생활을 했던 리터루족이다. 집값 비싼 서울에서 홀로 살아보는 것이 나의 오랜 꿈이었다.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며 시작하는 아침, 좋아하는 음악이 흐르는 아파트. 꿈꾸던 그런 삶을 살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결국 몇 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뒤늦게 왔지만 그저 얹혀사는 자식이 되고 싶진 않았다. 실제로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정서적으로 의지가 되며, 때로는 인터넷을 가르쳐 드리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지금도 자녀로서, 한 명의 가족 구성원으로서 하루하루 나의 역할을 개척해 가고 있는 중이다. 부모님은 내게 많은 것을 주셨고 이제는 서로 의지하는 시대가 왔다. 나는 단순히 보호받는 딸이 아니라, 부모님에게 작지만 중요한 지원군으로서의 임무를 수행 중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만약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면, 분명 다양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독립하지 않았다고 혹은 결혼하지 않았다고 기죽을 필요 없다. 우리는 원가족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이 글은 세상 물정 몰랐던 가득했던 불량 캥거루가 세상 풍파 다 겪은 후 돌아와 효녀가 된 여정을 담았다. 낮아지는 취업률과 솟구치는 집값 그리고 고령화 문제까지. 살기 점점 팍팍해지는 이 시대에 모든 싱글과 캥거루 족을 위해 이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