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캥거루 1, 2호 |
"야, 그만 일어나!"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맞고 억지로 눈을 뜬다. 방문을 열자마자 눈에 띈 건 해가 중천인데도 무릎 늘어난 추리닝을 입고 머리를 긁적이는 캥거루 1호, 우리 오빠. 그의 방을 살짝 들여다보니 어지럽게 흩어진 이력서가 보인다. 어제까지 썼던 듯.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하는 백수 삼촌이 있다면, 우리 집엔 그와 흡사한 캥거루 오빠가 있었다.
이 오빠, 한때는 잘 나가던 해외 기업 직원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돌연 귀국. 이유는 결혼이 안 될 것 같아서라고. 귀국 후 그의 ‘해외 경험도 있고 영어도 하니, 취업은 식은 죽 먹기’라는 생각은 환상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는 매일 거실에 누워 소파와 일심동체가 되었다. 엄마는 ‘아들놈 보느라 속병 생길 지경’이라며 등짝 스매싱을 갈겼지만, 다행히 뒤늦게 취업에 성공했다. 이제는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잘 살지만, 그때가 떠오르면 나까지 한숨이 다 나온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 집 캥거루 2호, 내가 있다. 나는 서른 후반의 싱글. 결혼은 앞으로도 할지도 미지수지만,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직장도 있고, 작은 집도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님과 함께 산다. 게다가 이곳에선 집안일도 제일 많이 하고, 명절 준비부터 부모님 생신, 결혼기념일까지 챙기는 만능 집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나는 '부메랑 키즈'다. 한때 혼자 살다 다시 돌아온 자녀. 오래 만난 연인과 결혼 불발 후 훌훌 떠났지만, 정서적, 경제적 이유로 다시 컴백했다. 혼자 사는 낭만을 꿈꾸며 집을 나왔던 내가, 혼자 깨는 아침이 생각보다 외롭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남들 신혼집 꾸미듯 열심히 채웠던 가구와 가전은 다 처분하고, 작은 캐리어 하나로 본가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캥거루 2호'가 되었다.
대한민국 캥거루 족의 비애
대한민국 캥거루족의 비애는 자녀도 부모도 열심히 살지만 독립과 결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데 있다. 서울의 집값은 하늘을 찌르고, 평균 12억(10억이 12억으로 올랐다)에 달하는 집값을 보며 나는 월급을 모아도 언제쯤 내 집이 생길지 막막하다. 22년 6개월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니, 그게 가능한 일일까? 결혼도 비슷한 얘기다. 모아둔 돈으로 결혼 준비는커녕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빠듯한 현실이다.
결국 우리는 집안에서 소소한 월급을 모으며 미래를 준비한다. ‘언젠가는 나가리라’라는 마음을 품고 있지만,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이래저래 꾸역꾸역 모아둔 돈으로 겨울을 대비한다. 그런데, 그 겨울이 언제 올진 여전히 미지수다.
캥거루 2호의 인생 2막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움츠러들 수만은 없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부모님의 짐이 아닌 자랑스러운 룸메이트가 되어야겠다고. 당장 결혼하고 애 낳아서 손주를 안겨 드리는 종류의 효도는 할 수 있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기로.
나는 이 집에서 나의 역할을 찾고, 가족에게 기여하는 캥거루 딸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 부모님 '등골 브레이커'가 아닌, 함께하는 구성원으로.
이렇게 나는 '돌아온 캥거루의 인생 2막'을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족 안에서 나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해보려 한다. 그래서 나와 부모님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최대한 찾아가고자 한다. 우리는 점점 개인화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지만, 동시에 가족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내가 새로운 가정을 이루지 않았다면, 원가족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제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가족의 일원이자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시금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혹시 아직 결혼하지 않았거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면 이 프로젝트를 함께 지켜봐 주길 바란다. 우리 모두 누구나 한 번쯤은 캥거루였으니.